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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HARU Oct 23. 2021

깊은 밤 바닷속에서

깊은 밤 바닷속에서


수년째 겨울옷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트렁크 하나로 정리되는 삶을 유지하려니 무언가 하나 살 때마다 ‘정말 이게 나에게 필요한가’ 고민하게 된다. 이곳이 내 집이 아니란 생각 때문이 아니라 덜 사고, 덜 쓰고, 덜 욕망하고, 덜 추구하는 ‘가벼운 삶’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플리플랍 하나로 일 년이 족한 트로피컬 섬에 살면서 진정한 ‘명품’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사람들이 명품 브랜드에 미친 이유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봐주길 바라는 욕망의 배설이다. 허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곳에선 명품 브랜드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명품의 가치가 아닌 가격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이 섬에선 람보르기니를 몰고 다녀도 부러움을 사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이 ‘파라다이스’라 부르는 곳에 오래 살다 보니 더 이상 내 삶에 ‘여행’이라는 콘셉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 여행일진대, 나는 이미 이곳에서의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눈 뜨면 내다보이는 바다, 하늘, 그리고 정글, 이 모든 당연한 것이 여전히 나에겐 당연하지 않다. 나는 이곳에서 당장이라도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외국인, 그리고 이방인이다. 판타지와 현실의 충돌이 하루에도 여러 번 일어나는 이곳의 삶을 나는 당연하게 여길 수 없다.


안정감과 익숙함을 피해 도망친 이곳에서의 불안정함과 낯섦은 내 선택에 대한 대가이자 책임이다. “가장 큰 결실을 거두고 인생에 가장 큰 즐거움을 얻는 비결은 위험하게 사는 것이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나는, 위험하게 살고 있음을, 또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기로 한다. 다이빙을 업으로 지속하는 삶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나, 지구에서 유일하게 중력을 거슬러 부유할 수 있는 곳, 바닷속에서 나는 비로소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다이빙은 유한하다. 영원히 바닷속에 머물지 못하고, 언제고 다시 뭍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면 나는, 소라게처럼 껍질 속에 숨어 또다시 바닷속을 꿈꾼다. 


뭐가 그리 힘들고, 뭐가 그리 피하고 싶어 자꾸 바닷속으로 들어가는가. 외로움, 분노, 질투, 자격지심, 불안 등 뭍에서의, 그리고 삶에서의 다양한 감정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닐까. 태어나 자란 사회 환경에서 알게 모르게 내 안에 가장 깊은 뿌리를 뻗은 감정은 바로 자격지심이다. 돈과 권력이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금수저’라는 타이틀이 붙는다면, 언제나 그 반대 개념인 ‘흙수저’도 존재한다. 한국에서 82년에 태어나 자란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밀레니엄 세대’ ‘88만 원 세대’ ‘아프니까 청춘’으로 불리며 살았다. 이 사회라는 시스템은 이름 붙이길 참 좋아한다. 이 모든 건 그저 마케팅의 대상으로 붙여진 이름일 뿐, 사회는 그런 나를 조금도 걱정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받아들인다. 사회가 명한 타이틀에 맞게 분수를 지키며 열심히 산다. 나는 그 사회에 길들여져 ‘흙수저’라는 꼬리표를 받아들고, 내 분수에 맞을만한 그룹을 찾아 그 안에서 안간힘을 써가며 스며들고는 결국,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하며 체념 속에 살아가기 싫었다. ‘금수저’가 될 수 있다는 신기루를 좇으며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것도 지쳤다. 그렇다, 나는 ‘열심히 산다’는 사회가 만든 콘셉트에 지쳐버렸다. 


새침하고 깔끔 떠는 ‘시티 걸’이었던 나는, 이 작은 외딴섬에서 7년을 보내며 굳은살로 딱딱해진 손바닥과 상처투성이 무릎을 내려다본다. 주근깨, 기미 가득 까무잡잡해진 피부와 염색기 다 빠진 내 본연의 머리칼도 눈에 들어온다. 수도권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느라 매일 3시간 이상을 길 위에 뿌리고도, 늘 반짝이고 화려한 것만 쫓아다니던 나는 지금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든다. 잠시 한국에 놀러 가도 여전히 화장기 없는 얼굴에, 대충 털어 말린 머리에, 아빠 옷을 걸치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거리를 걷는다. 위아래로 나를 훑으며 눈을 굴리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한국을 떠나기 전의 나였다면 어떻게든 마음 썼을 일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기를 쓰고 좋은 집, 차, 옷, 시계를 사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맞바꾼다. 하지만 나는, 이젠 아니다. 세상의 기준으론 내세울 거 하나 없는 사람이어도 스스로 내 삶이 마음에 든다는데 누가 뭐라 할 텐가. 


시스템의 딜레마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 시스템을 벗어나면, 또 다른 시스템에 들어가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내가 나고 자란 시스템을 떠나면서 이미 예상한 부분이긴 하지만, 역시 현실은 어디든 녹록치 않다. 시스템이 싫어 바닷속으로 도망치는데, 그러는 데에도 먹고 살 돈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는, 계속 바닷속으로 도망치기 위해 돈을 번다. 돈을 벌기 위해 또다시 사람들과 부딪히며 다이빙을 가르치고 마케팅을 해야 한다. 뭍으로 나올 때마다 이 섬의 시스템에서 또 다른 형질의 정치와 사회생활, 이익집단 각각의 이기심에서 생긴 충돌을 겪어내야 한다. 그래도 서울에서 잡지사 다니며 생활할 때보다 견딜만한 이유는 온전히 나를 위해, 내 선택에 의해, 내가 직접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 다니는 게 마음은 편하지’ 나도 그런 생각으로 수년간 직장 생활을 연장했다. 하지만 월급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내 시간을 바친 대가다. 그것도 회사의 이름과 이익을 위해서. 나라는 사람, 나라는 사람의 삶, 그리고 내 삶의 시간의 가치가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인사 담당자의 평가에 의해 매겨진다. 내 시간의 가치에 비해 내가 받는 월급은 터무니없다. 여전히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면,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내 시간을 헐값에 넘기고, 동시에 자괴감에 빠져 자책만 했을 것이다. 근본적인 스트레스의 근원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니, 매달 월급날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이것저것 쓰지도 않고 쌓아놓을 물건을 사면서, ‘나는 왜 늘 이렇게 돈이 없지’ 허탈해 하고 있겠지. 그러면서도 살만한 삶이라 스스로 최면을 걸겠지. 


1936년 창간 당시 <라이프>의 발행인 헨리 루스(Henry Luce)는 선언문 ‘새 매거진을 만드는 취지(A prospectus for a new magazine)’를 동료들과 공유했다. ‘삶을 그리고 세상을 보자. 엄청난 일들의 증인이 되자. 가난한 이들의 얼굴과 거만한 이들의 행동을 관찰하자. 기계나 군대, 집단, 그리고 정글과 달의 그림자 같은 기이한 물건들을 보자. 그림이나 건물들 그리고 발견들을 보고,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것들을 보자. 벽에 가려진 것들과 방안에 있는 것들, 위험한 것들, 여성과 아이들을 살피자. 관찰하고 관찰하는 즐거움을 느끼자. 보고 놀라자. 보고 또 배우자.’ 한국을 떠나 이 섬으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철저한 ‘관찰자’였다. 다른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에 집착했던 건 바로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걸 회피하는 방법이었다는 걸 트렁크 하나에 욱여넣은 삼십 년 넘은 삶을 경험하고서야, 이 섬에 오고서야 깨달았다. 내 짐을 덜어낸 만큼 내가 채워야 하는 것은 바로 나라는 사람의 인격, 그리고 자유라는 걸.


오랫동안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며 오랫동안 다른 수많은 이의 삶에 기대어 살았다. 그들의 삶을 지면의 이야기로 옮겨내며 내 삶은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고민했다. 내 자격지심은 내 삶의 곤궁한 경험으로부터 출발한 것임을 깨달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남들이 삼성, 현대, 엘지에 가고 싶다고 할 때 ‘내 삶의 이야기가 풍부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서울이 좁았고, 한국이 답답했다. 빌딩 숲 사이에 가려진 달빛을 쫓으며 먼 바다를 그리워만 했다. 사람과 돈은 좇아봤으니 이제 바다와 달과 별 가까이 살 차례였다. 결국, 내 삶의 뿌리 깊은 자격지심은 ‘흙수저’라 부르는 세상이 만든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든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을 모두 시스템 탓으로만 돌릴 순 없었다. 당장 떠나 나만의 이야기로 내 삶을 채우지 않으면, 나는 평생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기웃거리다 말 것이었다. 늦었다고 미루다 보니 더 늦어졌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저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되는 거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렇게 떠나온 애증의 도시 서울과 편리하고 신박한 것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시티 라이프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외딴 시골 섬에서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지금, 내 선택의 무게와 그에 따른 책임감도 더 이상 나를 짓누르지 않는다. 


이 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무언가 이뤄야 한다는 의무감에 열심이었다. 인정받으려 했고, 아는 척했고, 실수를 감추려 했다. 이제 나는, 이 세상에서 갑자기 어느 날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처럼 살기를 원한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가볍게, 그리고 자유롭게, 지식보다 경험을 채우며 지식의 포화상태로 꽉 차고 썩어 새로움을 못 받아들이는 무지의 상태를 스스로 들여다보고 반성할 줄 아는 삶을 원한다. 기술은 끝없이 발전한다. 중요한 건 그걸 쓰는 사람의 마음이다. 교양이나 지식, 부 역시 같다. 돈 잘못이 아니라 돈을 가진 사람의 죄다. 이 섬 역시 그렇다. 이 섬에 어떤 문제라도 있다면, 그건 이 섬의 잘못이 아닌,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문제다.


얼마 전 잠시 한국에 머물 때 부동산 비리로 도배된 뉴스를 보며 아빠에게 무심코 말했다. “아빠가 평생을 노력해 우리 가족이 이만큼 살 수 있어 다행이야. 이 정도면 충분해. 고마워, 수고했어. 그리고 나 다이빙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늘 응원해 줘서 고마워.” 이 담백한 대화가 내 삶과 인생, 그리고 내 세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불현듯 느껴졌다. 머리와 마음이 뜨거워졌다. ‘더… 더… 더…’라는 가치보다 ‘Enough’라는 가치가 마침내 내 삶의 우선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몇 년 전 나를 찾아와 프로페셔널 다이빙 코스 교육을 진행했던 한 한국인 친구는 이 섬을 찾은 이유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죽어가는 느낌이 들어서”라고 말했다. 


타국 외딴 작은 시골 섬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 여정의 목적은 진정한 ‘홈’을 찾는 거라 생각했다. 집, 학교, 사회,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던 내가 평생 살아가며 풀어야 할 숙제였다. 명쾌한 답도 없고, 안 풀겠다 미룰 수도 없는 이 문제가 나를 내내 괴롭혔다. 이 섬에서 몇 년을 보내며 한동안 이곳이 내 삶의 진정한 ‘홈’이라 여기며 집착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홈’이라는 개념조차 나에겐 더 이상 중요치 않다. 가난하기 그지없는 영혼과 마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부딪히고 헤어지면서 우리는 모두 그저 잠시 스칠 뿐이다. 내가 어디에 머물든, 어디에 정착하든, 내 마음이 지옥이면 트로피컬 아일랜드도 지옥이요, 내 마음이 천국이면 어디든 천국이다. 


여전히 나는 도시의 노예근성을 다 버리지 못했다. 여전히 일없이 놀면 불안하고, 스스로 한심해하며 자기 검열과 반성을 오간다. 타국 만리에서도 부자 부모가 사준 집에서 좋은 차 굴리며 평생 일 안 하고 맛집이나 다니는 친구들 소식에 여전히, 그리고 가끔, 조금 마음이 꼬인다. 내 인생 변함없는 가장 큰 수수께끼는 ‘권태’이기에 그들의 호화로운 삶이 부럽진 않다. 부자의 권태는 답도 없다. 


불공정과 불공평, 부정한 시스템에 대한 울화도 여전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세상에 눈을 돌린다. 오늘도 누군가는 일하다 죽었고, 코로나로 장사를 접었고, 데이트를 하다 죽임을 당한다. 외국인이라서, 여자라서, 성소수자라서,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차별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더 생각하고 헤아리게 된다. 이는 서울에서만,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이 집단을 이뤄 사는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다. 타국의 작은 섬에서 나는 ‘외국인’으로 나뉘지만, 그마저도 서양 사람들로 가득한 커뮤니티에서 나는 ‘아시안’이자 ‘여성’인 소수자로 또 나뉘기 때문이다. 


상처와 폭력에 노출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이유를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핑계로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다. 한편, 같은 이유로 더 멋진 애티튜드와 배려심을 발휘해 상대에게 더욱 신중하게 다가가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후자가 되고 싶다. 말로 상처를 받아본 사람이 말의 폭력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총에 한 번도 안 맞아본 사람이 총 쏘는 시늉을 농담에 섞는다. 자살로 가까운 이를 잃어본 적 없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자살을 웃기는 이야기의 소재로 삼는다. 세상의 온갖 직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시야를 넓혀 그만큼 보고 듣고 생각하고 헤아릴 줄 아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오늘도 바다에 조용히 점 하나를 찍는다. 바다에 점을 찍는데 한국이면 어떻고, 멕시코면 어떻고, 태국이면 어떤가. 수년에 걸쳐 수천 개의 점을 찍어왔건만 바다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나에게 눈길 한 번 안 준다. 야속하다. 인생은 단 한순간도 한 가지 감정이나 색깔로 정의되지 않는다. 나는 이 섬에서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을 겪었다. 그때마다 바다는 잘했다며 나를 치켜세우지도 않고, 더 하라며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바닷속에 잠시 머물도록 허락할 뿐. 이곳저곳 우아하게 방랑하고, 또 여전히 방황하는 나는 그 경계 위의 삶에서 나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사고방식과 라이프스타일에 동조하지 않아도 좋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한없이 간결하고 아름답다.


나는 고래요, 거북이다. 깊은 밤, 바닷속에 침잠하다 잠시 숨을 쉬러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불빛들로 수놓인 뭍 세상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저세상에 생명이 살아간다는 증거다. 멀리서 보면 모든 건 아름답기만 하다. 그 불빛을 하나 따라 뭍 세상으로 올라가 보면 별의별 희로애락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다이빙을 시작하기 전, 이 섬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저 뭍 세상 불빛 중 하나였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 위에 서서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기만 했지, 발 한번 담글 생각을 못 했다. 


이제 나는 시꺼먼 바닷속이 두렵지 않다. 뭍 세상 불빛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이던 나는 이내 다시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바닷속의 삶 또한 나름 고되다. 인생의 수수께끼는 파도처럼 주기적으로 나를 흔든다. 이 세상에 인간을 위한 완벽한 ‘파라다이스’는 없다. 하지만 내가 진정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직해질 수 있는 곳, 혼자인데 외롭지 않은 곳은 바다뿐이다. 작은 섬에 도망치듯 숨어 들어왔지만, 나는 너른 바다로 흘러든다. 나는 그렇게 결국, 바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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