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이 섬을 떠난다. 단 4일 일정으로 꼬따오에 입도해 오픈워터 코스를 나와 함께 하면서 바닷속 첫 숨을 쉬었고, 바닷속은 물론, 이 섬, 그리고 섬에 사는 사람들과 단번에 사랑에 빠진 그는 그다음 주 다시 꼬따오로 돌아와 나와 어드밴스 코스를 이어 진행하고, 다이빙 경험을 많이 쌓으라는 나의 조언대로 꾸준히 펀 다이빙을 하고 있던 친구. 다이브 컴퓨터에 마스크에 핀까지, 개인 장비도 조금씩 장만하기 시작하고 있다. 내가 만든 다이버가 이렇게 다이빙에 빠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꽤 기분이 괜찮다.
호주 출신이지만 작년부터 방콕에서 생활하며 NGO 회사 일을 하는 Will은 팬데믹으로 대부분의 업무를 온라인으로 하고 있지만, 이번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대면 미팅이 있어 방콕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론 두 달 후 다시 돌아와 다이브마스터 과정까지 하겠다고 다짐한 그이기에 그리 긴 이별은 아니다. 호주의 너른 대륙처럼 넓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는, “내 다이빙 시작을 하나, 너와 함께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라며 종종 나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표했다. 나는 아직도 이 서양식 스윗한 멘트에 당황스럽다. 한국 사람들은 이리 표현하지 않으니까. Will의 섬을 떠나는 마지막 날, 그는 다이빙 센터 동료인 Jim과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Jim 역시 호주인이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대형 채소 및 과일 가게를 이어받아 일하다 지금은 은퇴 후 태국에서 다이빙하며 인생을 즐기는 중이다. 한참 어린 나에게 이런저런 꾸지람과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늘 나를 ‘선생’으로 여기는, 나에게는 참 신기한 사람이다. 한국엔 이런 어른이 많지 않으니까.
이렇게 호주 출신 젊은이와 중년 남자 사이에 앉아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게다가 이곳은 그들의 나라도, 나의 나라도 아닌, 태국 꼬따오라는 작디작은 섬이었다. 우리는 꼬따오 매핫 마을 메인 도로에 있는 프렌치 마켓에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곁들여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외국 친구들과 모이면 이게 좋다. 술을 못 먹는다고 해도 자꾸 권하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맨 정신으로 나 취해서 망가지는 모습을 봐야겠냐? 너도 취해!’ 하는 식으로 눈치 주는 사람도 없다. 내가 마시고 싶은 걸 골라, 내가 마시고 싶은 만큼만 마시면 된다.
“Will과 Jim, 너희 둘은 호주라는 나라를 어떻게 정의해? ‘백인이 세운 나라?’ 아니면 ‘원주민의 땅을 빼앗아 백인이 깃발을 꽂고 들여온 이민자로 채워진 나라?’, 아니면 ‘정말 순수한 이민자의 나라?’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가는 중 갑자기 내가 던진 질문에 Will과 Jim은 잠시 멈칫했다. Will은 백인 부모에서 나고 자란 전형적인 호주인이고, 아니, 잠깐만, ‘전형적’이라는 말을 내가 왜 쓰는 거지? 그렇다. 솔직히 ‘호주’라는 나라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호주인’의 이미지를 Will은 가졌다. 하지만 Jim은 다르다. 그의 부모는 레바논에서 온 이민자로 Jim은 전혀 ‘전형적인 호주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 당돌한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몇 시간을 이어졌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Will의 진보적인 시각이었다. “20년 뒤 호주인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돌려봤는데, ‘하나’ 같은 얼굴이 나왔어. 호주는 이미 백인의 인구 비율이 이민자의 비율보다 적어지고 있어.” Will의 말이 끝나자, 나는 짓궂고 장난기 어린 얼굴로 “잠깐, 호주에 사는 백인들 모두 원주민들이 살던 땅에 이주한 ‘이민자’ 아냐?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하하”라고 되받았다. 그러자 Will이 머리를 한 대 맞은 표정으로 “맞아! 하나, 네가 맞아! ‘호주인’이라는 말 자체가 ‘이민자’를 뜻하는 거지!” 하며 맞장구쳤다.
사실이 그랬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모두 백인이 이주해 원주민의 희생을 등에 업고 자신의 나라라 주장한 것일 뿐, 원래 그들의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와인을 몇 모금 들이켠 나는,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할 수 있는 친구들이니까.
“사실 한국에서 호주는 ‘백인’의 나라로 강하게 인식돼 있거든.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에, 한국인이 가장 이민 가고 싶은 나라로 손꼽기도 하고. 한데 내가 초등학생일 때 수학여행으로 간 ‘대전 EXPO’라는 곳에서 태어나 처음, 뉴질랜드 전통춤 ‘하카’를 봤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나에겐 뉴질랜드 하면 ‘백인의 나라’라는 이미지 대신 마오리족의 얼굴이 떠오르거든. 교육과 환경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 것 같아.”
여기에 Jim은 모든 게 호주 스스로 자처한 일이라며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호주 스스로 오세아니아 국가보다 유럽이나 미국에 자신들을 끼워 맞추려 억지로 노력해왔다는 거다. 호주가 중국에 당돌하게 맞서는 것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러는 건데, 글쎄, 거기에 대한 Jim의 견해는 비관적이었다. 호주 역시 중국 없이 살 수 없다는 거다. 그러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호주가 처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문제로 대화의 화제를 자연스레 옮겼다. 그리고 전 세계, 이 지구별이 처한 정치, 사회, 환경 문제로 대화를 확장시켰다. NGO 일을 하고 있는 Will답게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생각에 생각이 확장하며 나의 세계가 다른 이의 세계와 만나 확장하는 기분. 좋은 대화를 할 때 그런 기분이 든다. 결론은 없다. 결론이 없다고 좋은 대화가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We’re F**ked Up!” 우리는 Will과 ‘잠시 안녕’을 고하며 이렇게 잔을 부딪혔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하며 억울해하지 않고, 핑계 대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담백하게 “우린 망했다"라는 걸 인정하는 게 삶에선 정말 중요하다. Will과 Jim, 나는 이날 밤, 각자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곤히 잠에 들었다. 우리는 이미 망했으니까. 희망에 부풀어 춤추는 하루를 보내든, 바닥을 기어다 니며 절망에 절든, 내일 눈 뜨면 할 것이다. 어차피 우린 모두 망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