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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HARU Jul 05. 2021

엄마의 김치


태어나 한 번도 수개월 이상 집을 떠나본 적이 없다. 생각이 짧아 까불었던 십 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여전히, 아니 더 까불던 이십 대엔 어떻게든 집을 나오려 버둥거렸다. 자의 반, 타의 반, 세상 무섭단 걸 정확히 인식하게 된 서른을 전후로 해선 어떻게든 집에서 안 나가고 버티려 버둥거렸다. 그런 내가 다이빙을 하겠다고 제 발로 집을 떠나 이 섬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일어난 여러 가지 심리적 변화는 그 어느 때보다 낯설고 또 선명하다. 정서적 거리감이 그리 가까울 수 없는 유러피언 사이에 유일한 동양인이자 한국인으로 다이버 생활을 하고 있자니 가끔은 내 맘을 툭 터놓고 이야기해보고 싶건만 내가 아는 영어로 그 세세한 감정의 선까지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하여 침묵이 때론 더 나은 법이라 입을 닫는다.


이곳 사람들은 늘 자유롭고 편안하다. 우리는 농담을 나누며 웃는다. 다이빙은 여전히 설렌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저런 이유로 컨디션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한동안 다이빙을 쉬어야 했다. 바다에 못 들어가고 계속 땅만 밟고 있자니 나의 오랜 버릇, ‘생각에 생각 꼬리 물기’가 이어졌다. 다이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평생 도시에 살았다. 30년 훌쩍 넘게 한국에 살면서 단 하루라도, 단 한 시간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죄라 느꼈다. 잘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 두겠다 하니 ‘미쳤구나’ ‘앞으로 뭐 먹고 살래’ ‘정신 차려’ 같은 말들이 활처럼 날아왔다. 나는 이미 무언가 끊임없이 해야만 하는 사회적 시스템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무언가 보든가 읽든가 듣든가 쓰든가 누군가 만나던가, 안 되면 뛰기라도 해야 했다. 말 그대로, 온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의 의미를 여태 나는 잘 몰랐다. 그런 내가 ‘진정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의 의미를 이 섬에서 실체로 마주했다. 다이빙 말고 나는 정말 이곳에서,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여행자나 관광객들에게 주어진 일주일 정도면 어떻게 이것저것 해보겠지만, 로컬로서 외딴 시골 섬에 산다는 건 도시의 라이프스타일 90%는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처음엔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되려고 이곳에 제 발로 찾아온 건데, 막상 몸이 안 좋아 다이빙을 한동안 쉬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니 사람이 무방비 상태가 되더라. 30년 넘도록 만들어진 나란 사람은 주어진 1시간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내야 잘 보냈다 소문이 나나 궁리를 해왔다. 그런데 이곳에선 30년 넘게 해온 그 짓이 소용없다.


이런 게 소위 말하는 우울증이라는 건가, 향수병인가. 아무것도 먹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 얘기도 하기 싫다. 더군다나 그게 영어라면 더더욱. 왜 내가 우리 팀 사람들을 위해 영어로 말해야 하나, 내 모국어는 한국어인데. 괜히 한 번도 않던 투정이 솟구쳤다. 그러다 이내 ‘내가 선택한 길인데 이러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금세 이유 없이 화가 나고, 또 그러다 무기력해졌다. 가장 간절히 생각나는 게 김치였다. 다른 휴양지 섬들과 다르게 꼬따오는 마트에서 쉽게 한국 음식이나 재료를 구할 수 없다. 얼마 전까지 장사하던 이 섬 유일한 한국 식당도 비싸긴 했지만 어쩌다 찾아가 한식 한 입 넣으면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는데, 이마저 문을 닫았다. 김치를 구하려면 배를 타고 2시간을 달려 큰 섬인 사무이로 가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김칫값보다 페리 티켓값이 더 비싸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와 나의 사이는 꽤 멀다. 나는 여전히 엄마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엄마는 여전히 나를 다 받아들이지 못한다. 엄마에게 몸과 마음이 누더기 같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거기서 까불지 말고 그냥 한국 들어와 얌전히 회사나 다니면서 돈 벌어 시집 가’ 할 게 뻔하다. 그럼 우린, 또 싸우겠지. 그냥 김치와 라면을 좀 먹고 싶은데 보내줄 수 없냐고만 했다. 작년 꼬따오에 있을 때 한국에서 웻수트를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물건이 하도 안 와 확인해보니 진즉에 꼬따오 우체국에 도착은 했는데 택스를 내야 해서 찾으러 간 적이 있다. 태국은 알 수 없는 뒤죽박죽 시스템으로 그냥 담당자 기분 내키는 대로 세금을 부과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태국 밖에서 들어오는 택배 받을 일을 안 만들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음식은 괜찮을 거라고 했다. 엄마에게 김치와 라면을 간소하게 보내 달라 부탁하고 다이빙 센터 주소와 전화번호를 영어로 알려줬다. 엄마는 타국살이 하는 딸을 위해 평생 안 해본 국제 소포 발송까지 하게 됐다. 


엄마는 소포를 보내는 데 한참 걸렸다. 행여나 닦달하면 맘 틀어져 안 보내줄까,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 일주일 정도 지나 드디어 엄마가 보낸 사진 한 장. 커다란 박스에 총각김치, 배추김치, 신라면 3팩, 맥심 커피믹스 1팩, 김 20봉지를 알차게도 구겨 넣은 모습이었다. 아니, 간소하게 보내래도 뭐가 이리 많이 보내냐, 하긴 했지만, 나는 이게 엄마 나름의 애정 표현이라는 걸 안다. 무뚝뚝하고 차갑고 시니컬한, 대한민국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평생의 반 이상을 살아온 여자다. 나는 이제야 조금이나마 엄마의 차가움과 날카로움의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기에, 엄마에게 박스가 너무 커서 세관의 문제가 될까 걱정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엄마의 소포가 출발했다. 추적 조회를 해보니, 불과 3일 만에 물건은 태국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받은 적도 없는 물건이 배송 완료 표시가 뜬다. 엄마가 정성스레 싸 보낸 물건이 태국에 들어왔는데, 나 아닌 누군가 이미 받았다니! 한달음에 꼬따오 우체국에 달려가 확인했더니, 맙소사, 내 물건이 코사무이 세관에 있다고, 직접 거기로 전화해 보란다.


전화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직접, 코사무이로 가야 한다. 아니, 엄마가 한국 우체국에서 EMS를 보낼 때 배송비 지불할 거 다 지불하고, 태국에선 음식엔 택스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 주소가 꼬따오인데 왜 그게 코사무이에 있냐, 적어도 꼬따오 우체국까지는 보내주면 내가 가서 세금 내고 찾아오면 되지 않냐, 했더니 여권 들고 코사무이 세관에 내가 직접 가서, 세관원과 함께 소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후, 계산된 세금을 지불하고 찾아가라고 했다. 너무 화가 났지만, 만약 이 소포를 받길 원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그냥 돌려보내겠단 말에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나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소포 안 내용물이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되겠지만, 나는 ‘우리 엄마가 보낸’ 그 박스를 포기할 수 없었다. 당장 다음날이라도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나를 보러 온 손님이 오픈워터 코스를 시작해야 했기에 나흘 후에나 코사무이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었다. 나흘이나 세관 창고에 더 있어야 할 엄마의 김치는 이미 쉬어 터졌겠지. 쉰 김치는 괜찮았지만, 우리 엄마 딸 생각하는 마음이 태국인에 무시당했다는 기괴한 피해 망상에 마음이 상했다. 그날 나는 이 섬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혼자, 많이 울었다. 그날 밤은 태국도 싫고, 태국 사람도 싫고, 꼬따오도 싫고, 모든 게 싫었다. 처절하게 외롭고 서러웠다. 내가 바란 게 무슨 금 두른 캐비어도 아니고 일 등급 한우도 아닌, 그저 엄마의 김치였을 뿐인데, 그게 내 손에 들리는 게 이리 어려울 일인가. 안 그래도 약해진 몸과 마음에 모든 게 무너지던 끔찍한 밤이었다.


최악의 몸 상태로 한국 손님 오픈워터 코스 어시스트를 끝냈다. 틈만 나면 내 마음은 엄마의 김치에 가 있었지만,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코스가 끝나고 손님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 메시지를 보냈다. “안 좋은 컨디션에도 잘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라면에 김치 얹어 드시고 힘내세요!” 하고. ‘라면에 김치 얹어’라는 부분을 한참 동안 멍하니 쳐다봤다. 내가 태어나 살아오며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라면’과 ‘김치’가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였다니. 거기에 ‘엄마’라는 단어를 더했다.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은 제각기 다른 역사와 드라마를 갖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엄마와 나의 이야기는, 그리고 감정은 너무도 복잡해 차마 시작할 엄두도 안 난다. 그만큼 ‘엄마’는 나에게 무거운 단어다.


다음 날, 새벽 6시 배를 타고 사무이로 향했다. 이미 왕복 티켓으로 1,300밧은 쓴 상태였다. 항구에 내려 세관을 찾아가 여권을 보여주고 송장 번호를 알려주니, 자기들끼리 한참을 쑥덕쑥덕하더니 멀찍이서 커다란 박스를 들고 온다. ‘엄마다, 저기 엄마 온다!’ 나에겐 그 커다란 박스가 엄마처럼 보였다. 이걸 어떻게 들고 다시 꼬따오로 돌아가나 걱정할 새도 없이 박스를 마주하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었더니 세관은 나에게 열어보란다. 송장에 ‘FOOD’라고 쓴 거 안 보이냐 했더니 그래도 열어보란다. 박스를 열었더니 엄마가 소포를 보내기 전 사진 찍어 보내준 그대로 물건들이 자리했다. 엄마는 김치를 보낸다고 아이스 팩까지 함께 넣었는데 그게 태국 열대 기온에 다 녹아 이미 핫팩이 되어 버린 상태, 김치는 쉬어 냄새가 많이 났다. 거기에 라면과 커피믹스, 김 20봉지, 그게 다였다.


세관원들도 멋쩍었는지 나보고 이게 다 해서 얼마 정도 되냐고 물었다. 태국 돈으로 500밧도 안 된다고 했더니, 이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세금을 계산하기 시작한다. 엄마가 이미 한국 우체국에 지불한 배송비까지 물건값에 더한다. 그래, 여긴 태국이고, 나는 외국인 노동자니까. 그래서 나온 세금은 600밧. 따오, 사무이 오가는 뱃값만 1,000밧 넘게 썼다, 여기까지 물건 찾으러 온 것도 억울한데 왜 이러냐, 울먹였다. 세관은 “네가 이 물건을 원하지 않으면 우린 그냥 한국으로 돌려보내면 돼” 하는 말만 반복했다. 미치고 팔짝 뛰겠는데 방법이 없었다. 세관의 말투와 표정, 모두 기계 같았다. 나는 600밧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었다. 한국에서 느꼈던 그 기계다움을 여기에서도 느끼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욱하는 마음에 “니들, 나한테 돈 뜯어내려고 그러는 거지. 그래, 나 이거 안 가져갈 테니까 니들이 먹든지 버리든지 마음대로 해!” 하고 세관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세관 앞 길거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렸다. 사람들이 쳐다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여기 내 나라도 아닌데, 나도 니들처럼 예의 없이 굴 거야! 그러다 스스로의 옹졸함과 유치함에 부끄럽고 서러워 더 펑펑 울었다. 


함께 간 영국 친구가 말했다. “진심 아닌 거 알아. 그냥 김치랑 라면 아니잖아. 네 엄마가 보낸 사랑이잖아. 내가 들어가서 찾아올게, 여권 줘봐.” 나는 눈물 콧물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여권을 내밀었다. 엄마를 그냥 여기에 내버리고 갈 순 없었다. 한참이 지나 친구가 커다란 박스를 들고 웃으며 나타났다. “자, 여기, 엄마 김치.” 파란 눈에 금발 머리, 영국식 악센트가 강한 이 친구는 김치가 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그 박스의 의미가 나에게 어떤 건지 정확히 이해했다. 쉰 김치 냄새가 진동하는 박스를 가지고 나는, 엄마 없이 스스로 찾은 또 다른 집으로, 배를 타고 스쿠터를 타고 돌아왔다. 향수병인지 우울증인지 무기력증인지, 마음의 부대낌이 사그라들었다. 나는 엄마를 부정하려는 만큼 사랑하고 있었다. 


김치를 용기에 옮겨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나는 라면을 끓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일찍부터 맞벌이를 하는 바람에 나는 엄마가 해준 음식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혼자서 제일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건 라면이라 하루 세끼 라면만 먹은 날도 잦았다. 나에게 라면은 애처롭고 외로웠던 유년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채워준 음식이다. 라면에 김치를 얹어 천천히 한 입 넣었다. 그게 마치 무슨 거창한 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복하고 서글프고 그립고 평화로웠다. 그 순간의 감정은 그 어떤 언어로도 설명하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기력을 많이 되찾았다. 여전히 냉장고엔 엄마의 신김치가 있고, 싱크대 찬장은 라면과 김으로 채워졌다. 괜히 마음 든든하고 배가 부르다. 여기서 어떤 힘든 일이 생겨도 이제, 라면에 김치 얹어 한 그릇 뚝딱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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