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발행한 후의 시간은, 마치 수면 휴식 시간처럼 길고 더디게 흘러갔다. 그녀는 세상에 가장 내밀한 일부를 잘라내어 보이지 않는 바다에 띄워 보낸 후, 알몸이 된 듯한 기묘한 해방감과 쓰라린 불안감 사이를 부유했다. 그 글은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익명의 파도를 떠도는, 주소 없는 편지였다.
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 다이빙 센터의 일상을 수행했다. 장비를 씻고, 탱크를 옮기고, 케빈의 밍밍한 차를 마시며 클로드의 냉소적인 농담에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신경은 온통 낡은 노트북과 휴대폰의 작은 액정에 매달려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유리병 편지는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듯했다. 역시,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을까. 이 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누가 고작 이방인 여자가 한국어로 쓴 침묵에 대한 변명 같은 글에 귀를 기울인단 말인가. 익숙한 자기혐오가 뱀처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밤이면 잠을 설치며 자신의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어떤 문장은 너무 감상적이었고, 어떤 표현은 지나치게 관념적이었다. 서울에서 기사를 쓸 때처럼, 그녀는 스스로의 글을 가혹하게 난도질하며 그 안에 담았던 진심마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와 소금기를 씻어내던 그녀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광고 스팸이려니, 무시하려던 그녀의 눈에 ‘하나의 바다’라는 알림이 들어왔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주 작은, 그러나 선명한 파문이었다.
첫 댓글이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바다가 아니라, 제 마음속을 들여다본 것 같네요. 저도 제 언어의 갑옷을 벗어던질 곳이 필요했는데… 그런 바다가 정말 존재한다니, 잠시 숨을 고르게 됩니다.’
그녀는 그 짧은 문장을 몇 번이고 되뇌어 읽었다. ‘알아주는구나.’ 그녀가 번역하려 했던 그 침묵의 언어를, 이 익명의 누군가는 정확히 해독해 냈다. 화려한 찬사도, 의례적인 칭찬도 아니었다. 그저 한 영혼이 다른 영혼에게 건네는, 조용하고 깊은 공감의 악수였다. 그 순간, 지난 며칠간 그녀를 옭아매던 불안의 밧줄이 스르르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댓글을 시작으로, 아주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파문은 번져나갔다. 그녀의 글은 ‘꼬따오 싸게 가는 법’ 같은 여행 정보 사이트가 아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번아웃에 시달리다 휴식을 갈망하는 직장인들, 혼자만의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조용히 공유되기 시작했다. ‘좋아요’ 숫자는 폭발하지 않았지만, 댓글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글처럼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띄운 유리병 편지가 마침내, 길 잃은 다른 유리병들을 만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이메일이 도착했다.
제목: ‘하나의 바다’를 읽고 문의드립니다.
그녀는 차마 메일을 바로 열어보지 못했다. 심장이 세차게 뛰어, 갈비뼈를 부술 것만 같았다. 가격을 묻고 흥정하는 메일이라면, 그래서 결국 이 모든 것이 또다시 숫자의 문제로 돌아가 버린다면, 그녀는 아마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메일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하나 작가님. (그녀는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우연히 작가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중략)… 저도 작가님이 말씀하신, 말이 사라지는 바다를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경쟁과 소음 속에서 제 자신의 숨소리를 잊고 산 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혹시 저 같은 사람도, 그 바다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을까요?’
메일 어디에도 가격이나 일정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오직, ‘가능성’에 대한 조심스러운 물음만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답장을 썼다. 사무적인 비즈니스 메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길을 묻는 또 다른 여행자에게 자신의 섬으로 오는 길을 안내하듯, 진심을 담아 답했다. ‘물론입니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 당신의 숨이 준비되었을 때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가능한 첫 날짜를 적어 보냈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이 현실이 되어 그녀를 덮쳤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클로드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글을 보고 찾아오는 첫 손님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케빈은 제 일처럼 기뻐하며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것 봐, 하나! 내가 뭐라고 했어! 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잖아!” 하지만 클로드는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만 내뿜을 뿐이었다.
“그래서, 시인님의 첫 독자는 돈을 내고 시를 읽으러 온대?”
그의 첫 질문은 여전히 현실적이었지만, 이전처럼 날카롭지 않고 묘한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과장되게 한숨을 푹 내쉬며 다이빙 예약판을 쳐다보았다.
“젠장, 귀찮게 됐군. 이제 네 손님 스케줄 때문에 머리가 아파지겠어. 넌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강사인데 말이야.”
그의 목소리는 명백한 불평이었지만, 그 말속에 담긴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이미 그녀의 손님을 센터의 공식 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불평은, 그녀의 독립을 인정하고 기꺼이 그 수고로움을 감수하겠다는 그만의 서툰 표현 방식이었다. 그는 예약판 구석에 ‘Hana’s Guest’라고 휘갈겨 쓰고는,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알아서 잘해. 괜히 나까지 바쁘게 만들지 말고.”
그 퉁명스러운 말속에는, 그러나 ‘나는 네가 잘 해낼 거라 믿는다’는, 그 어떤 다정한 격려보다 단단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비로소, 진정한 독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성공의 기쁨보다, 더 크고 무거운 책임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며칠 후 도착할 첫 손님을 기다리며, 그녀는 매일 같이 홀로 바다에 나갔다. 장비를 점검하고, 조류를 살피고,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산호 군락으로 가는 길을 몇 번이고 답사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바다를 누군가와 함께 나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이제 자기 자신만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제, 정말로 ‘바다의 문지기’가 되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