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기 전, 그녀는 바닷가로 나갔다. 아직 잠이 덜 깬 바다는 검푸르스름한 얼굴로 저 멀리 수평선에서 꿈틀거리는 실낱같은 하얗고 붉은 광선을 기다린다. 그 넘실대는 기대감의 순간을 함께 하는 게 그녀는 좋았다. 그보다 게으른 섬사람들은 여전히 전날 밤의 취기로 여전히 침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부지런한 건 다이버들이다. 이 섬에서 가장 먼저 뜨는 태양을 마중 나가는 다이버들은 얼굴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는데, 햇빛에 검게 그을린 얼굴 중에서도 유독 눈과 코를 연결한 둥그런 부분, 마스크를 쓴 부분만 허옇다. 다이버들이 ‘마스크 탠(Mask Tan)’이라 부르는 이 자국이 그녀는 참 좋았다. 그녀의 얼굴에도 마스크 탠 라인이 점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이 섬에, 그리고 다이버들의 커뮤니티에 조금씩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차오르고 있었다. 기미와 주근깨, 잡티 하나 용납되지 않는 희고 맑은 피부를 병적으로 숭배하는 사회 그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던 그녀가 처음으로 ‘내가 이곳에 속해있다’라고 주장하고픈 곳이 생긴 것이다.
그녀는 다이빙 자격증 입문 코스인 오픈워터 4일을 마치고 유자격 다이버가 되었다. 연이어 이틀 과정의 어드밴스드 과정을 형식과 함께하는 중이었다. 은혜는 강사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강습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는 형식의 고집에 그가 주도하는 수업에 보조로 참여했다. 하지만 오픈워터 코스 내내 강습 브리핑을 비롯한 모든 수업 진행에 은혜는 아직 숟가락 하나도 올려놓지 못했다. 은혜는 그녀의 다이빙 실습 파트너 역할, 그 이상의 어떤 기회도 얻지 못했다. 은혜는 아침 6시에 나가는 아침 다이빙을 준비하기 위해 새벽 5시에 나와 다이빙 센터 문을 열고 다이버들의 장비를 모두 챙겨 놓았다. 하루 종일 다이빙을 마치고 나면 사무 일을 보는 형식의 일이 끝날 때까지 꾸벅꾸벅 졸면서도 집에 간다는 말 한마디 못 했다. 자정이 되어야 집에 돌아가 잠시 눈을 붙인 은혜는 다음 날 5시에 여지없이 눈을 뜨고 센터로 출근했다. 도무지 이런 일들이 다이빙을 가르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던 그녀는 은혜와 비슷한 시간에 나와 일을 도왔다. 은혜는 한사코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는 그렇게라도 함께 하면 서로 좀 덜 외롭지 않을까 했다. 지금 그녀가 목격하고 있는 은혜의 모습은 자신의 가까운 미래이기도 했다. ‘너는 특별하지 않아’라는 가스라이팅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놓고, ‘지금, 이거라도, 주시면, 감지덕지하겠나이다’ 하며 까라면 까고, 기라면 기어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만 통하는 일정 기간을 견뎌야 다이빙 강사라는 직업 근처라도 가볼 수 있었다. 아, 도대체 한국이라는 나라는 왜 이리 꿈꾸는 이들에게 가혹한가!
형식은 6일간의 코스 기간 – 은혜의 표현에 따르자면 – 자신의 강습 스타일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바닷속은 금세 지옥으로 변했다. 다이빙을 마치고 뭍으로 올라오면 얄궂고 심드렁한 얼굴로 그녀가 얼마나 다이빙을 못하는지, 얼마나 바닷속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 그리고 은혜가 얼마나 싹수가 노랗고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강사인지에 대해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형식은 쓸데없는 신체 접촉을 많이 했다. 그녀는 그의 말이 듣기 싫어 다이빙이 영원히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바닷속에서 나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저 인간이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리도 넓은 바닷속에서 그녀에게 허락된 건 그로부터 팔 두 마디 정도의 거리뿐이었다. 형식과 함께하는 6일 동안 그녀의 바닷속은 시끄럽고 산만했다. 처음 바닷속에 들어와 느꼈던 침묵과 고요의 아름다움은 온 데 간 데 사라졌고 또다시 뭍에서 끌고 들어온 한 움큼의 걱정과 불안이 그녀에 눌어붙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바닷속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은 더 깊어졌다. 넓고 깊고 무한한 바닷속에서 여전히 한 줌도 안 되는 인간의 자만이 춤추는 걸 보고 있자니 그녀는 오히려 반항심이 생겼다. 그녀는 다이빙을 더 잘하고 싶어졌다.
드디어 어드밴스드 과정 마지막 시간, 오후 다이빙이 끝났다. 그녀는 이제야 왜 유독 이 다이빙 보트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어두웠는지 알게 됐다. 여전히 자기애로 가득한 늠름한 표정의 형식은 그 뒤로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하고 코스가 끝났으니 축하 파티를 하자고 그녀에게 제안했다. “하나 씨를 위한 자리이니 꼭 오세요!” 대답도 듣지 않고 형식은 자리를 떠났고, 그녀는 얼른 숙소로 돌아가 간단히 샤워만 하고 다이빙 센터로 돌아왔다. 여지없이 은혜를 비롯한 다른 신입 강사들이 바닷가에서 고기를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갓 돌 지난 아이를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한국인 여자가 눈에 띄었다. “하나 씨죠? 얘기 많이 들었어요. 오늘 어드밴스드 끝내셨다면서요, 축하해요!” 살가운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 여자는 자신을 ‘윤아 엄마’라고 소개하며, 형식의 아내이자 다이브 센터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빨리빨리’를 외치며 단번에 고기를 굽고 서로 소주잔을 부딪쳤다. 이 먼 곳에서도 삼겹살과 소주 한 잔으로 맺어진 한국인만의 연대는 너무나 끈끈해서 한국인이 아니고는 누구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막이 쳐진 듯했다. 종종 같은 다이브 센터에서 일하는 외국인 강사 친구들이 지나가며 관심을 보이는데도 같은 머리색과 눈동자 색을 가지지 않았다면 가차 없이 배제되었다. 뉘엿뉘엿 느슨하게 지고 있는 태양의 배경이 무색하게 사람들은 재빠르게 취해갔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도 붉은 노을기가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술을 마시라고 권했고, 그녀는 친절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사양했다. “에이, 하나 씨 자격증 딴 거 축하하는 자리인데 웬만하면 받지?” 한 번 두 번, 권유를 넘어 취해가는 사람들은 점점 술기운을 핑계로 강요의 의미가 가득한 술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우~ 이거 왜 이러실까. 제가 술 못 먹는 DNA가 있어요. 한 잔만 먹어도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기절 직전이 돼요.” 그녀는 그동안 단련된 인내심과 너그러움을 끌어모아 성실하게 설명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체질이고 그럼에도 계속 마시다 보면 나아진다는 수많은 전문가의 조언을 평생 들어왔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주량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한사코 한 잔도 안 마시겠다고 사양하는 건 ‘지금 당신과 마시고 싶지 않다’라는 숨은 의미를 품고 있기도 했다. 단지 언제나 그렇듯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뿐.
그녀의 자격증 수료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사람들은 계속 술을 마셨다. 그러다 거나하게 술기가 오른 형식에 누군가 그의 아내인 ‘윤아 엄마’와 처음 어떻게 만났는지 물었다. 가만 보니 그녀는 둘째를 배에 품고 있었다. 그는 거들먹거리며, 그 더운 날씨에 한 팔로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쉴 새 없이 고기를 굽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쟤는 내가 데리고 있던 다이브마스터였는데… 늘 지 꿈이 이런 트로피컬 아일랜드에서 놀고먹고 하는 거라고 했거든. 그런데 나 만나서 팔자 핀 거지.”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윤아 엄마’는 그 말을 듣고 형식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는 순간, 딱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오랫동안 훈련해 온 표정 관리 기술을 잊어버리고는 적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형식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 역시 ‘어디 감히’의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말씀이 좀 지나치시네요. 사람이 옆에 이렇게 듣고 있는데….” 그러자 은혜가 불안한 눈빛을 하고는 그녀의 소매를 잡아끌며 “언니, 하지 말아요” 하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에이, 다 웃자고 하는 얘긴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요? 내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형식은 능글맞게 이죽거리며 말했다. “웃자고 하는 얘기는요, 상대방도 웃어야 하는 거예요.” 그녀는 이렇게 말대꾸하고는, 그의 입을 삼겹살로 막아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다시 바닷속에 처넣어 영영 말을 할 수 없게 하던지. 그러자 이제는 윤아 엄마까지 고기를 굽다 말고 뛰어와 그녀를 말렸다. “아유, 저 괜찮아요, 정말.” 그때 형식과 술잔을 부딪치던 남자들의 일그러진 표정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살면서 마주치지 않으려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 온, 그 표정.
그녀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기자가 남자인 남성 패션지에 다녔다. 인터뷰와 화보 촬영을 나설 때면 선배들은 그녀에게 “하나야, 섹시하게 찍어와!” 하고 외쳤고, 그녀는 촬영장까지 가는 길 내내 ‘섹시하다’에 대해 생각했다. 사회에서 그녀가 배운 ‘섹시’라는 건 남자들의 어떠한 희롱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위험한 선언 같은 거였다. 그래서 그녀는 웬만해선 여자배우나 여자 아이돌을 인터뷰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들의 작업 과정의 고민이나 작품 세계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는 몇 안 되는 여성 아티스트들은 ‘똑똑하고 잘난 여자는 재수 없다’라는 저주와 함께 사라졌다.
그녀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여성성을 지웠다. 직장 상사와 가까운 지인들에게 ‘오빠’ 대신 ‘형’이라는 호칭을 쓰며 ‘제발, 나를 여자로 보지 말아 주세요’라고 강하게 어필했다. 남자 대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우정과 연민, 공감, 의리, 인류애 같은 것에 더 기댔다. 친구들이 그녀가 연애를 잘 못하는 이유를 ‘술을 먹지 않아서’라 꼽을 정도로 술을 먹지 않는 건 그녀의 마지막 방어 수단이었다. 술이 약한 그녀가 만에 하나 술자리에서 해코지라도 당하게 되면 모두 술에 취한 그녀의 잘못이 될까 봐, 두려워서였다. 한국 사회는 유난히 술에 취한 가해자에 관대하고 술에 취한 피해자에겐 끔찍하게 잔인했다.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걸 그렇게 좋아하던 그녀가 더 이상 바나 클럽에 가지 않는 이유도 자신이 거기 있는 이유는 누군가의 눈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라는 게 아니라는 걸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피곤함 때문이었다. 밤길을 걸을 때 누군가 따라붙어 추근대면 “남자 친구 있어요”라고 말할 때 있지도 않은 가상의 남자를 데려와야 떨어져 나가는 남자들을 보며 그녀는 절망했다.
가만 보니 형식은 자신의 우월함을 끔찍하게 믿고, 그걸 내세워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여자들만 골라 괴롭히며 자기만족의 희열을 찾고 있는 가엽고 안쓰러운 남자였다.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터무니없는 믿음과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신념은 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왜 이 자리에 있는 다른 남자들은 형식의 말에 맞장구치며 그를 더 부추기는 걸까. 왜 남자들은 서로를 마음껏 경계하고, 경쟁하고, 유대하는데 그들만의 세상에 여자의 이름은, 여자의 목소리는, 여자의 얼굴은 사라져야만 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굿 걸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난 일주일 내내 자신을 괴롭히고 희롱하고 조롱한 저 남자에게 뺨 한 대를 날리지 못하고 입술과 손만 부들부들 떨며 서 있다. 그녀 역시 굳이 형식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자신의 단점을 수두룩하게 나열하는 데 능숙하지만 정작 자신의 좋은 점은 단 하나도 꼽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도 그녀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막상 넘어지면 일어서는 방법을 몰라 어떻게든 안 넘어지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안간힘만 쓸 뿐이다. 그녀는 또다시 수렁에 빠진 기분이었다. 아이씨.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다. 고분고분 말 잘 듣고, 싫은 거 억지로 참고,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은 척하는 건 더 이상 못 하겠다. 세상에 단 두 가지 사실이 있다고 치자. 모든 사람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과 그녀가 사실임을 아는 것. 만약 이 두 지식이 서로 충돌한다면, 과연 그중 옳은 게 어느 쪽일까?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형식을 노려보며 말했다. “야, 이 창피한 새끼야. 여기 모인 사람들 어차피 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에서 하던 짓거리 지긋지긋해서 온 건데, 도대체 왜 여기 와서까지 제 버릇 못 버리고 ‘의자왕과 삼천궁녀’ 찍으면서 유치한 대장 놀이를 하고 있어? 내가 너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던 바다가, 다이빙이 싫어질 판이야. 넌 그만큼 끔찍한 놈이야.” 그리고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검푸른 바닷가를 혼자서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하도 주먹을 세게 쥐어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하얗게 박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차올랐다. ‘굿 걸’이 되지 못했다는 학습된 죄책감과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 섞인 쓰리고 달콤한 감정이었다. ‘나의 바닷속만은 절대 양보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조용히 혼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