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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Apr 17. 2024

“나는 정치적이지 않다”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나는 그래도 쫄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합니다.

나만의 위도를 찾아서, ‘하루의 섬’ 세 번째 이야기.      

  

안녕하세요, 아일랜더 여러분! ‘하루의 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섬지기, ‘하루’예요.    

     

처음 만나는 분들을 위해 제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이십 대는 홍대 길거리에서, 삼십 대의 반은 늦깎이 잡지 에디터로, 또 나머지 반은 태국의 작은 외딴섬 바닷속에서 보낸, 방황이 전문인 작가이자 여행가, 프로페셔널 다이버입니다. 얼마 전까진 해외에서 파란 눈의 외국인들에게 다이빙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바다에 기대어 밥을 벌어먹었어요. 그동안 제 삶의 고백이 사람들에게 거울로 비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던 에세이가 브런치 특별상에 선정된 행운으로, 작년 여름의 끝자락엔 <서울에서 도망칠 용기>라는 에세이를 정식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각각 따로 떨어진 섬이란 생각을 해요. 이따금 근사한 보트를 타고 이웃 섬에 놀러 가 화려한 파티를 즐기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낡은 뗏목을 타고 나갔다 갑작스럽게 만난 풍랑으로 위험에 빠지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건실한 다리가 섬과 섬 사이에 생기기도 하죠. 하지만 결국엔 모두 제각각 섬으로 돌아갑니다. 어떤 이는 제 섬이 없어 남의 섬을 빼앗기도 하고, 얹혀 지내기도 하죠. 또 어떤 이는 섬으로 돌아갈 생각을 아예 않고는 너른 바다를 떠다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섬과 섬 사이가 잠시 연결되는 그 순간, 오로지 당신과 내가 연결되는 그 순간을 위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또다시 바다로 나아갑니다. 또다시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단 두려움을 안고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이 아름다운 반복의 여정이 모이고 모여 삶이 되니까요.

                

풍랑이 잦아든 날이면 그저 달큼한 코코넛 하나 따 먹으며 붉게 물든 수평선을 평화롭게 바라볼 수 있는, 나에게 꼭 맞는 온도와 습도와 바람, 냄새를 가진, 나만의 위도에 꼭 맞는 나만의 섬을,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찾아내는 과정도 삶, 그 자체니까요.              

   

망망대해를 떠다니다 비로소 닿은지도 어디에도 없는 무명의 섬누구도 재단하지 않고판단하지 않고재촉하지 않는 곳제 목소리를 따라오세요이 섬에서 당신은 안전합니다.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윤석열, 영부인 김건희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퍼스트레이디 김건희의 손을 붙잡고 환하게 웃던 사진에 달린 댓글의 충격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지금 한국을 상징하는 키워드네. ‘맛집 다니는 배 나온 아저씨’ 그리고 성형 중독된 비쩍 마른 동안 아줌마’.” 현재 한국인의 욕망, 그리고 한국의 모습이 저 두 사람으로 전 세계에 대표되는 것 같아 가슴이 쓰리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2022년,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저는 태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딱 10년 전인 2012년, 제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도 저는 태국에 있었습니다. 방콕 카오산 로드의 헌책방 가판대에 쫙 깔린 <타임>지의 커버엔 독재자의 딸(The Strongman’s Daughter)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카피와 함께 박근혜의 얼굴이 실렸습니다. ‘Strongman’은 전 세계 영어권 언론이 ‘독재자’를 유하게 칭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당시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타임>지 커버를 자랑하며 ‘Strongman’을 ‘강력한 지도자로 오역하기도 했죠. 꿈보다 좋은 해몽에 언제나 그렇듯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대한민국에 ‘바이든 날리면’ 사태가 또다시 일어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박근혜 <타임>



당시 한국에서 피처 에디터로 문화뿐 아니라 정치, 사회 칼럼도 써온 저에겐 박근혜 정권에서 목격한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주변에 뉴스 보도 기자와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을 떠나야 했죠. 공공연하게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돌았고, 정부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면 사돈에 팔촌까지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알아서 기는’ 사회가 되었고사람들은 무기력해져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만성 우울증에 신음했습니다이제 갓 30대가 된 우리 세대는 헬조선에서 ‘88만 원 세대와 잉여 세대라는 주홍글씨를 달고스스로 조소하고 업신여기며 고립되어 갔습니다 

    

지역 방송국에서 손석희 사장의 JTBC로 옮기면서 “나, 정말 좋은 기자가 될 거야” 하며 좋아했던 한 기자 친구는 세월호 참사 내내 팽목항을 지키다 몇 달 후 서울에 올라와선 “보지 말아야 할걸 너무 많이 봤다”며 트라우마와 고통에 시달리다 한국을 떠났습니다. 누군가는 체념하고, 누군가는 기득권에 동참하기로 하고, 누군가는 싸우다 고꾸라졌으며, 누군가는 침묵을 지키고, 누군가는 타협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경제 대국 10위 안에 들었다는 정신 승리 아래 실제로는 자살률이 가장 높고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행복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실행으로 옮긴 건 세월호 참사 이후였습니다. 어떻게서든 진상 규명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현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그 앞에서 무력하기만 한 민주당, “시체 팔아 장사한다”며 유가족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목격한 직후였죠. 악마가 있다면거기 있었을 겁니다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제가 싫었습니다. 제 자신조차 한국에서 태어나 30년을 넘게 자라며 교육받고 세뇌당하고 신기루를 쫓으며 흔들리고 갈등하던 가련한 신세였으니까요     


사회의 어른이 되어가던 우리들은 어차피 안 바뀔 거야라는 패배감과 무기력함에서 어차피 안 바뀔 거라면이 사회에서 짓밟히지 않기 위해 잘난 사람이 되자는 생각과 태도로 돌변하기 시작했습니다이십 대에 내 손으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고 그의 죽음을 지켜봐 놓고도 우리들에겐 집값, 땅값 오르고 세금 덜 내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도망쳤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사람들처럼 변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사람들 앞에서 정신 차리라고, 거기로 가면 우린 모두 끝이라고 소리칠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망쳤습니다. 일단 저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단단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어설픈 사회적 책임과 죄책감을 버리고 나부터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저부터 행복하지 않으면 누구의 행복도 논할 자격이 없으니까요.     


10년 후 돌아온 한국은 더하면 더했지 정말 하나도 바뀐 게 없네요. <뉴욕타임스>가 한국의 대통령과 영부인 스캔들 관련 기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문장, “대통령 집무실에 VIP가 2명인데, 그중 첫 번째가 김건희”처럼요.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1811년 러시아 헌법 제정에 관한 토론 중 조제프 드 메스트르가 한 말입니다. 오늘날 정치학의 핵심을 꿰뚫는 말로 자주 쓰이죠. 이 말을 인용한 새뮤얼 스마일스는 <자조론>에서 이렇게 씁니다. “정부는 그 나라를 구성하는 개인을 반영한다. 국민보다 수준이 높은 정부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국민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지게 마련이다. 국민보다 수준이 낮은 정부가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지듯이 말이다. 한 나라의 품격은 마치 물의 높낮이가 결정되듯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법체계와 정부 안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고상한 국민은 고상하게 다스려질 것이고, 무지하고 부패한 국민은 무지막지하게 다스려질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가 성숙하려면 그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이 성숙해야 하며, 거꾸로 사회 구성원의 수준이 낮으면 그 사회 역시 수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과연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독재자의 딸’ ‘맛집 다니는 배 나온 아저씨’ 그리고 ‘성형 중독된 비쩍 마른 동안 아줌마’는 지금 한국인의 수준에 딱 맞는 리더일까요? 10년 전, 한국을 떠날 때였다면 분명 저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라고 답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말은 미개한 정치를 하는 엘리트의 병폐와 무능을 대중의 탓으로 돌리는 데 명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말을 인용한 스마일스는 유명한 수구주의자로 프랑스 대혁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히틀러가 역설적으로 연설에서 ‘자유’를 무한히 외친 것처럼 말이죠. 한국인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의 표상보다 낫습니다아니나아야 합니다.








민주주의자가 없는 한국의 민주주의     


2024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179개 나라 중 47위로 후퇴했습니다보고서는 “세계에서도 드물게 민주주의가 회복 중인 사례로 소개됐던 한국이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과 대규모 (탄핵) 시위 이후 인권운동가 출신 문재인 대통령을 거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나아졌지만, 우익 보수 성향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한 뒤 전임 정권의 노력을 사실상 무력화했다”고도 덧붙였죠. 윤석열 정부가 전 정부 인사를 처벌하기 위해 경찰과 검찰, 감사원 등을 동원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통해 성평등에 관한 갈등을 부추기며, 방송 및 언론을 장악하고 검열함으로써 미디어의 자기 검열, 기자에 대한 탄압 등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켰다고 말합니다. 이례적으로 한국은 이미 독재화된 (우산혁명 이후의홍콩과 폴란드헝가리와 함께 분류되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독일의 역사와 문화, 민주주의, 통일문제를 연구한 김누리 교수의 책에서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는 글에서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한국이 독재화되어 가고 있는 건 바로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의 괴리 때문이었습니다광화문에서 ‘박근혜 탄핵’을 위치던 사람이 집에 가선 권위적인 가장으로 변해 가족 구성원에게 언어적, 정서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부의 형태를 놓고 어떤 이가 민주 정치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자 리쿠르고스는 이렇게 말하지요. 가서 그대의 가정에 먼저 민주주의를 이룩하시오.”      


이는 한국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유교 사상과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군사독재가 남긴 집단주의권위주의군사주의병영문화 때문이기도 합니다윤석열의 손에 쓰인 ‘王’ 자와 아내의 경력 및 사문서 위조, 녹취록은 모두 선거 전 공개되었습니다. 정치는 ‘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거라고요? 그럼에도 이재명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 윤석열을 뽑았다고요? 결국 한국의 욕망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윤석열의 캐치프레이즈를 정의로운 양 지지하는 척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의 땅값이 오르고 세금을 깎아줄 수구 세력에 투표한 것입니다.      

‘알아서 긴다’는 분위기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늘 있었습니다. 국민의힘과 정부에 제대로 된 질문 하나 못 하는 기자들이 민주당 기자회견에선 기세와 태도가 달라집니다. 문화예술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비겁한 자가 되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포기하고 맙니다     


저는 한국의 모든 병폐는 ‘군대 문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TV에서 연예인을 군대에 보내는 프로그램이 이토록 인기를 끄는 건 대한민국밖에 없을 겁니다. 갑질 문화도 우리 스스로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지적하지만 오랫동안 바꾸지 못하죠. 한국인의 문제 해결 방식은 내가 을이니 연대를 통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 아닌 내가 갑질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 되어야 해입니다. 입시와 경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상황은 똑같은 고통을 겪어 어른이 된 학부모들이 바꾸려 들지 않습니다. ‘차라리 내 아이를 SKY에 보내 의사, 변호사, 검사로, ‘갑’으로 만들어 잘 먹고 잘 사는 길’밖엔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기본권 중 하나인 이동권을 주장하며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면 자신의 출근 시간과 지각, 상사의 ‘갑질’을 걱정하는 직장인은 오늘도 다짐합니다. ‘어떻게든 나는 장애인이 되지 말아야지.’     


성인이 되어 첫 투표권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자부심이 있는 저에겐 박근혜 정권 당시의 촛불혁명에 대한 뜨거움도 있습니다. 여전히 조선일보는 ‘촛불혁명’이 아닌 ‘촛불 쿠데타’라 폄하하고, 촛불혁명 당시 박근혜 정권이 실제로 군을 동원해 무력으로 시민을 진압하려 논의했다는 문서까지 나왔으니 어찌 보면 혁명의 순간은 역사적으로 가장 약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승만의 독재에 맞선 4.19 혁명이 박정희 군사독재로 이어졌고, 5.18 민주화 운동이 전두환의 군부독재 통치 강화로 이어졌으며, 6.10 민주항쟁이 노태우 정권으로, 2016 촛불혁명이 결국 윤석열 검찰 독재 정부로 이어졌으니까요.      


태국 현지인보다 유러피안이 더 많이 모여 사는 섬에서 다이빙 강사로 살 때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홍콩과 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켜봤습니다. 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던 미얀마 친구들 대부분은 가족과 친구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어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며 한국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한국의 촛불혁명을 희망으로 삼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세 나라 모두, 젊은이들의 피와 눈물이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겪었던, 아니 여전히 우리가 겪고 있는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 얼마나 고되고 느리고 고통스러운 여정인지 피부로 느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여전히 한국엔 수구 세력이 공공연히 한국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있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들의 희망을 꺾고 싶지 않았거든요.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한국의 트럼프’라는 외신의 보도에도 외국인 친구들에게 저는, 촛불혁명으로 부패한 권력을 끌어내린 한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김광석 ‘광야에서’




              




“나는 정치적이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다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제가 4년에 한 번, 월드컵 때만 열혈 축구팬이 됩니다. 우리는 정치를 축구처럼 합니다. 정치인을 ‘팬심’으로 대하죠. 정치인에 나의 자아와 욕망을 투영합니다. 그만큼 개인의 신념과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한국은 둘 이상 모이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게 정치 이야기라고 합니다. 정치 이야기하다 쿨하지 못하게 서로 싸우고 인연을 끊거나 멱살을 잡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정치인과 내가 분리되지 못하고 정치인에 내 자아를 대입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을 욕하면 내가 욕먹는 것 같죠. 왜 우리는 정치인을 객관화할 수 없을까요정치인은 내가 직접 국회에 가서 일을 할 수 없어 나 대신 일하라고 뽑은 고용자인데 말이죠왜 우리는 정치인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사랑해 마지않을까요우리가 그만큼 권력을 추앙하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요     


유럽 친구들과 오랫동안 함께 했던 저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태국으로 건너온 프랑스 친구에게 다이빙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다이빙 강사가 되기 위한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제가 가르치는 실제 다이빙 코스에 참여해 티칭 경험을 쌓고 있었죠. 제가 다이빙 코스를 가르친 학생은 영국인이었습니다. 다이빙 코스를 진행하다 쉬고 있는데, 이 두 친구가 자연스럽게, 당시 시끄러웠던 ‘브렉시트’를 이슈로 열띤 토론을 벌이기 시작하더군요. 두 친구는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상대를 이해하고 타협점을 찾아 결론을 내리는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정치의 과정을 일상의 토론을 통해 보여줬습니다. 스무 살도 안 된 친구들이 수준 높은 토론을 하는 걸 한참 동안 지켜보던 저는 오늘도 수능 준비에 여념 없을 한국의 고3들을 떠올렸습니다.    

  

토론을 마친 열여덟 프랑스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한국에선 처음 본 사람에게 대뜸 그런 질문을 던지면 무례할 수도 있다고.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이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하도록 했고, 매번 정부의 정책과 현안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에 대한 모의 토론을 하는 것이 교육 과정에 있었다고. 이를 통해 결론에 다다르지 못한다고 해도 갈등을 완화할 수 있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고서른이 훌쩍 넘은 제가 그 친구보다 뭘 좀 더 아는 척했던 게 어찌나 부끄러웠던지요. 그러고 보니 유치원에 가서 한 아이가 던진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에 칠판에 간단한 선과 동그라미 몇 개로 대답하던 마크롱 대통령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여성의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하는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정치인이기 전에 모두 병적인 나르시시스트입니다. 나르시시즘은 콤플렉스로 가득한 인간이 의식적으로 자신이 대단하다고 믿어버리는 것인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윤석열과 한동훈, 김건희, 천공 등 2024년의 대한민국에서 듣는 이름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무례한 사회에서 무례한 어른들이 판을 칩니다. 그 무례한 어른들을 추앙하는 아이들이 있고요.      


한편, 한국에는 “나는 정치에 별로 관심 없어”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쿨한 줄 아는 ‘중도’들이 많죠. ‘중도’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어디로든 그때그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정치적이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다라는 말은 정치활동가이자 학자인 앤젤라 데이비스가 한 말입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다거나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정치적인 행동이라는 뜻이죠     


예를 들어, 학교에서 어떤 정책에 대해 “나는 관심 없어”라고 말하는 학생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학생은 그 정책이 자신의 학교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죠.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국 그 정책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거나, 기존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선택을 함으로써, 사실은 그 정책을 지지하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아무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며그 자체로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죠. 앤젤라 데이비스는 우리가 일상에서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그리고 모든 행동이나 무(無) 행동이 사회적정치적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특히 정치적 중립이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실제로는 기존의 권력 구조와 불평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그녀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연관되어 있으며, ‘중립’이라는 태도는 사실상 현 상황을 수용하고, 그로 인한 불이익을 받는 이들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데이비스는 이러한 생각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하고,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정의와 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특히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 문제 등에서 보이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개인이 정치적으로 활동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죠. 이러한 접근 방식은 그녀가 오랫동안 참여해 온 활동가로서의 경험과 학자로서의 이론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요. 저도 압니다. 모든 사람이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요. 사람들은 각자의 삶의 경험, 가치관, 현재 상황 등에 따라 다양한 정도로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죠. 이 또한 개인의 자유니까요. 몇몇은 개인적인 이유나 생각으로 인해 정치적 문제에 대해 의도적으로 한 발 물러서 있기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이 조용하고 개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 예술, 과학과 같은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기여함으로써 사회적 변화를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각 개인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다르며, 모든 사람이 정치적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자신의 역할을 찾고, 자신이 믿는 방식대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활동과 역할을 통해 자신의 신념대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나요?    



                    




밥상이 곧 정치다
     


한국에서 <아레나옴므플러스>라는 남성 패션지 피처 에디터로 일 할 때 인터뷰로 만난 한 음식평론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서민이 먹는 쌀값반찬값채솟값생선값모두 다 정치로 결정되는 거라고. “그래서 음식이, 밥상이 가장 정치적인 영역”이라고. 얼마 전 끝난 ‘대파 총선’을 치르는 동안 그 대화가 묵은지 냄새처럼 제 기억을 맴돌았습니다.      


대파값에 분노하는 우리는 얼마나 생활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나요정치는 내 삶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하는지에 관한 신념이자 태도인데, 왜 우리는 스스로 삶의 스탠스를 결정하지 않고 ‘중도’라 한 발을 빼놓을까요? 너무 바빠서? 아니면 책임지기 싫어서? 나는 돈만 벌면 그만, 내 앞마당에 꽃이 피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에 개인의 신념마저 점점 사라져 가는 사회가 오래된 대파잎의 끝맛처럼 씁쓸하기만 합니다.   

   

김누리 교수는 국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형식을 넘어 생활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를 사회 민주화, 경제 민주화, 문화 민주화로 설명했는데요. 독일의 대학은 교수와 조교 및 강사, 학생의 권력을 균등하게 1/3로 나누는 ‘3 분할의 원칙’을 시행합니다. 나라의 98%가 국립대이고 누구든 원하는 때에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죠. 대학 입시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에 반해 한국은 87%가 사립대입니다. 여전히 재단 이사장이 총장을 임명하고 온갖 사학 비리가 만연합니다. 대학 입시 경쟁과 대학 등록금은 점점 더 높아지지만, 저는 대학 4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비싼 시간 낭비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독일은 노사공동결정제를 시행합니다. 노사와 노동자가 이사회의 50%를 차지합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위기 대응에 더 기민하고 확실하니 위기에 오히려 회사가 성장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벤츠, 아디다스, 비엠더블유, 보쉬, 루프트한자 같은 독일 기업 모두 그렇습니다. 독일의 이러한 경제 민주화는 나치즘의 청산을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나치가 기업 전체를 완전히 장악해 삽시간에 전쟁 기업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원인은 노동자의 권력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라는 교훈을 실천한 거죠.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급진적인 노동당에서나 밀어붙일 법안처럼 보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법안 발의는 가장 강력하게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고 기업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인 자유민주당의 볼프강 미슈니크가 1976년에 발의했습니다. 그는 법안을 발의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시민들은 국가 시민으로서는 의회와 정부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주권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경제 시민으로서는 노예로 산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정한 보수가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구나, 희망을 얻습니다. 반면 윤석열 정부가 툭하면 ‘경제 민주화’를 외치며 재벌 총수들로 병풍을 만들어 다니는 한국은 기업의 노사조직률이 10%도 안 되며, 민주주의 국가 중 노동자가 가장 탄압받는 나라입니다.      


마지막으로 김누리 교수는 독일의 문화 민주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독일의 대학 역시 변화 이전까진 경직되고 보수적인 사회였다고 해요. 대학에서도 “존경하는 교수이자 박사인 OOO님!”이라는 수식어와 존칭을 써야 했죠. 68 혁명 이후 모든 수식어를 없애도 오로지 이름만 부르게 된 대학에서 교수들은 늘 “나는 여러분과 함께 연구하는 사람으로서”라고 학생들에게 말을 건다고 합니다. 교수들이 스스로 학생과 동격으로 자신을 낮추는 모습에, 혹은 학생들을 자신과 동격의 연구자로 대우하는 모습에, 교수들이 자신을 학생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진리의 독점자나 권위자가 아니라 학생과 같이 연구하는 학문의 동료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문화’라는 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들의 총합을 말합니다. 남성과 여성,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이런 관계들이 민주적이고 수평적으로 바뀌는 것이 바로 문화 민주화입니다.      

     






과연 올바른 해석이란 게 존재하는가?
     

한국은 경제, 사회, 문화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은 채 그저 직접 선거로 국회와 행정부 수반을 뽑는 형식적인 민주주의, 미성숙한 민주주의의 과정에서 쳇바퀴 돌 듯 역사를 반복합니다. 제가 유러피안 친구들과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피부로 느낀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는 바로 교육이었어요.      


‘올바른 해석은 존재하는가?’ 독일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제1장의 제목입니다. 문학 텍스트를 읽을 때 우선되어야 할 건 옳은 해석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는가에 대해 사유해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문학이라는 다의성의 세계에 초대장을 건네는 것입니다. 독일 시험 문제엔 객관식이 없습니다. 그저 학생의 관점에서 본 의견만이 있을 뿐이죠. 문학 작품의 해석을 마치 작가의 의도를 찾는 게 최선이라는 듯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님’이 연인인지, 조국인지 고르라는 한국의 폭력적인 해석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권력에 길들여집니다. 선생님은 무조건 옳은 진리이며 학생의 도리는 이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존경과 예의를 넘어 복종하는 것이라고요. 한국의 학교에서는 문학을 해석하는 데에도 권력이 존재하지요. 비판 의식을 키울 틈을 안 줍니다.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많아지면 국가로선 통제하는 데 골치만 아프니까요. 그래서 한국의 코미디는 대부분 권력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대신 약자를 조롱하며 혐오를 조장합니다. ‘뚱뚱하다’ ‘못생겼다’ ‘게으르다’ ‘무능하다’ 등등 권력은 비판하지 못하면서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은 공격하고 조롱하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2015년 ‘백만 난민의 기적’이라 불리는 시리아 난민 수용을 결정하며 독일 헌법 제1조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를 말합니다. 한 나라의 헌법을 문자로만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신념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죠그러한 국가의 지도자와 깨어있는 어른들을 보고 자란 독일의 아이들은 미래에 어떤 어른이 될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      


대한민국 역시 너무도 아름다운 헌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우리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을 읽을 때면 심장이 요동칩니다. 이 헌법 두 줄을 위해 우리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렸고 안타까운 목숨을 희생했으니까요. 왜 우리는 이 찬란한 헌법을 실천하지 못한 채 판타지로만 두고 있을까요?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자들
      


김누리 교수는 한국을 민주주의 국가 대신 후기 파시즘’ 국가로 진단했습니다전기 파시즘은 우리가 군부독재를 겪었던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며, 후기 파시즘은 외향적 형식은 민주주의를 띠지만 내향적으로는 태도와 제스처를 통해 전체주의와 독재 행태를 드러내고 있는 현재를 말하죠.   

   

후기 파시즘은 5가지 특징으로 구분됩니다. 첫째, 강자동일시, 둘째, 약자혐오, 셋째, 폭력성과 공격성, 넷째, 동조강박, 그리고 다섯째, 흑백논리. 강자동일시와 약자혐오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 같고요. 저는 해외 생활을 할 때 ‘강남스타일’이나 <오징어게임>, <기생충>, BTS나 블랙핑크의 유명세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어요. ‘강남 부자’를 풍자한 노래나 한국의 무자비한 경쟁, 하층민의 생활, 열 살이 되지도 않아 기획사로 달려가 뼈를 깎는 트레이닝을 받아야만 하는 한국의 아이돌 문화가 자랑스럽지 않았거든요. 한국의 폭력성과 공격성을 쇼로 만들어 박수받는 게 텁텁했습니다.      


아무리 부조리한 일들이 펼쳐져도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지금 한국의 언론, 의사, 판검사 사회를 봐도 한국은 파시즘 국가로 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토론도 대화도 없이 흑백논리로 상대와 담을 쌓는 건 대통령, 국회, 조직, 가족 등 온 사회 곳곳에 만연한 현상이고요.      


한국 사회에선 모든 정치인이 공정을 외치지만아무도 불평등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예를 들어 ‘공정’은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모든 학생이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내용의 시험지를 받으며, 같은 조건 하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을 말하죠.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함은 모든 학생이 동등한 기회를 받아 자신의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평등’은 자원과 권력, 기회 등이 개인이나 집단 간에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직장에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두 직원이 있는데,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는다면, 이는 불평등한 상황이라 볼 수 있겠죠. 공정한 상황에서도 불평등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공정성이 비교적 처리하기 쉽고 대중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개념이고, 불평등은 더 깊은 사회적, 경제적 갈등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더 어렵죠.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서 외친 ‘공정’은 기만의 언어였습니다. ‘상식’은 또 어떨까요. ‘상식’은 익명의 다수가 공유하는 지식이자 여론을 뜻하는데, 윤석열을 둘러싼 수구 세력과 뉴라이트 세력의 귓속말이 곧 그에겐 상식이 된 겁니다. 현 정부가 노동자와 장애인, 외국인 근로자, 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군부독재 국가였던 한국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여전히 전범의 후예들이 권력을 쥠으로써 점차 희미해지는 나라, 일본처럼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여기엔 대한민국의 운동권 엘리트라 불리는지금은 또 다른 기득권이 된 386 세대의 책임도 큽니다민주화 이후, 한국의 왜곡된 교육제도와 경쟁주의, 기괴한 입시관행을 고치려 하기는커녕 386 세대의 주도적 인물들이 사교육의 큰손이 되었죠. 핑계를 대기로는 민주화 운동으로 그어진 빨간 줄 때문에 평범한 회사의 취업이 막혀 어쩔 수 없이 간 곳이 사교육 시장이었다지만, 386 세대는 더럽기로 일등 가는 수구 세력하고만 싸워서인지 도덕적 우월감마저 높습니다. 민주당이 늘 ‘내로남불’이라 욕먹는 이유죠.   

  

대한민국엔 진정한 진보가 없습니다국민의힘은 보수가 아닌 수구’ 세력이죠공동체와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키는 게 보수입니다보수는 원래 멋있는 겁니다오히려 한국에선 민주당이 보수당에 가깝고, 대한민국엔 진보 세력이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이 된 문재인의 역할은 좋은 보수가 되어 합리적인 진보 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기회와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진보’인 척하느라 정작 진보가 들어와야 할 자리를 ‘수구 검찰 독재’ 세력에게 내어줬죠. 문재인은 이에 대해 역사적으로 반성하고 분명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한, 문재인은 ‘좋은 보수’라면 했어야 할 세월호 진상을 끝내 밝히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올해까지 참사와 관련된 사람들 중 실질적으로 처벌받은 건 단 1명뿐입니다. 사법농단 세력은 모두 무죄로 풀려났고, 이명박도 박근혜도 자유인입니다. 검찰과 언론, 언론과 재벌은 여전히 끈끈하게 유착되어 대한민국을 좀 먹고 있습니다. 어설프게 진보’ 흉내를 냈던 문재인은 좋은 보수라면 했었어야 할 일부터 처리했어야 했습니다    

 

언제나 선하기만 하려고 하는 사람은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피 튀기는 권력 게임에서 ‘선의’라는 명분으로 국민이 준 권력을 제대로 쓰지 않고 기만한 문재인 정권도 할 말은 없습니다. 여전히 기득권 의식과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큰소리만 치는 유시민도 그만 가르치려 들고, 조용히 듣고 배우는 태도를 길러야 합니다.



                         





쫄지 말고, 나은 사람이 되기로 합니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나를 객관화하게 됩니다수많은 유러피안 속에 섞여 살며 두드러지는 제 행동을 보며 ‘아, 나는 괴물 같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모든 것이 단 한 번의 기회로 판가름 나는 ‘원샷, 원킬’의 무한경쟁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란 저는 유럽 친구들에게 걸핏하면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야, 재밌으려고 하는 다이빙을 너희는 왜 그렇게 심각하게 해?” 맞습니다. 한국인 다이빙 교육생들은 아무리 잘한다고 칭찬을 해도 물밖으로 나오자마자 자기 검열부터 시작합니다. “저, 너무 못 했어요. 아유, 나 왜 이렇게 못하지?” 예전에 한국 살 때 제 모습 같아 마음이 짠한 저는 “아이고, 다이빙은 재미있으려고 하는 건데 강사인 제가 잘한다고 해도 왜 안 믿고, 스스로 채찍질을 해요” 하고 위로합니다.     

 

대부분의 다이빙 센터 오너들은 저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저는 한국의 상명하복 문화에 특화된 사람이니까요. 툭하면 오너 말에 반기를 들고,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리와 복지를 주장하는 유러피안들에 비하면 찍 소리 않고 명령에 따르며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한국인은 분명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도구임에 틀림없었습니다.      


한국의 ‘열정페이’ 문화에 길들여진 저는 다이빙 일을 시켜만 주면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절대 그렇게 일하면 안 된다는 걸, 다이빙 강사가 없다면 다이빙 센터 자체가 제대로 돌아갈 일이 없다는 걸 직시하고 그 정당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걸 저는 유럽 친구들에게 배웠습니다.   

   

스쿠버 다이빙 트레이닝 고급 과정엔 다이빙 강사가 되기 위한 2주 코스가 있어요. 최종적으로 강사 시험에 통과해야 하는 코스이다 보니 다루는 내용도 많고 심리적, 체력적 부담이 상당합니다. 제가 2주 간의 강사 과정을 가르친 친구 중 한 프랑스 친구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힘들 게 공부한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저는 그 말에 경악했죠.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유러피안 친구들은 2주 동안의 과정에 모든 것이 압축된 코스 자체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악명 높은 스쿠버 다이빙 강사 과정의 압박과 스트레스를 가장 잘 견디는 게 누구인 줄 아세요? 놀랄 것 없이 바로, 한국인입니다. 저는 이게 결코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제가 컬러 TV를 본 건 ‘88 서울올림픽’의 굴렁쇠 소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이 다 고만고만하게 살 때여서 ‘부자’를 직접 본 적이 없으니 ‘부’의 개념조차 없었지요. 토목 일을 하는 아빠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니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신도시에 살게 됐어요. 그때부터 저는 본격적으로 ‘부’를 체감했어요. 신도시 아파트 이름, 집 주소만으로 십 대 초반의 아이들이 서로의 부를 평가하며 편을 가르기 시작했거든요. 우리 집은 드높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 사이에 드문드문 있던 다세대 주택이었습니다. 아랫집이 언제 화장실에 가는지, 설거지를 하는지, 우리 집에 언제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오는지, 엄마 아빠가 싸우는지 모두 알 수 있었죠. 다행히 저는 60평이 넘는 ‘은하마을’ 아이들과도 친구가 되고, 20평이 안 되는 ‘한라마을’ 아이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신도시 대형 학원가에 늘어선 버스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대학에 가고, 직장을 다니는 내내 그 줄은 더욱더 길어져만 갔습니다. 길게 늘어선 학원 버스 유리창에 쓰러지다시피 몸을 기댄 친구의 얼굴을 보고는 시계를 봤습니다. 자정이 좀 넘은 시간이더군요. 서울 변두리 도시에 살던 저는 강남에 있는 회사에서 야근이라도 하면 심야 광역버스를 타고 와야 했습니다. 그마저도 자리가 없어 한 시간을 꼬박 서서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죠. 그렇게 겨우 도착해 집에 가는 길, 자정 넘은 시각에 저와 눈이 마주친 그 학원 버스 안의 고등학생 친구에게 저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도망가.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 나와도 어차피 자정 넘어 집에 들어가 서너 시간 자고 다시 일어나 일해야 한다고. 무엇이 행복인지도 모른 채,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할로윈 나잇, 다이빙 센터 동료들과 파티를 즐기던 저는 한 영국 친구가 “한국에서 무슨 일이 난 것 같다”라고 해준 말에 인스타그램을 열었습니다. 처음 피드를 봤을 땐 “에이, 한국 애들 ‘플래시몹’ 같은 거 하는 거야. 우리가(한국인이) 노는 데 한이 맺혀서 한 번 놀면 좀 과격하게 놀아요” 하고 말았죠. 상상이나 했겠어요. 세월호 참사 때 3백여 명 수장되는 걸 전 세계가 실시간 중계로 지켜봤던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길거리에서 1백여 명이 압사당하는 걸 전 세계가 또 보고 있다는 걸요.      


내 나라에서 벌어진 또 한 번의 비극적인 참사를 지켜보며 저는 한국을 증오하는 만큼 또 깊게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내 나라 한국이 애처롭기만 했습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의 무한경쟁 사회 시스템에 동조하지 않겠다며 늘 커다란 원 밖에 있겠다 고집을 부렸건만, 세월호 참사로 한국을 떠나겠다 마음먹었던 저는 2022년 이태원 참사를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어른들을 비난하는 청년에만 속할 순 없기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저 한 사람의 책임감은 다 하기 위해서라도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중에 학원 버스 안에서 유난히 슬픈 눈빛을 하고 있던 그 친구가 있었으면 어쩌죠.      

여전히 이태원 참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얼굴을 빳빳이 들고 있으며, 왜 그 수많은 젊은 목숨이 축제의 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길거리에서 죽어야 했는지 밝혀지지 않았고, 유가족은 또 한 번 죄인이 되어 자식이 스러진 차가운 아스팔트를 오체투지를 하며 걷습니다. 처참한 수준으로 무능하고 나쁜 정부에 “그래도 나는 다주택자 세금 깎아줘서 국민의힘 찍을 거야”라며 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있고, ‘공공의 선’ ‘동료시민’ 같은 단어를 감히 입에 올려선 안 되는 한동훈 같은 사람이 스스로 멋지고 똑똑하다고 믿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는 걸 보면, 여전히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구나, 더 공부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이 기형적으로 비뚤어진 한국 사회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토해 낼 더 많은 ‘한동훈 같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고요. 그리고 다시 한번 ‘국가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의 교실에서 12년을 보내면 우리 아이들은 과연 합리적 민주주의자가 될까요아니면 지독한 파시스트가 될까요공부 잘하고 집안 좋은 10%는 나르시시즘 넘치는 의사, 판검사가 되고, 나머지 90%는 초등학교 때부터 “난 이미 틀렸어”를 외치며 열등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살겠죠. 실제로 요즘 초등학생들이 하는 말이라고 해요. 그래도 제가 어렸을 땐 지금처럼 SNS는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곧 한국의 경쟁교육이 반영된 실패한 결과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 아이들을 똑같은 지옥으로 밀어 넣고 있을까요?       


독일은 최근 선거의 이슈 50% 이상이 환경, 기후 문제였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최근 선거의 이슈 90% 이상은 종북, 범죄, 운동권 청산이었습니다. 한국 언론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자처하며 편을 가르고 오해와 혐오를 조장합니다. 어차피 뉴미디어에 밀려 쇠락의 길에 접어드는 마당에 각종 레거시 미디어는 지금보다 더 악랄하고 뻔뻔하게 권력에 빌붙어 피를 빨아먹을 겁니다. 마이라 맥피어슨이 그의 저서인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에서 말하듯 미디어가 정부의 통제와 압력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보의 소비자인 독자와 청취자들의 권리와 책임도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죠.      



얼마 전 대학을 졸업한 조카는 취업을 재촉하는 어른들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혼란스러운 듯 보였습니다. 어떤 어르신은 “공무원이 최고다”, 어떤 어르신은 “은행이 최고다” 하며 훈계를 하더라고요. 저는 한참 후 조용히 조카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괜찮아. 나도 이십 대 초반에 뭘 해야 할지 몰랐어. 사실 삼십 대에도 잘 몰랐지. 당연한 거야. 학교 다니는 내내 그걸 가르쳐주는 어른도, 네가 뭘 좋아할지 시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준 적도 없었잖아.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내가 만약 지금 네 나이로 돌아간다면, 나는 해외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겠어. 그러면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민낯을 보게 될 거야. 한국인이라는 스스로의 민낯도 보게 될 거고. 네가 지금까지 익숙해졌고 옳다고 믿으며 살아온 것들을 뒤집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야. 그렇게 스스로 객관화를 하고 나면, 그때부터 네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가 보이기 시작할 거야. 내 말도 그저 하나의 선택지로 들어. 무엇이든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입법과 사법, 행정 권력이 두려움 없이 남용되는 파시즘 국가로 변질되어 가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오직 시민의 힘으로 살아남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민의 힘마저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슬프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부터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래도 작은 희망들이 곳곳에서 싹트니까요. 세월호 참사 이후 친구와 ‘가만히 있으라’는 구호가 적힌 배지를 만들어 침묵시위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그 시위 맨 앞줄에 선 어린 대학생이 지금 국회에 있는 용혜인이었지요. 내가 무얼 해도 이 썩어빠진 나라는 바뀌지 않을 거란, 저 역시 가지고 있던 낡은 생각을 바꾼 정치인입니다.     

 


내가 뽑은 정치인은 ‘나라님’이고 ‘상전’이라는 노예 의식 말고, 내가 당장 세금 덜 내고 돈 많이 번다고 해서 대한민국이라는 아름다운 나라를 파시즘으로 몰아가는 수구 세력에 표를 주지 않으며, 자기 신뢰를 더 굳건히 하고, 환경 문제에 앞장서며, 욕망과 감정의 쓰레기통인 소비도 더 줄이고, 쫄지 말고, 독립적으로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다하고, 존경하며, 사랑할 것입니다. 제가 스스로 희망이 될 것입니다.       

               

James Vincent McMorrow ‘Gold’

               






여전히 방황하고 흔들리고 여리고 예민하고 상처가 많아 고단한 우리. 그래서 정도 많고 눈물도 많고 공감도 잘해 세상에 선한 보탬이 되는 당신의 영혼은 그래서 더 아름답습니다. 당신만의 위도에 꼭 맞는 섬에 닿으면 저를 꼭 초대해 주세요.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섬이지만, 하나의 큰 바다 안에 함께입니다.           


나만의 위도를 찾아 떠나는 여정, ‘하루의 섬’의 세 번째 이야기를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피드백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여러분의 경험이나 고민을 나눠도 좋고, 다음에 다루면 좋을 이야기 주제에 대한 제안도 좋아요.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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