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해가 지고 난 후 노을의 잔상이 푸르스름하면서 보랏빛 색으로 물들인 화선지처럼 펼쳐지고 저 멀리 깊은 어둠이 천천히 숨죽여 다가오고 있었다. 숙소 발코니에 앉아 갈 곳 없는 편지를 쓰고 있는 그녀의 주변을 밝히던 작은 조명들이 갑자기 빛을 잃는다. 아무도 없는 적막이 싫어 아무 채널이나 켜둔, 끊임없이 떠들지만 그녀에겐 절대 말을 걸지 않는 낯선 얼굴 TV 뉴스 앵커도 사라진다. 정전이다. 그녀가 이 섬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 정전을 겪었을 땐 잠자리에 들기 전 샤워 중이었다. 깊고 외딴섬 오지에 상하수도가 정비되었을 리 만무하고 숙소 객실마다 독립적으로 비치된 샤워 시설은 모터를 사용한다. 이 섬에서 정전은 곧 단수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녀는 머리카락에 잔뜩 거품을 묻히고는 조심스레 손을 더듬어 욕실 한구석에 있는 커다란 플라스틱 컨테이너에 있는 물을 바가지로 떠 어둠 속에서 샤워를 마쳤다. ‘아… 이럴 때 쓰라고 있었던 거구나.’ 그녀는 숙소 욕실에 왜 그 커다란 컨테이너에 물을 가득 채워져 있었는지 비로소 용도를 알아냈다는 사실에 뿌듯해졌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도 선풍기가 돌지 않으니 샤워하기 전처럼 금세 땀범벅이 되었지만, 타월을 두르고 발코니에 나가 온 섬이 컴컴해진 광경을 보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넋이 나갔다. 해변가에 늘어선 바와 클럽에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의 아쉬워하는 탄성이 그녀의 방까지 들려왔다.
그녀가 태어나 정전과 단수를 겪은 건 그녀가 기억하는 한 열 살 이후 처음이었다. 예전에 비해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이 섬은 잦으면 일주일에 한 번, 특히 섬에 있는 사람들이 전기를 많이 쓰는 초저녁 시간을 전후로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 넘도록 전기가 나갔다. 그녀는 잠시라도 문명으로부터 멀어지는 기회를 얻었다. 당장 이 섬을 비추는 건 오직 달빛뿐이었고, 이 섬의 모두는 전기가 없던 시절로 함께 돌아갔다. 당장 누구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어둠을 받아들이는 것뿐. 고요와 어둠의 시간이 지나 전기가 들어오면 저기 저 해변가 클럽에선 다시 쿵쿵거리는 음악 소리가 들리고 그 안을 채운 사람들의 환호성이 시작된다. 다시 들어온 전기는 영 시원치 않아 선풍기 바람이 세졌다가 약해졌다가, 발코니를 비추는 전구가 환해졌다 어두워졌다 한다. 그녀는 섬에서 정기적으로 정전을 겪으며 이 섬의 열악한 인프라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늘 쫓아오지도 않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 조급증을 달고 살던 그녀에게 정전은 가끔 때를 알고 저절로 찾아오는 처방전 같았다.
11월에 접어든 섬에서 겨울이 없는 나라지만 해가 덜 들고 비가 자주, 그리고 많이 오는 우기엔 추위를 잘 타는 그녀에게 더운물 샤워는 필수였다. 섬 생활에 요령이 생긴 그녀는 섬에 사는 사람들과 섬에 놀러 온 사람들이 전기를 많이 쓰는 시간은 일부러 샤워를 피했다. 그러고는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너무 덥지도, 서늘하지도 않은, 해의 붉음과 달의 푸르름이 섞여 보랏빛 마법을 부리는 매직 아워 시간에 혼자서 천천히 해변을 걷는 게 그녀가 이 섬에서 누리는 가장 호화로운 사치였다. 해변가 바로 옆에 난 길가에 작은 노점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도 얼굴을 익혔다. “안녕, 하나!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이제 그들은 “곤니치와” 아니면 “니하오”라고 외치는 대신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럼, 그녀도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별일 없던 하루에 대해 작은 수다를 지저귀다 가고 싶은 마음이 끝날 때까지 걷는다. 섬에는 이천 명 내외의 거주자가 등록되어 있지만 여행 왔다 오랫동안 눌러앉는 사람들이 많아 태국 현지인보다 서양인들이 훨씬 많았다. 해변에 나가면 여기가 유럽인지 태국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로 모래사장에 누워 태닝을 하며 책을 보는 백인들이 대부분이었고,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일을 마친 현지인들도 노을을 즐겼다.
백인들은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그녀가 산책하다 마주친 백인들은 그녀에게 일본에서 왔는지를 가장 먼저 물었고, 아니라고 하면 그다음이 중국이었다. 그녀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이어지는 북인지, 남인지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거기에 김정은이라는 이름을 굳이 또박또박 발음하며 한국에 대해 아는 게 그것뿐이라는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당당함에 그녀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국에선 어딜 가든 서로 나이부터 물었다. 그게 자연스럽게 결혼 여부, 자녀 유무, 연애 여부 등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상대의 개인사를 웬만큼 알지 못하면 대화하지 못하는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시대가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들은 안 물어도 될 걸로 서로를 괴롭혔다. 그런데 한국을 벗어나니 이 섬에선 나이 대신 국적을 물었다. 인종과 국적은 이 섬의 새로운 대화방식이었다. 단어만 바뀌었을 뿐 질문의 기능은 다르지 않았다. 국적을 말하면 상대방은 예의상으로라도 상대의 국가에 대한 아는 척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리고 분류를 시작한다.
아시안이나 흑인, 인디언, 중동 사람, 남미에서 온 사람들을 분류하고 비하하고 무시하는 언어의 표현이 이렇게 다양하고 창의적인지 그녀는 이 섬에 와서야 알았다. 하지만 백인에 대한 언어는 빈약했다. 기껏해야 ‘금발은 섹시하지만 무식하다’ 라거나 빨간 머리를 ‘진저(Ginger)’라 부르며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유전자를 조롱하는 정도다. 이것도 백인이 백인에게 할 때만이 오직 농담이 되지, 다른 인종이 백인에게 공공장소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상상이 안 된다. 그녀는 가만 보면 인간을 분류하고 자신이 속한 그룹을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그룹을 철저히 배척하는 건 가엾은 인간의 생존 본능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이 언젠가 지구 밖을 들락거리게 된다면 우주에서 만난 외계인들에게도 어느 행성에서, 어느 별에서 왔냐고 묻고 따지며 금세 그들을 상징하는 모욕의 언어를 만들어낼 거라고. 하지만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도, 덴마크는 우유가 유명하다던가, 노르웨이는 고등어, 핀란드는 산타클로스와 ‘휘바휘바’가 아는 것이 전부인 그녀가 아니던가. 그들과 그녀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었다. 태국인과 캄보디아, 미얀마, 말레이시아, 베트남 사람들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그녀는 섬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며 자주 가던 한국 식당에서 일하는 ‘모’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처음 그 식당에 갔을 때 모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국에서 왔죠?”라고 또박또박, 한국어로 물었다. ‘곤니치와’와 ‘니하오’에 지쳐있던 그녀가 깜짝 놀랐을 때 모는 자신이 K-팝과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 한국인을 잘 알아본다고 말했고, “언니라도 불러도 돼요?”라며 살갑게 굴었다. 낯가림이 심하고 항상 경계심을 높이던 그녀는 누구든 언제나 남이 되거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이 섬의 바이브에 조금씩 동화되어 갔다. 꼭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그녀는 식당이 한가한 시간이면 모를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모는 한국어를 공부하다 궁금한 것을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모가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돈을 벌러 왔다는 걸, 대부분의 미얀마 사람은 얼굴에 연노란색 타나카 분칠을 한다는 걸, 독재로 많은 걸 잃은 미얀마 사람들이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 태국으로 와서 열악한 대우와 멸시 속에 살지만 오래전 미얀마는 태국을 능가할 만큼 번성했다는 걸, 그래서 태국과 미얀마의 관계는 그녀의 나라 한국과 일본과도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그녀가 한국의 겨울, 눈 내리는 걸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것도. 그러고 보니 이 섬의 어디를 가도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얼굴에 타나카를 칠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나라가 알아차려지길 바라면서도 다른 나라에 무심한 자신의 이중성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기준이 그녀의 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였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섬에선 모두 이방인이었다. 미국과 러시아, 영국과 인도, 프랑스와 베트남, 스페인과 멕시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국과 대만, 한국과 일본 등, 이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짧게는 몇 주부터 길게는 몇 년까지도 함께 어울려 괴상한 곳이었다. 저마다 각각의 사연으로 자신이 온 나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자발적 공동체였다. 세계 곳곳 제 나라의 문화와 교육, 행정, 법률에 길든 사람들이 모여 사는 수시로 정전되는 이 섬은 마치 현대의 최첨단 문명이 끝까지 뚫고 들어오지 못한, 우등부터 열등까지 단계별로 나뉜 여러 인종들의 모임에 약간의 아나키즘을 섞어 인류 최후의 실험을 진행하는 곳 같았다. 이 섬의 유일한 파출소는 단 하나뿐인 포장도로이자 신호등도 없는 일 차선 도로를 아무 때나 막고 주로 ‘파랑’ 여행자들이 타고 다니는 스쿠터를 세워 대마초나 코카인을 찾으면 몇백 바트를 슬쩍 건네받고 선심 쓰듯 보내주는 일이 주업이었다. 이들이 출동할 강력 범죄 같은 건 없었다. 돈이 되지 않는 작은 섬엔 글로벌 대기업 프렌차이즈도 관심이 없었다. 맥도널드도 스타벅스도 타코벨도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은 피자를, 프랑스에서 온 사람은 바게트를 직접 구워 팔았다. 장기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인 채팅방에서 누군가 “마트에 가니 달걀이 다 떨어져서요” 하면 “우리 집 달걀 좀 가져다줄게요!”하고, “벽에 액자를 걸려고 하는데 망치가 없네요” 하면 또 누군가 “제가 가서 도와드릴게요!” 한다. 전날 밤 섬에서 파티라도 열리면 다음 날 채팅방엔 여지없이 술 취해 실수로 가져간 다른 사람의 플리플랍과 스쿠터를 서로 찾아 맞바꾸는 의식이 치러진다. 이 섬은 그녀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였다. 매일 같이 파도처럼 섬을 떠나고, 또 섬에 들어오는 사람들 속에서 이 머나먼 섬까지 흘러들어와 뿌리를 내린 온갖 종류의 머리칼과 눈동자 색깔의 섬사람들이 그녀는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기꺼이 그 최후의 실험에 동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