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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Sep 09. 2024

06. 언젠가 이 섬이 물에 잠기면

  

 쏴아- 하고 쉼 없이 빗소리가 이어진다. 우기가 시작된 섬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 갑작스럽게 요란한 비가 쏟아붓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며 그친다. 도시에선 조금만 비가 내려도 우산을 펼쳐 – 없다면 편의점에 들러 새 걸 사서라도 - 막아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 섬에서 지내며 그녀는 달라졌다. 섬의 누구도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그치면 그치는 대로 사람들은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비를 맞고 다니거나, 딱히 급할 게 없으면 아무 곳에나 들어가 비가 그칠 때까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도 아니면 아예 바다에 뛰어들어 빗물에 젖은 몸에 바닷물의 짠기를 입혔다.

      

 그녀는 이 섬에서 오다가다 친해진 몇몇 친구들과 해변가에 있는 단골 카페 블루워터에서 앞으로 뭘 하며 먹고살지 모르겠다며 푸념하다가 갑자기 거세게 퍼붓는 비에 다 같이 우르르 뛰어나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이도 피부색도 출신도 모두 다른 이삼십 대 젊은이들이 하도 거세게 쏟아지는 비로 뿌옇게 변한 수평선 위에 희미한 점이 되었다. 그녀는 수영을 좀 하다가 바다 위에 몸을 완전히 젖혀 하늘을 향해 드러누워 입을 크게 벌렸다. 바닷물의 짭조름함이 그녀의 얼굴을 따갑게 때리는 빗물과 섞여 부드러운 맛으로 변했고, 조용히 일렁이는 파도가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받치고 있었다. 그녀는 온몸에 힘을 뺀 채로 바닷물과 빗물 사이를 부유했다.   

   

 “두렵고 불안할 땐 발가락만 담가 보는 대신 물속에 풍덩 빠지는 게 나아.” 어떻게든 무엇에도 빠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그녀가 처음 사랑했던 남자, 태훈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이 섬에 퍼붓는 것처럼 거친 비가 퍼붓던 날, 우산 하나로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걷다가 그는 갑자기 우산을 집어던지고는 움푹 팬 인도의 물웅덩이로 뛰어오르며 아이처럼 웃었다. 꺅꺅 소리를 질러대며 어떻게든 내버려진 우산을 주워다 다시 펼쳐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녀에게 계속해서 물웅덩이만 찾아 뛰어다니며 일부러 물을 튀기는 그의 새하얀 웃음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녀는 비를 증오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문 앞에 우산을 들고 늘어선 엄마들 사이를 피해 혼자 집으로 뛰어온 그녀는 화장실 배수구에서 뽀글뽀글 방울 소리가 꺽꺽대는 트림 소리로 바뀌기 시작하면 여자 스타킹에 모래를 채워 만든 주머니로 구멍을 틀어막았다.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해 틀어막아도 저지대 반지하 집엔 대문 밖 길가의 넘치는 물이 가차 없이 들이차고, 집안 화장실 배수구는 콸콸대며 역류하기 시작했다. 끝내 배수구를 틀어막아 놓았던 스타킹 모래주머니가 빠져나와 집안을 둥둥 떠다니면 그녀는 그걸 지옥 같은 저녁이 될 거라는 신호로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그나마 강수량이 적은 날은 발목까지, 많은 날은 무릎까지 집안 전체에 물이 들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했기에 물이 들이차도 괜찮은 높이의 장롱 끝에 책가방을 옮겨 놓고는 집 안팎으로 들이치는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는 흙탕물과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붓는 빗물에 공포와 무기력함으로 흠뻑 젖은 열 살 소녀는 목 놓아 울었다. 소녀는 작은 반지하 집에 물이 조금씩 조금씩 차오르다 결국 모든 게 물에 잠겨 아무도 자신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서럽고 외로운 그 울음소리는 끝내 거센 빗소리에 묻혔고, 정말 아무도 오지 않았다.      


 소녀가 정말 두려웠던 건 따로 있었다. 그 모든 물난리가 끝나고 조금씩 서서히 집안에 들이친 흙탕물이 빠져나갈 때쯤 일을 마치고 난장판이 된 집으로 돌아올 엄마였다. 그리고 하도 울어 목이 다 쉬어버린 어린 딸은 아랑곳없이 집에 있는 걸레란 걸레는 모조리 모아다 세숫대야를 옆에 끼고 집안 바닥 구석구석을 닦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소녀의 아빠가 돌아오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흙탕물로 가득 찬 세숫대야와 걸레를 엎으며 이런 집에 살 수밖에 없는 팔자에 대한 원망과 저주를 쏟아낼 것이다. 그러면 아빠 역시 화에 못 이겨 온 집안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며 소녀가 난생처음 들어보는 욕설과 폭언을 내뱉을 것이고, 절대 물러설 리 없는 엄마는 아빠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쳐봐, 쳐봐, 어디. 아니, 차라리 죽여, 죽여!”하고 절규할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빠는 결국 엄마와 뒤엉켜 머리카락을 잡고, 밀고, 당기고, 누르며 서로 죽지 않을 만큼만 영리하게 폭력을 행사할 것이다. 소녀는 다 쉰 목소리를 쥐어 짜내 뒤엉켜 있는 엄마와 아빠를 어떻게든 떼어 놓으려 절규하다가 일단 눈에 보이는 칼이란 칼은 모두 숨기고 집을 뛰쳐나와 모든 걸 쓸어간 비를, 여지없이 또 내릴 비를 원망하며 정처 없이 걸을 것이다.      


 그녀는 태훈의 빗속 순수하고 해맑은 미소에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그 아름다운 미소를 가질 수 없는 그녀 자신에 대한 자책과 원망이 섞인 질투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기도 했다. 이내 그런 마음이 수치스러워진 그녀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줄 유일한 방패라도 되는 양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던 우산을 내던지고 그와 함께 흠뻑 비를 맞았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힘차게 안아주었고 그렇게 둘은 거센 빗살에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인도 위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다고 마법처럼 그녀의 비에 대한 공포와 트라우마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거세게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그녀는 미세하게 떨리는 몸으로 쿵쾅거리기 시작하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하늘의 벌을 받았지만, 또 어떤 비 오는 날엔 모든 게 괜찮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녀의 삶에 조금씩 더해지는 비 오는 날은 점점 더 다채로워졌다. 오늘처럼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외딴섬에서 만난 거센 비는 자비 없는 햇빛의 열기로 달궈진 대지와 바다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그녀는 뜨끈한 바닷물과 차가운 빗물 사이 어딘가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집에 돌아가는 게 좋겠어.” 계속해서 거세게 쏟아지는 비가 심상치 않아 지자 섬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영국인 친구 엠마가 말했다. 그녀는 친구들과 해변에서 빠져나와 쫄딱 젖은 꼴로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싸이리 비치의 만남의 광장과도 같은 세븐일레븐 앞 작은 교차로는 섬의 고지대에서 흘러내린 물이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고이기 시작해 무릎과 허벅지 사이까지 차올랐다. 도로를 지나는 스쿠터 운전자들은 모두 양발을 땅에 딛고 천천히 걷다시피 움직였다. 엠마를 비롯한 친구들은 이 섬에 들어온 지 가장 얼마 안 된 그녀를 제일 먼저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리고 나머지 친구들 역시 한 명씩 순서대로 서로의 집까지 함께 하며 안전을 살폈다. “이번 태풍은 심상치 않은 것 같아. 나도 여기서 몇 년을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강한 비야. 하지만 걱정 마, 하나. 아무 일 없을 거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다에 뛰어들어는 벌러덩 뒤로 누워 입을 벌리고 빗물을 받아마시던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걸 눈치챈 엠마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바로 전화해.” 

     

 숙소에 돌아온 그녀는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전면이 통유리로 된 객실 문이 하도 요란하게 흔들려 마치 누군가 밖에서 억지로 들어오려고 문을 잡아 흔드는 것 같았다. 온몸이 떨리는 게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반지하 집에서 홀로 떨던 열 살 소녀로 돌아간 것처럼 깊은 고립감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적어도 비의 저주와도 같았던 소녀의 엄마와 아빠는 여기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그녀는 10년 전 태훈과 뛰어다니던 텅 빈 비 오는 거리를 떠올렸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친 그녀가 욕실을 나오자마자 또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정전이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평소엔 너무 더워 쓰지도 않던 이불에 몸을 푹 파묻힌 채 유리창을 배경으로 주유소 앞 공기인형처럼 요란하게 춤추는 야자수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뾰족하고 기다란 여러 개의 이파리가 연결된 야자수의 그림자는 시꺼멓고 위협적인 악마의 형상으로 끝없이 창문을 내리치다가 부드럽고 우아한 움직임으로 바뀌길 쉬지 않고 반복했다. 세졌다 약해졌다 반복하는 빗소리에도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태풍이 관통하기엔 너무 작은 섬은 멀찌감치 깊고 넓은 바다를 건너는 폭풍우의 간접 영향권에 든 밤을 지나고 있었다. 어둠으로 가득한 정전된 섬에서 그녀에게 허락된 감각은 오직 소리였다. 문득 ‘빗소리’ ‘바람 소리’의 실체라는 게 과연 있을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녀가 듣고 있는 쏴아- 하는 빗소리는 비가 야자수 잎에 떨어져 내는 소리이고, 우위위윙- 하는 바람 소리도 바람이 창문에, 나무에 부딪혀 나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빗소리와 바람 소리는 다르게 정의되는 것 아닌가. 그녀는 이 섬에 오기 전까지 기억하던 빗소리와 바람 소리를 떠올렸다. 도시의 콘크리트 도로와 지붕을 때리는 건조한 빗소리와 고층 빌딩 사이를 간신히 빠져나가는 바람 소리. 곧 모든 게 물에 잠기고 말 거라는 공포와 무력감에 휩싸여 제발 그치기만을 기도했던 그 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쓴 우산 위에 내려앉던 빗방울 소리. 그녀는 비로소 삶을 온전히 느꼈다. 그녀의 삶은 어느 끔찍했던 기억 속에 정체되어 있지 않고 꾸준히 무던하게 나아가고 있으며 때론 방향을 바꾸기도, 때론 제자리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녀는 더 이상 비만 오면 물이 차던 반지하에서 울던 소녀가 아니며 비 오는 날 우산을 집어던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춤을 추던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이제 비에 젖지 않는 바다에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여자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그 모든 것이다. 그러자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졌고, 길게 이어진 어둠 속에서 그녀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깨어 산책을 나와 보니 마을은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해변가를 따라 늘어선 작은 상점들은 유리창이 다 깨지고, 흙탕물로 뒤덮인 집기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싸이리 비치를 상징하는 90도 각도로 휘어 자란 야자수는 뿌리가 뽑혀 쓰러졌다. 이 작은 섬을 멀리 지나던 태풍의 위력이 이 정도인데 만약 태풍이 작정이라도 하고 더 가까이 왔었다면, 하고 사람들은 이보다 더 큰 피해가 나지 않은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런 큰 태풍이 지나간 건 6년 만이라고 했다. 오래된 다이빙 센터 건물 하나가 내려앉았지만, 안에 사람이 없어 다행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는 미얀마 노동자들이 대나무와 야자수잎으로 집을 짓고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정부의 손길이 빠르게 닿지 않는 작고 외딴섬에 들고 나는 모든 물자를 실은 배들이 태풍으로 며칠간 끊기자, 마트의 생수와 생필품, 식재료들이 조금씩 바닥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조바심 내거나 욕심부리지 않았다. 당장 누군가가 자신의 집에 생수 수십 병을 쟁여 놓았다 해도 그래봐야 여전히 이 섬 안이니까. 서로에게 당장 필요한 것들은 온라인 채팅방에서 물물교환으로 이뤄지고, 당장 잘 곳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섬사람들은 자진해서 여분의 매트리스를 모아 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한다. 그녀 역시 당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옷가지 몇 벌과 음식을 챙겼다.      


 해변가의 쓰러진 야자수 옆에 간이 천막이 들어섰다.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하게 잠잠해졌고, 수평선 위에 다시 붉고 보랗게 노을이 내려앉았다. 섬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마리오가 피자를 굽고, 태국 식당 주인 피댕이 팟타이와 닭튀김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혹했던 지난밤을 서로 위로하고 지금, 여기, 모두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자리였다. 그녀도 이제 제법 얼굴이 익은 사람들과 안부를 묻고 길었던 밤의 경험과 심정을 나누며 손을 맞잡고 포옹을 나눴다. 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그녀가 행여 놀랄까 살뜰하고 다정하게 챙긴 엠마도 맥주 한 병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대단한 밤이었지?” 눈을 찡긋하는 엠마에게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이 섬이 아예 물에 잠겨버리는 건 아닐까, 했어.” 그러자 엠마가 답했다. “그럼, 이 섬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지. 그래봐야 해발 300미터가 조금 넘는 곳이지만.” 그녀는 갑자기 심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300미터? 이 섬도 얼마 안 가 기후 위기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가라앉아버릴 수도 있겠구나….” 그러자 엠마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녀가 들고 있던 물컵에 자신의 맥주병을 살짝 부딪치며 답했다. “그럼, 바다로 뛰어들면 되지.” 그 순간, 엠마의 얼굴에 태훈의 맑은 미소가 비쳤다. 그녀의 삶은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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