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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김민석과 주진우

2025년 대한민국의 축소판, 김민석 총리 후보 인사청문회.

by 조하나


12.3 내란으로 치러진 6.3 조기 대선으로 이재명 정부가 인수위도 없이 서둘러 출범했다. 새 정부가 내각을 꾸려 하루라도 빨리 국가 비상 시국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에게는 '국가'도 '국민'도 '국익'도 없다. 2025년 6월 24일과 25일 양일간 치러진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장은 단순한 정책 검증의 장이 아닌,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첨예한 갈등, 즉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자’와 ‘그 민주주의 아래서 기득권을 누려온 자’ 사이의 끝나지 않은 전쟁이 벌어지는 축소판과 같았다.




김민석 총리 후보 지명자
주진우 국민의힘 부산해운대구갑 의원




청문회 단상에 선 김민석 총리 후보자. 그의 이력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처와 영광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을 이끌다 3년간 옥고를 치렀고, 그로 인해 군 복무를 하지 못했다. 당시 정부는 운동권 인사가 군대에 가면 민주주의 사상을 청년들에게 퍼뜨린다고 입대를 막았다. '청년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정계에 데뷔했던 그는 이후 18년 간 야인 생활을 했다. 그의 전 재산 2억 원은 화려한 경력에 비해 초라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의 삶의 궤적을 묵묵히 증명한다.


대편 검증의 칼을 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모습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70억 원대의 자산가, 2005년생 아들에게 7억 원을 증여한 여유. 간염으로 인한 군 면제. 겐트대 허위 학력. 그리고 그의 부친이 과거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했던 ‘공안 검사’ 출신이라는 배경은 이 장면의 상징성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 후보자를 향해 날 선 공세를 퍼붓는다. 한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라 폄훼하며 역사 인식을 드러낸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같은 의원이 민주주의를 위해 청춘을 바친 김 후보자에게 “민주화 운동을 한 전력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장면이다.


김민석에게 들이댄 현미경 같은 검증의 잣대와 주진우가 암묵적으로 누린 면책특권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혈관 속에 깊이 뿌리내린 역사적, 구조적, 그리고 심리적 메커니즘이 빚어낸 필연적 귀결이다.


왜 정의를 위한 희생은 끝없이 자신의 순결을 증명해야 하고, 권력의 원죄는 그토록 쉽게 망각되는가? 왜 민주 진영은 친일과 독재에 뿌리를 둔 이들에게 자신의 ‘가난’과 ‘희생’마저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가?












본질과 진실을 훼손시켜라




‘2억’의 죄와 ‘70억’의 권리


청문회를 채운 ‘숫자’는 산수의 영역이 아닌 도덕성의 상징이었다. 국민의힘의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김민석의 ‘가난’을 부패의 징후로 낙인찍는 것이었다. 실질 재산 6700만 원. 4선 의원의 것이라기엔 너무나 소박한 이 숫자는, 그러나 곧 불경한 의심의 근거가 되었다. 공격의 칼날은 지난 5년간의 지출과 소득 사이의 ‘8억 원 차액’이라는 허깨비를 겨눴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공동체의 연대 속에서 형성된 돈의 흐름에 ‘법의학적 수준’의 증빙을 요구했다. 장례식의 부의금,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출판기념회 후원금,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지극한 마음까지. 사람의 관계와 도리 속에서 흐르던 이 모든 돈의 역사를 차가운 관료적 잣대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했다. 이는 의도적으로 설계된 함정이었다. 공동체적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검은돈’의 온상으로 폄훼하고, 신앙의 고백이었던 교회에 낸 헌금마저 재정적 의혹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이 집요한 심문은 주진우 의원 본인의 70억 원대 재산이 다뤄지는 방식과 섬뜩할 정도의 대조를 이뤘다. 그의 부(富)는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마치 자연법칙처럼 당연한 하나의 ‘사실’로 제시될 뿐이었다.


상속과 엘리트 전문직이라는 기득권의 경로를 통해 축적된 부는 신성불가침의 사적 영역으로 보호받았다. 반면, 민주화 운동의 후원금처럼 비전통적이고 공동체의 지지에 기반한 돈은 즉시 불온하고 의심스러운 공적 검증의 대상으로 끌려 나왔다.





이는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닌, ‘계급의 문법’에 관한 문제다. 기득권의 부는 그 뿌리가 불의에 닿아있을지라도 현재의 합법이라는 세제를 통해 깨끗하게 세탁된다. 반면, 기득권 밖의 인물이 공동체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한 정치적 자산은 잠재적 부패의 온상으로 취급된다. 이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사회적 길들이기’다. 정치는 돈 많고 배경 좋은 기득권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영역이라는 것을 이들은 은밀하고 성실하게 대중에게 각인시킨다. 동시에 엘리트 카르텔 외부에서 숨 쉬는 정치인에게 언제든 재정적으로 목 졸릴 수 있다는 서늘한 경고를 보낸다. 그들의 정치적 기반인 대중적 지지를 오히려 아킬레스건으로 변질시키는, 권력의 잔인한 속삭임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다


청문회는 곧이어 더욱 초현실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은 김민석에게 1985년, 전두환 정권의 광주 학살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감행했던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을 사과하라 겁박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인천 중구강화군옹진군 의원




이는 심리적 학대 기법인 ‘DARVO(부인, 공격, 가해자-피해자 뒤바꾸기)’의 완벽한 실연이었다.


부인(Deny): 사과 요구는 군부독재의 폭력이라는 국가의 원죄를 교묘히 지우고, 저항 행위의 순수성만을 문제 삼는다. 역사의 본질을 거세하고 껍데기만 남겨 비난하는 것이다.


공격(Attack): ‘반미’라는 낡은 딱지를 붙여 김민석의 애국심을 공격하고, 민주주의라는 숭고한 명분을 급진적 폭력으로 낙인찍는다. 그것은 냉전 시대의 망령을 불러내 현재의 정적을 사냥하는 주술과도 같았다.


전복(Reverse): 마침내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는 완벽히 뒤바뀐다. 국가 폭력의 집행자를 아버지로 둔 주진우는 질서와 품위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운 김민석은 그 ‘질서’를 어지럽힌 범죄자로 재규정되어 속죄를 강요당한다.







이 전복의 드라마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광주사태’라는 용어 사용에서 정점에 달했다. 법률로 공인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을 외면하며, 신군부가 시민의 항쟁을 폭동으로 규정했던 그 단어를 고집하는 행위. 이것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역사적 기억의 전쟁터에서 쏘아 올린 의식적인 포탄이다. 구체제 지지자들을 향한 ‘도그 휘슬(dog whistle)’이자, 민주화의 정통성에 대한 정면 도전인 것이다. 만약 ‘민주화의 상징’에게 사과를 받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독재의 서사를 사후에 승인하는 것과 같다. 청문회는 이처럼, 폐기된 역사를 주류의 담론으로 부활시키려는 위험한 강령술의 제단이 되었다.




배준영 국민의힘 인천 중구강화군옹진군 의원









상속자들의 대결



저항의 아들, 눈물의 어머니: 희생으로 쌓은 도덕 자본


김민석의 정체성은 1980년대, 시대의 가장 뜨거운 심장이었던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벼려졌다. 그의 3년 간의 수감 기록은 주홍글씨가 아닌, 그의 정치적 정통성을 증명하는 훈장이었다. 그의 자본은 돈이나 인맥이 아닌, 개인과 가족이 감내한 ‘희생의 서사’ 그 자체였다.





청문회는 그의 어머니, 김춘옥 여사를 역사의 무대 위로 다시 불러냈다. 1987년, 아들을 가둔 국가의 방패, 전투경찰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던 어머니의 사진. 그것은 폭력에 비폭력으로, 증오에 사랑으로 맞섰던 민주화 운동의 도덕적 정수를 압축한 한 장의 성화(聖畫)였다.


그녀는 개인의 고통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라는 집단적 저항으로 승화시킨 시대의 증인이었다. 김민석은 바로 이 ‘어머니의 역사’를, 즉 민주화 운동의 도덕적 권위를 체화한 상징이다. 그러므로 그를 공격하는 것은, 단지 한 개인을 넘어 그가 상징하는 시대정신 전체의 도덕적 자산을 파괴하려는 정교한 전략이었다.




통제의 아들, 공안의 아버지: 권력으로 세습된 부채 없는 빚


반대편에 선 주진우의 아버지 주대경은 평범한 법조인이 아니었다. 그는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의 이념적 충견이었던 고위직 ‘공안 검사’였다. 민주 교육을 외친 교사들을 ‘이적 단체’로 조작해 고문하고 투옥시킨 ‘민교투 사건’의 주임 검사. 훗날 재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며 국가 조작으로 판명된 그 사건의 설계자. 그는 피해자들에게 “고문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고 직접 협박했던, 국가 폭력의 기술자였다.






아들 주진우는 아버지 주대경의 과거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하거나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그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검사가 되었고, 윤석열과 김건희의 개인 법률대리인으로 활약하며 그들의 환심을 사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으로 들어갔고, 지난 총선에서 ‘김건희 픽’으로 부산 해운대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채 해병 사망 수사 외압 사건에서 대통령실 발신 번호 02-700-8080 관련 수사 대상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의원이 된 이후에는 국가보안법을 옹호하며 ‘공안의 DNA’를 충실히 계승했다. 그의 아버지가 독재에 봉사한 대가는 민주화 이후 청산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70억 원대 재산의 기반이 되는 경제적 자본으로, 그리고 아들의 사회적·정치적 자본으로 화려하게 세습되었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가장 서글픈 진실이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것보다, 권위주의 국가에 충성한 것이 몇 세대에 걸친 부와 권력을 보장하는 더 확실한 길이었다는 것. 과거의 부역을 처벌하기는커녕 오히려 보상해 온 이 시스템의 수혜자가, 바로 그 시스템에 저항했던 이의 아들을 심판하는 구도. 이보다 더 완벽하게 역사적 정의의 전복을 보여주는 장면이 또 있을까.











분열을 설계하는 기술자들



청산되지 않은 카르텔


이 모든 비극의 뿌리는 1945년, 친일 부역자 청산에 실패했던 해방의 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민족정기보다 반공을 우선하며 식민 시대의 억압 기구를 신생 대한민국의 뼈대로 고스란히 이식했다. 권력 순응에 능숙했던 그들은 새로운 지배 엘리트가 되었고,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에 봉사하며 자연스럽게 생명을 연장했다. 이들에게 민주화 운동은 토론의 상대가 아닌,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였다.


이 연속적인 권력은 검찰, 사법, 언론, 재계, 학계가 얽힌 견고한 ‘카르텔’을 통해 자신을 보존한다. 그 핵심 무기는 ‘검언유착(檢言癒着)’이다. 검찰이 흘린 ‘의혹’이라는 이름의 독점적 정보를 언론이 받아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확성하며 여론 재판을 끝내버리는 메커니즘이다. 김민석의 ‘8억 원 의혹’은 이 카르텔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합법의 외피를 쓴 채, 민주적 토론을 우회하고 정적을 사회적으로 암살한다.






‘민주화’와 ‘산업화’, 두 개의 건국 신화


진보와 보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탄생 서사 자체를 다르게 기억한다. 한쪽은 4.19, 5.18,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시민의 피로써 공화국의 정통성을 획득했다고 믿는다. 이 서사에서 독재 시대는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배반한 ‘비정상적 시대’일 뿐이다.


다른 한쪽은 박정희로 대표되는 ‘산업화’와 ‘반공’이 나라를 구원했다고 믿는다. 이 서사에서 독재는 국가 생존을 위한 ‘필요악’으로 미화되고, 민주화 운동은 사회 안정을 해치는 철없는 행동, 혹은 불온한 세력의 준동으로 폄하된다.


이 두 개의 건국 신화는 결코 화해할 수 없다. 한쪽의 정당성은 다른 쪽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기에, 역사는 성찰의 대상이 아닌 정복해야 할 영토가 된다. 모든 정치적 사안이 과거에 대한 국민투표로 변질되는 ‘역사 전쟁’은 이 분열된 기억 위에서 영원히 계속된다.




이중잣대라는 생존 본능


기득권층의 이중잣대는 단순한 위선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심리적 방어기제다. 그들의 핵심 신념, ‘우리는 대한민국을 건설한 애국자다’라는 믿음은 ‘우리의 권력은 쿠데타와 고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과 충돌하며 견딜 수 없는 인지부조화를 낳는다. 사실을 바꿀 수 없기에, 그들은 해석을 바꾼다. 국가 폭력은 ‘사회 안정을 위한 조치’로, 독재 부역은 ‘국가 건설에 대한 보상’으로 합리화된다.


반면, 진보 진영에 가해지는 가혹한 ‘순결성 테스트’는 도덕 기반 이론으로 설명된다. 진보의 도덕성은 ‘약자 보호’와 ‘공정성’에 기반하기에, 작은 흠결도 정체성을 흔드는 ‘배신’으로 받아들여져 내부에서부터 더 큰 비판에 직면한다. 그러나 보수의 도덕성은 ‘충성심’과 ‘권위’를 더 중시하기에 외부의 공격에 직면하면 진영을 수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가 스캔들의 내용보다 우선한다. 외부에서 볼 때 ‘뻔뻔함’으로 비치는 행위가, 내부적으로는 ‘충성심’의 발현인 것이다.


결국 이중잣대는 기득권에게 심리적 필수품이 된다. 김민석 같은 인물의 사소한 흠을 부풀려 공격함으로써 ‘저들도 별수 없다’는 ‘도덕적 평준화’를 시도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추악한 과거를 상대적으로 희석시킨다. 이중잣대는 단순한 술수가 아니라, 권력 구조 전체를 지탱하는 심리적 기둥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김민석과 주진우의 충돌은 두 개인의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민중의 의지로 태어난 민주주의와 통제의 칼로 세워진 기득권 사이의 끝나지 않은 투쟁이다. 민주화의 유산을 계승한 아들 김민석과 공안 통치의 어두운 유산을 상속받은 아들 주진우가 벌인, 대리된 ‘역사 전쟁’이었다.


국민의힘의 전매특허인 '더티 플레이'로 대한민국 예비 총리의 정책에 대한 철학과 총리직에 대한 김민석의 총명한 생각을 더 많이 듣지 못한 건 아쉽다. 그러나 12.3 계엄을 수개월 전부터 예측하고 경계했으며, 내란 이후 지금까지 누구보다 이재명 대통령 곁에서 빠릿한 판단과 추진력으로 자신의 실력을 이미 차고도 넘치게 증명했으니 괜찮다. 무엇보다 나는, 김민석의 버릴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완벽한 글과 논리 전개, 연설을 좋아한다. 말과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그래도 인사청문회 덕분에 김민석이 대한민국 청년 정치인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당시(99년) 한 수트 브랜드 광고 모델로 받은 모델료를 결식아동 성금으로 전액 기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그는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왜 받지 않았느냐"는 의심 가득한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미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을 했으니 '명예'로 족하지 않는가, 보상금은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그에게 눈을 흘겼다. '돈'보다 '명예'를 좇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들은, '공익'을 위한 '희생'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보지 못한 그들은, 앞으로도 평생 '돈은 없지만 '가오'는 있는' 사람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김민석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이틀 간, 똑같은 질문만 반복하던 국민의힘은 청문회 이틀째날 오후 5시 청문회장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김민석 후보자는 자리에 앉아 벌 서듯 하염없이 기다렸고, 자정이 되면서 청문회는 자동 종료 됐다.


12.3 내란으로 나라를 무너뜨리는 한이 있어도 저들은 민주 진영이 국정 운영을 잘 하는 것을 도울 생각이 없다. 저들의 실력은 약하기 그지 없고, 저들의 말은 공허하다. 저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상대에 대한 '모욕 주기'다. 애초에 이 나라의 민주화가 달갑지 않았던 저들에게 국민은 그저 우스운 병풍일뿐이다. 12.3 내란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려 한 '반국가세력' 국민의힘 의원들이 청문위원으로 앉아있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수치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사람'이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한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부정당하고 사과를 요구받는 부조리. ‘가난’과 ‘희생’을 ‘증명’해야만 겨우 도덕성을 인정받는 반면, 세습된 부와 권력은 ‘능력’으로 포장되는 비대칭성. 이는 단순히 한두 정치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역사의 숙제다.


‘악’이 이토록 거침없는 이유는 그들이 오랫동안 구축해 온 견고한 기득권의 성 위에서 싸우기 때문이며, ‘선’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이유는 그 성벽 아래에서 맨몸으로 싸우며 정의의 가치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청문회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근원적이다. 공유된 과거에 대한 합의 없이, 우리는 어떻게 공유된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가?


역사적 심판이 계속 유예되고, 친일 매국 적폐 내란 세력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며, 주진우를 낳은 권력 구조가 끝내 책임지지 않는 한, 이 나라의 또 다른 김민석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도록 강요받을 것이다. 앞으로 누구도 김민석처럼 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김민석은 평생 집 한 채 가져본 적 없는 무주택자다. 나는 그가 이번에 총리가 되어 월급 잘 모아 집 한 채는 떳떳하게 가졌으면 좋겠다. 결벽증에 가까운 그의 청렴으로 고생한 가족들, 맛있는 것도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 그에게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민주당도 '돈'을 적대하지 말고 떳떳하게 벌어 오직 '돈'만 숭배하는 내란 세력에 당당하게 맞서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이 지독한 면책의 구조를 해체하고 마침내 과거의 청구서를 정산하는 과업에 달려있다. 끝나지 않은 대화,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여전히 망령처럼, 우리 모두의 미래를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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