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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Sep 12. 2024

07. 자연스럽다

 

 몇 년에 한 번 온다는 강력한 태풍에서 살아남은 그녀는 갑자기 삶의 의지가 솟아나는 걸 느꼈다. 태풍의 직접 영향권에 든 다른 섬에서 사상자가 나왔으니 ‘살아남았다’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살아남는다는 건 전혀 다른 의미였다. 하루의 서너 시간을 매일 같이 지하철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엄마, 아빠보다 더 가까이 부둥켜안고 씨름하며 이 꼴을 면하려면 대출받아야 하는 서울의 불빛에 내 인생의 몇 시간을 바쳐야 하나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다이어트약 부작용으로 10분에 한 번씩은 인터뷰 도중 화장실로 뛰어가야 하는 여자 아이돌의 텅 빈 눈빛을 마주하며 안타까워하다 정작 사무실로 돌아와선 인터뷰 내용을 쓸 게 없어 허연 화면에 반짝거리는 커서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외모는 화려하지 않아도 음악은 끝내주게 잘하는 인디뮤지션 인터뷰를 준비하며 “돈이 안 된다”라고 손사래 치는 브랜드사에 읍소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몸을 잠깐 뉘었다 네다섯 시간을 자고 또 어제를 오늘로 복사해 붙여 넣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 그녀에겐 살아남는 것이었다. 도시에도 태풍은 왔다 가지만 지하철과 빌딩 숲에 숨어 자연재해로부터 용케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남북으로 7킬로미터, 동서로 3킬로미터가 전부인 작은 섬에서 화려한 메이크업을 싹 지우고 난 민낯처럼 단조로운 일과에 그녀는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어떤 마실 것과 먹을 것으로 몸을 채우고 어떤 풍경을 바라보고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할지, 그리고 몇 시에 어디서 어떻게 잠들지까지 모든 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일상을 맞닥뜨린 그녀는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서울에선 정신 차려보면 한 달이, 일 년이 지나있었는데 섬에 들어온 이후로는 하루하루가 각각 독립적이고 선명해졌다. 지금까지는 바쁘게 뭉개지는 하루로 시간을 잃기만 하는 것 같아 불안했는데 이제는 살아 꿈틀대는 하루로 넘쳐나는 시간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섬에 들어온 지 두 주가 지나자, 그녀는 여행과 일상의 중간 어디쯤 서 있었다.

     

 그녀는 섬에 들어온 후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명상을 시작했다. 도시에선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이다. 그녀는 사람들과 섞여 나는 소음을 피부 위를 기어다니는 머리카락만큼이나 싫어하지만 침묵과도 어색하다. 그래서 집에선 보지도 않는 TV를 켜놓고 밖에선 이어폰과 가장 친하다. 왜 인간의 귀에는 눈꺼풀처럼 원하면 언제든 덮을 수 있는 게 없는 걸까. 잘 때도 산짐승이 나타나면 재빨리 깨어나 싸우거나 도망가라고, 살아남으라고 그런 거겠지. 그렇게 살아남은 인류의 마지막 후예는 이렇게 틈만 나면 귀를 막고 있으니 다음 종(種)에는 어쩌면 귀꺼풀이 달릴지도 모르겠다. 


 불면증부터 편두통, 소화불량, 진단받지 않은 우울증까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그렇다고 합리화했던 병들이 서울에서 이 먼 곳까지 그녀를 지긋지긋하게 따라붙었다. 섬에 들어온 처음 며칠은 그녀의 몸이 알아서 전원 스위치를 끄고 휴식 모드에 들어갔지만 결국 왜 다시 바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냐고 아우성쳤다. 명상을 시도한 첫날은 그 텅 빈 암흑과 고요를 채 5분도 버티지 못했다. 다음 날은 7분, 또 다음 날은 10분, 그렇게 분(分)을 야금야금 늘려가며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복받치는 울음으로, 또 어떤 날은 주체할 수 없는 벅찬 감정으로 그녀는 스스로 화해를 건넸다. 며칠에 한 번은 엠마가 다니는 요가 클래스에 따라가 따뜻한 아침 햇살에 달군 모래사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스스로 몸을 달랬다. 


 도시의 전사로 아주 오랫동안 단단히 훈련된 그녀의 몸과 마음은 쉽사리 긴장을 풀지 않았고, 그동안 제대로 대접하고 돌보지 못했던 탓을 모두 그녀 스스로에 돌렸다. 그녀는 이참에 아주 진득하게 기다려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평온한 아침을 보내고 나면 여지없이 초조와 불안이 반전을 노리며 스멀스멀 그녀의 마음속에서 기어 올라왔다. 정해진 의무와 할 일이 없다는 건 곧 무엇이든 언제든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거라고 주문을 외우며 들어온 섬이건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제 존재의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는 거라던, 모든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던 세계에서 그녀는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무던히 인내하며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는 숱한 사람들처럼 살지 못하고 좇아 나온 자유가 과연 그녀가 포기한 사회적 명성과 안정적인 월급, 4대 보험, 힘 있는 명함의 가치와 맞바꿀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검증이 세상의 마지막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섬에서 시도 때도 없이 닥쳐와 그녀를 괴롭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인제 그만 일탈을 멈추고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는 그녀가 있었고, 동시에 발가락만 담그지 말고 물에 풍덩 빠져보라는 섬의 속삭임에 매료된 또 다른 그녀가 있었다. 

    

 아침 요가를 마치고 나오는 길, 누군가 그녀를 반갑게 불렀다. 벤이었다. 이렇게 작은 섬에서도 오다가다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마주치긴 쉽지 않다. 스쿠터를 타고 지나다 그녀를 발견하고 멈춘 벤이 그녀도 뜻밖이라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길가에 스쿠터를 세우고 그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벤은 안 본 사이 햇빛을 더 머금어 건강하고 근사해 보였다. 그의 낯설고 뜨거운 위로의 말이 다시 그녀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하나 너, X 나게 어리다고….’ 곁에 다가선 벤은 가벼운 포옹과 함께 그녀의 양 볼에 번갈아 입을 맞추며 프랑스식 인사를 건넸다. 피부 접촉이 깃든 인사라곤 악수가 전부인 나라에서 온 그녀는 어정쩡하게 엉덩이를 뒤로 살짝 뺀 상태로 허리를 살짝 구부리고는 그가 어느 쪽 볼을 갖다 댈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친구가 운영하는 다이빙 센터에 가는 길인데 같이 갈래?” 세상 끝 무인도에 사는 날개가 여섯 달린 무지갯빛 새에게도 유효할 무해한 친근감이었다. ‘이 사람이 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지?’ 하는 의심 없이 사람의 순수한 선의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그가 마치 초능력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도시 정글의 생존 가이드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제외된 능력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부터 세상의 아름다운 섬 곳곳을 옮겨 다니며 살아온 그에겐 바로 그것이 자연스레 터득한 생존의 기술이었다. 

     

 어느덧 이 세상에 목적 없이 베푸는 호의는 없다고 믿게 된 그녀는 그런 자신이 가엾어 용기를 냈다. “그래? 할 일도 없는데 잘 됐다! 그럼 나도 다이빙할 수 있는 거야?” 그녀가 묻자, 벤은 뿌듯한 표정으로 “네가 원한다면, 기꺼이” 하고 손을 내밀어 스쿠터 쪽으로 안내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사계절이 모두 여름뿐인 트로피컬 아일랜드에서 플리플랍을 신고 보드쇼츠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젠틀맨이다. 섬에 들어와 어딜 가든 걷기만 했던 그녀는 벤의 스쿠터 뒷자리에 앉았다. 이 섬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스쿠터를 모는 건 소심하고 신중한 그녀에겐 여전히 할 일 목록에 올라만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이 뜨거운 햇볕만 내리쬐는데 스쿠터가 달리기 시작하자 저절로 바람이 일었다. 그녀는 얼른 스쿠터를 배워 더운 한낮엔 이렇게 자연 바람 선풍기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에 나오는 전형적인 매력을 드러내는 큰 키에 다부진 근육질의 벤 뒷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그의 거대한 등에 가려 앞이 보이질 않았다. 벤의 스쿠터 맞은편에서 달리는 누군가에게도 벤에 가려진 그녀는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호등 하나 없는 섬에서 다들 급할 것 없이 느긋하게 달리는 스쿠터는 걸음보다 조금 빠르고 여행자들을 항구에서 숙소로 실어 나르는 픽업트럭보다 조금 느리다. 그녀는 양쪽을 번갈아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지나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 풍경들은 달짝지근하고 끈적하며 물기 가득한 냄새로 바뀌었다. 태초의 섬에서 나고 자란 나무와 꽃, 열매, 바닷바람이 뒤섞인 달큰하고 뭉근하며 몽환적인 냄새였다. 그녀의 감각 중 가장 예민하고 날카로운 건 촉각 다음으로 후각이었다. 아니, 그녀의 모든 감각은 사람들의 평균 이상을 웃돌았다. 그녀는 태어나 지금까지 많은 기억을 후각으로 저장했다. 그녀는 사람들을 저마다의 독특한 냄새로 구분했다. 제 스스로 풍기는 냄새를 가리기 위해, 아니 꾸미기 위해 그녀는 늘 향수를 뿌렸다. 스쿠터가 조금씩 속력을 내자 벤의 머리카락에서 전 세계 어딜 가나 구할 수 있을 법한 비누 향이 풍겨 나왔다. 여기에 살짝 떫고 비릿한 땀 냄새가 그의 살내음과 섞여 그녀의 코를 찔렀다. 아마존 오지의 깊은 정글 속에 들어가면 이런 냄새가 날 것 같았다. 이건 바로 벤이라는 사람의 냄새였다.   


 태풍이 한바탕 청소를 하고 지나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무엇에도 걸러질 것이 없는 햇빛은 점점 강해졌다. 따가운 햇빛에 눈이 부셔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진단받은 적 없는 우울증을 수호천사처럼 곁에 두고는 행복한진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자위하며 열심히 하는 병에 걸려서는 모든 에너지를 바닥까지 소진해 버려야 직성이 풀리던 번아웃의 축제 같은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차라리 철저하게 지칠 수 있었다면 그녀는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고 잠들 수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자면, 개운하게 깨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깨어있는 동안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확실하게 연소할 수 있었다면 순환이 이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보통 뇌만 지쳐 있다거나 승모근에만 온 힘을 다해 긴장하고 있다거나 다리만 퉁퉁 부어오르거나 마음만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순환이 되지 않았다. 자연의 일부분으로 태어난 인간의 삶이 부자연스러워질수록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공에 가까워지는 건 도시의 가장 거대한 역설이자 음모였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지니 애매하게 남아도는 에너지는 그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욱하고 신경질적이고 자기 혐오적으로 만들었다.      


 “가장 가혹한 형벌은 전혀 무익하고 무의미한 일을 계속해서 하게 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문장을 떠올리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부드럽고 미지근한 바람에 섞인 기분 좋은 우연과 이방인의 친근함이 좋았다. 그리고 그녀는 당장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그녀가 그렇게도 끔찍하게 못 견디던 불확실과 불안정의 틈새에서 아름다움을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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