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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Oct 03. 2024

13. 표류하는 반역자


 이곳이 서울이었다면, 그리고 그녀의 역할이 오직 살아남는 거였다면 그녀는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작은 섬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고는 끝내 권력의 폭력을 행사하는 자로 전락한 형식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그의 진짜 모습을 사람들 앞에서 까발리고 돌아서는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  

    

 “나 카이스트 나온 사람이야! 네까짓 게 뭐 잘났다고 까불어? 내가 앞으로 너, 이 섬에 발붙일 수 있게 할 것 같아?”      


 희한하게도 그 순간, 그가 술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찌르고 상처 내려 외치는 말들이 아름다운, 너무나 조용하고 평온한 바닷가의 파도 소리에 다 묻히고 말았다. 추한 건 언제나 아름다움에 지고 만다. 이 모든 게 어쩌면 커다란 농담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날 밤 숙소로 돌아가서도 언제든 그녀를 찾아와 못다 한 분풀이를 할 수 있는 그가 두려워 덜덜 떨리는 온몸을 끝내 잠재우지 못했다. 형식이 그녀를 이 섬에 발붙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힘이 있다는 건 분명 허풍이었지만 스스로 자신을 그런 존재라고 믿는 굳건함은 사실이었다. 굳이 ‘카이스트’를 꼭 집어 그걸 마치 위협적인 무기라도 되는 듯 휘두른 형식은 발에 차이는 게 대학 졸업자인 한국에서 특정 대학의 이름이 사회의 계급을 규정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보낸 4년이 가장 아까웠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 작고 외딴섬에서조차 벗어날 수 없는 그 익숙한 사실에 그녀는 더욱 절망으로 몸서리쳤다. 그녀가 뒤로 하고 온 수많은 얼굴 중 은혜, 그리고 아직도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연우 엄마를 비롯한 다른 여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잠을 설쳤다.      


 트로피컬 섬의 변덕스러운 우기는 계속이었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이른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바다에 인사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고는 몇 시간이고 해변에 앉아 바다의 관찰자가 되었다. 영영 잔인하게 내리쬘 것만 같은 태양 빛을 순식간에 집어삼킨 먹구름은 몇 시간이고 통곡하듯 운다. 그래도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온갖 난 체를 다 하는 인간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도, 인류의 조상을 그 넓고 깊은 속에 품고서도 바다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온갖 오물과 쓰레기, 원자폭탄까지 받아주며 인간의 허영과 오만으로 물든 역사를 속속들이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바다가 잠자코 있는 건 그에 상응하는 인간의 아름다운 시간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 바다의 성품을 닮고 싶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여전히 하루에도 수백 개의 미움과 분노와 불안과 실체 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퍼붓던 비가 얇아질 때쯤 은혜에게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때론 약속 시간이 무의미한 이 작은 섬에서 해변가의 단골 카페 블루워터로 장소만 정하고는 그녀는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은혜는 한참 카페 안 곳곳을 둘러보고는 그녀 앞에 앉았다. 마치 아무도 그녀와 만나는 걸 봐서는 안 될 것처럼.      

 “이 아름다운 섬에 있는데, 좀 웃어요.”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내뱉은 그녀의 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은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애초에 여기서 다이빙 강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잘못이었던 것 같아요.”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여자들이 익숙했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중 하나였다. “내가 본 은혜 씨는 아무것도 잘못한 거 없어요. 언제나 부지런히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했어요. 자책하지 말아요, 제발.”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은혜는 스스로 상처 내는 걸 멈추지 않을 거란 것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은혜에게 “여기까지 온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텐데 다시 돌아가는 건 좀 억울하지 않아요?” 하고 물었다.      


 은혜는 낮은 한숨을 내쉬며 끝없는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억울하죠. 하지만 너무 힘들어요. 이미 언니도 봐서 알겠지만, 저 말고도 다이브마스터에 강사과정까지 다 마치고도 아직 실력이 안 된다,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면서 수개월 형식 강사님 보조만 하다가 떠난 여자들이 많아요. 돈 안 받고 일하는 것까진 좋은데 갑질과 폭언에 익숙해지다 보면 제가 정말 하찮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강사님에게 맞서는 언니를 보면서도 옆에서 아무 말 못 하는 제가 너무 부끄러웠어요.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녀는 덤덤하게 말했다. “나도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나쁜 년’ 안 되려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는데… 한국에서 일할 때 술자리에서 끔찍한 성희롱을 당했던 후배가 있었어요. 용기 내서 경찰에 신고하고 소송까지 갔는데 변호사가 계속 합의를 권하더래요. 어차피 승산이 없는 게임이라고. 어떻게, 얼마나 당했는지 후배가 모든 걸 증명해야 하고 판결이 나와봤자 소송 비용에 투자한 시간까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거라고. 내가 흥분해서 그랬죠. 나 팔로워 많으니, 소셜미디어에 폭로하자고. 그런데 그러면 내가 명예훼손으로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사실이든 아니든. 결국 어떻게 됐게요? 후배는 직장 그만두고, 그 남자는 승진까지 했어요. 그 예뻤던 아이가 우울증으로 하루하루 시들어가며 용기를 낸 괘씸죄까지 톡톡히 치르고 있는데 우리 모두 그걸 보고 뭘 배웠게요? ‘아, 용기는 내면 안 되는구나.’ 그래서 나도 엄청 비겁하게 살았어요.”     


 그녀 역시 은혜의 시선을 쫓아 바다로 눈을 돌렸다. 그녀가 이 순간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그저 그녀 옆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곳을 함께 해주는 것. 어느새 한가득 고여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눈물을 마지막 자존심인 듯 부여잡고 있던 은혜는 비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남자 손님들의 희롱과 추행이에요. 그걸 보고 아무것도 안 하는 연우 엄마도 싫고요. 그 모든 게 너무 당연해서 미치겠어요.” 순간, 은혜는 꾹꾹 눌러 담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녀는 말없이 들썩이는 은혜의 어깨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어섰다. “우리, 나가요!”     


 그녀는 은혜와 말없이 모래사장을 걸었다. 은혜는 그동안 울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마음을 꼬집으며 참았던 눈물을 바닥까지 털어냈다. 그렇게 울다 멈추다, 또 울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은혜를 보지도 않고 걷기만 했다. ‘그저 내가 여기 함께 있다’라는 느낌이라도 줄 수 있길 바랐다. 그사이 언제 비를 쏟아냈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말끔히 갠 하늘과 바다는 해의 가는 길을 배웅할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오늘은 정말 멋진 선셋이 펼쳐질 것 같은데?” 서쪽 해변의 끝에 다다라서야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은혜도 오랜만에 입술을 떼며 “벌써 바다 읽는 법을 익혔나 봐요? 요즘 우기라 선셋이 참 귀해요. 운이 좋네요, 우리”하고 활짝 웃었다. “바다를 읽는다고요? 와, 그런 것도 있어요? 나는 그냥 느낌이었는데….” 그러자 은혜는 말했다. “네. 매일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바다에 있다 보면 저절로 알게 돼요, 바다의 기분을.”     


 “은혜 씨는 바다와 다이빙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간을 좀 더 갖고 방법을 찾아봐요.” 그녀는 진심이었다. 제대로 자신의 쇼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하고 말없이 무대에서 자진해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시간….” 은혜는 그녀의 말을 몇 번이고 대뇌였다. 지금 자신이 하는 모든 건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초중고에 다니며 학원에서 보낸 시간은 값진 것인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단 하루의 시간도 허투루 쓴 적이 없는 은혜가 갑자기 휴학하고 여행을 떠나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녀의 엄마는 취업과 결혼, 그리고 출산을 이야기했다. 은혜는 차마 입 밖으론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갈 데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나서 그다음은… 엄마처럼 사는 거?’ 

    

 ‘엄마 말을 들을 걸 그랬어. 그냥 학교 다니며 취업 준비나 열심히 할걸.’ 10년의 공부가 단 하루 수능으로 가차 없이 판가름 나는, 이번이 아니면 다음은 없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절대 용납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늘 긴장의 살얼음판을 걸으며 잔뜩 움츠러들고 의기소침해진 은혜는 자신을 스스로 실패자라 여기고 있었다.      


 “내 인생도 어쩌질 못하면서 은혜 씨에게 조언할 입장은 아니지만… 은혜 씨가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앞으로 어디서 무얼 하든 피해자 마인드에 익숙해질 거예요. 항상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끝없이 고통스러울 거예요. 자진해서 피해자가 되는 건 이제 그만해요, 우리. 그렇다고 죽지 않으려고 죽이는 사람이 되자는 건 아니에요. 제일 나쁜 방관자가 되자는 건 더더욱 아니고. 그냥 조금 더 용감하고,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자고요. 그러려면 우선,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실패할 기회를 스스로 줘야 하는 것 같아.” 그녀는 열 살도 더 어린 은혜 앞에서 어쭙잖게 어른인 척한 것 같다는 쑥스러움에 괜히 은혜의 어깨를 톡톡 쳤다.      


 그녀는 이 섬을 표류 중이다. 이제야 바다로 나갈 배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선원들을 만났다. 그동안은 바다에 빠져 죽지 않으려 선원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어찌어찌 살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그녀는 이제 수영하는 방법을 안다. 그녀는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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