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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장. 번역할 수 없는 언어

by 조하나


마테오와의 다이빙이 남기고 간 벅찬 감동의 쇠 맛이 혀끝에서 채 가시기도 전의 아침이었다. 세상의 모든 색이 전날과는 미세하게 다른 채도로 빛나는 듯했지만,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는 필연적으로 공허했다. 감동은 영혼을 살게 하지만, 몸을 살게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지독히도 현실적인 질문이, 밤새 그녀를 괴롭혔던 축축한 이불의 무게감처럼 여전히 그녀의 의식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서울을 떠나왔다. 돈, 돈, 돈. 그 단 하나의 음절로 수렴되는 세상의 모든 욕망이 지긋지긋 해서였다. 점심시간이면 다들 모여 앉아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를 나눴고, 월급은 다음 달 카드값을 막기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에 불과하다며 푸념을 늘어놨다. 얼굴이 없는 돈은 모든 곳에 존재했다. 그리고 자기를 헐뜯는 소리, 욕망하는 소리 모두를 듣고 있었다. 그녀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울 사람에게 인생의 의미를 묻는 것은 사치였고,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내일을 저당 잡히는 좀비처럼 살아갔다. 그녀는 그 좀비들의 행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또 다른 무언가 대단한 걸 이뤄 그들에게 보란 듯이 교훈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녀는 살기 위해 도망쳤다.

그런데 지금, 이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작은 섬에서 그녀는 무엇이 달라진 건지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여기에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을까?’

창밖으로 보이는 야자수 잎사귀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그녀의 눈에는 월세와 생활비의 숫자로 환산되어 보였다. 잔잔한 파도 소리는, 귓가에서 ‘돈이 없으면 바다도 없다’고 속삭이는 클로드의 목소리처럼 들려왔다. 돈으로부터 도망쳐 온 이곳에서, 그녀는 오히려 더 벌거벗은 채 돈의 위력 앞에 서 있었다. 사회적 지위나 명함 같은, 돈이 없음을 가려주던 최소한의 갑옷마저 모두 벗어던진 채.

결국, 그녀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장소만 바꿨을 뿐, 그녀는 여전히 서울의 중력에 갇혀 있었고, 돈이라는 망령에 쫓기고 있었다. 이 우스꽝스럽고도 비참한 상황을 연출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스스로를 향한 혐오감이 역류했다. 이 낭만적인 도피극의 연출자도, 결국 이 모양 이 꼴로 자신을 내몬 무능한 자신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마음이 지옥이니, 파라다이스도 지옥이었다. 한국행 비행기 표를 검색하던 손가락의 서늘한 감각, 휴대폰 액정 위에서 무심한 사형 선고처럼 빛나던 통장 잔고의 숫자들. 이 감동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명징한 사실이, 가차 없는 아침 햇살처럼 눈꺼풀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무심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무거운 공기탱크를 들어 올리고, 수없이 밸브를 여닫으며 노르스름하고 단단한 지도를 그려낸 굳은살. 서울에서 펜대와 키보드에 길들여져 핏기 없이 하얗기만 하던 그녀의 손과는 전혀 다른, 투박하고 정직한 손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이 섬에서,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세계와 부딪히며 얻어낸 흔적이자 바다가 새겨놓은 언어였다. 그 거친 감촉을 느끼는 순간, 안개처럼 흐릿하던 길의 윤곽이 아주 조금, 선명해지는 듯했다. 그녀가 팔아야 할 것은 다이빙 ‘상품’이 아니었다. 이 굳은살이 기억하는 바다의 ‘경험’ 그 자체여야만 했다.

숙소로 돌아온 그녀는, 또다시 낡은 노트북을 열었다. 모래와 소금기가 박힌, 열릴 때마다 삐걱, 하고 앓는 소리를 내는 그 노트북. 서울의 그녀였다면, 이 불길한 신음 소리를 듣자마자 최신형 노트북의 스펙을 검색하고 있었을 것이다. 더 얇고, 더 가볍고, 더 빠른. 하지만 이 섬에서 새로운 노트북을 손에 넣는다는 것은, 두세 시간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 또다시 버스를 타고 도시로 향해야 하는 고된 여정을 의미했다.

문득, 그녀는 깨달았다. 새로운 물건을 사는 행위는, 그 물건을 소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얻기까지의 과정, 그 설렘과 기대감마저 즐길 수 있어야 완성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 모든 과정은 이제 기쁨이 아닌 피로였고, 필요도 가치도 없는 소모적인 행위일 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새로운 노트북의 반짝이는 표면보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와 하늘과 정글의 표정을 살피는 일에 더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먼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서울에서부터 이어진 강박으로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An unforgettable experience in the crystal clear water.’


하지만 손가락은 몇 문장을 채 타이핑하지 못하고 허공에서 돌처럼 굳었다. 그 단어들은 박제된 나비처럼 생기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그녀가 바닷속에서 느꼈던 감정의 껍데기만을 핥을 뿐, 그 심연의 미묘한 결을 조금도 담아내지 못했다. 뭍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의 그 ‘적막함’, 모든 것이 수평이 되는 세계의 ‘평온함’, 우주의 먼지가 된 듯한 ‘자유로움’과 ‘허무함’이 뒤섞인 그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효율과 명료함의 언어인 영어는 온전히 번역해 낼 수 없었다.

그녀는 깊은 아이러니와 함께 깨달았다. 침묵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언어를 번역하기 위해, 자신에게는 가장 깊고 섬세한 언어, 즉 자신이 그토록 도망쳐 온 ‘한국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녀의 상처와 기쁨, 분노와 체념, 그녀의 모든 삶이 녹아 있는 그 모국어야말로 바다의 침묵을 가장 진실하게 번역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자신의 ‘한국인’ 정체성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강력한 무기로 끌어안는 첫 순간이었다.

그녀는 이름 없는 작은 돛단배를 띄우는 심정으로, 소박한 개인 블로그를 열었다. 이름은 ‘조하나의 아일랜드’. 그녀의 이름이기도 했고, 모든 것이 경계 없이 이어지는 망망대해에서 제각각 따로 떨어진 섬 같은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곳에, 그녀는 한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광고도, 화려한 수식도 없었다. 마테오의 고요한 눈빛, 소리가 사라진 세계에서 비로소 시작된 진짜 대화, 지상의 모든 이름과 역할의 무게가 사라지던 그 경이로운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우리는 모두 바닷속에서 말을 잃는다. 뭍에서 우리를 겹겹이 둘러싸던 그 모든 언어의 갑옷을 벗어던진다. 그리고 비로소, 진짜 대화를 시작한다.’

그녀의 손가락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글쓰기가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강박이었다면, 지금의 글쓰기는 오롯이 자신과,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미지의 영혼들과 연결되기 위한 순수한 행위였다. 오직 그녀의 진심만이 담긴 글을, 그녀는 작은 유리병 편지를 바다에 띄우듯, ‘발행’ 버튼 위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아주 잠깐의 망설임. 그리고, 조용한 클릭. 그것은 단순한 글쓰기의 시작이 아니었다. 과거의 자신을 끌어안고 새로운 방식으로 숨쉬기 시작하는, ‘하나’의 진정한 홀로서기의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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