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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는데 그리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by 조하나


늦은 오후 한적한 섬, 해변에 있는 카페 코코넛 몽키에 들렀다. 오전 다이빙을 마치고 오가닉 메뉴가 주인 그곳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지터블 퀘사딜라와 치즈 케이크 한 조각, 그리고 커피 한 잔을 하려고. 1년 넘게 꼬따오 밖에 있다 돌아오고 보니, 팬데믹으로 내가 아는 섬에 있던 친구들의 90프로는 고국으로 돌아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알고 지내던 열 중 하나 꼴로 남은 친구들을 일부러 연락해 만나려하지는 않았다. 코로나 상황을 멕시코와 한국에서 보내고 돌아온 나는 이미 ‘거리두기’라는 게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섬이 워낙 작아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마주치게 되니 자연스럽게, 천천히 하자 싶었다.


카페에 들어서자 누군가 나를 부른다. “하~~~ 나~~~!!!” 내가 꼬따오를 떠나기 전 다이브 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러시안 강사 Mira다. 평소 같았으면 만나자마자 포옹에 가벼운 볼 키스를 나누던 그녀인데, 이제 는 쭈뼛쭈뼛 망설인다. 하지만 Mira는 “I know you are safe.” 하며 나를 꼭 안는다. 그녀 역시 랩탑 하나 챙겨 들고 집을 나와 러시아 친구들과 줌 미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테이블을 옮겨 그녀 옆에 앉았다. 멕시코에 가서 다이빙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내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냈고, 당시 이제 막 강사가 되었던 그녀는 나에게 큰 영감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전했었다. 안 본 지 1년이 넘었는데 모든 게 다 어제 같다. 나는 1년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이 섬으로 돌아왔고, Mira는 팬데믹 내내 이 섬을 지켰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에 그녀는 배시시 웃는다. 팬데믹 이전 우리는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가장 바쁜 다이브센터에서 함께 일했다. 나는 정원을 꽉 채워 다이빙 코스를 쉬지 않고 이어갔고, 그녀 역시 새내기 강사로 힘들기로 소문난 DM팀에 합류해 정말 열심히도 일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팬데믹, Mira는 작년 이맘때를 떠올렸다. 거짓말처럼 섬을 찾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늘 불평하던 바쁜 일이 줄었고 한동안 다이빙도 못 했다고 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웠고, 러시아로 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여기에서 뭘 해야 할지도 몰라 처음엔 막막했다고. 그러면서 차츰 시간이 흐르고, 그녀는 비로소 자신을 찾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예전엔 너무 바쁘게 다이빙 일 하느라 이 섬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지 모르고 살았어.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일이 없어지니까 그것도 중독이었는지 못 견디겠더라. 그러다 하루하루 책도 읽고, 해변에 누워 태닝도 하고, 섬 이곳저곳 하이킹 다니며 뷰포인트도 가고, 정글도 헤매 보고, 스노클링도 하면서 비로소 이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 파라다이스인지를 알게 됐어. 가만 생각해 보니 사는데 많은 게 필요치 않더라. 밥 먹고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건강하게 사는 거, 그게 제일이더라고. 팬데믹 자체가 저주인 건 알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겐 좋은 계기가 됐어. 내 삶을 돌아보고 정비할 수 있는 계기.”


Mira는 예전의 딱딱하고 결과 중심적이며 스스로를 몰아붙여 스트레스를 만들어 받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나 역시 한때 그녀와 비슷했기에 잘 안다. 그녀의 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미소도 더 따뜻해졌다. 그녀 말이 백 번 맞다. 사는데 정말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 특히 이곳, 일 년 내내 따뜻한 열대 섬에서는. 계절마다 바꿔 입을 옷도, 화려한 장신구도, 유행에 발맞춰야 하는 부담도 없다. 이곳에선 유행 따라간다 해도 아무도 알아보는 이가 없어 소용이 없다. BTS의 빌보드 소식도, 서구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안 혐오 범죄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미얀마도, 인도도, 바다 건너 저 먼 다른 세상 이야기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돕고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누구 하나 더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는다. 이 섬에서 우린 그저 모두 이방인이고 반은 벌거벗고 사는 사람들이다.


Mira는 곧 러시아로 돌아가려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 섬에서 만나 함께 살아온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반려동물을 데리고 배 타고 차 타고 비행기 타는 게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 섬엔 팬데믹으로 떠난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개와 고양이가 더 많아졌다. Mira는 이 섬에서 받은 선물이니 고양이 둘을 무책임하게 누군가에게 맡기거나 버리고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반쯤 이미 망한 세상에 Mira 같은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이 섬에 돌아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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