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에서 사는 삶을 꿈꾼 지 얼마 안 돼 표류한 그녀는 몇 날 며칠을 빈둥거렸다. 은혜에게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녀는 괜찮지 않았다. 또다시 자신은 이 섬에서 거절당하고 부정당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무도 묻지 않는 모든 책임과 추궁을 스스로 오롯이 담아내며 자책하는 아주 오래도록 학습된 습관에서 그녀는 여전히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뜨고 발코니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짐을 몇 번이고 다시 쌀뻔한 충동을 억누르고는 갈 곳 잃은 걸음을 바닷가로 옮겼다.
다이버들이 모두 바닷속으로 떠난 늦은 아침의 해변은 한적하고 고요했다. 유러피안 배낭여행자들은 해변에 늘어선 야자수 아래 아무렇게나 누워 옷을 벗고 선탠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 역시 해변을 걷다 한적하다 못해 아무도 없는 나무 그늘 속에 숨어 자리를 잡고는 언제나 그렇듯 꽁꽁 싸맨 몸을 드러내지 않고 모래사장 위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녀를 제외한 해변의 모든 사람이, 어린아이들부터 젊은 남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비키니나 보드쇼츠만 입고 자연스럽게 해변을 돌아다녔다. 다양한 체격과 체형의 백인들이 거의 홀딱 벗고 다녔지만, 그녀가 아주 어릴 적부터 봐오던 TV 속 백인들의 근육질과 풍만한 가슴, 콜라병 몸매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해변의 사람들이 모두 원래 살던 도시와 직장으로 돌아가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하이힐을 신고, 명품백을 들고는 제 속살을 숨기며 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갑자기 왜 남자는 가슴을 드러내도 괜찮고 여자는 가슴을 가려야 하는지, 왜 남자는 보드쇼츠만 입어도 되고 여자는 비키니나 원피스 수영복으로 위아래를 다 가려야 하는지, 평생 품어본 적 없던 질문을 품었다.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한참 동안 자비 없는 햇빛에 달궈진 모래 열기로 비 오듯 땀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혼자서 온몸을 꽁꽁 싸매고 고행자처럼 버텼다.
햇빛이 귀한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해만 나면 어디서든 훌렁훌렁 옷을 벗고 잘 드러눕는다는 건 TV나 인터넷으로 보고 들었지만, 태양의 섬에서 그녀가 직접 목격한 그들은 온종일을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에 비해 그녀가 버틸 수 있는 건 길어야 한 시간 정도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낸다는 죄책감과 불안감은 충분히 쉴 자격이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자기애를 훨씬 능가했다. 그녀는 서둘러 일어나 또다시 갈 곳 없이 걸었다.
그녀는 땡모반을 하나 들고 빨대로 쪽쪽 빨며 해변을 따라 총총 걸었다. 그녀는 아무 때나 일어나 바닷가에 나가 사람들을 구경하고 엉뚱한 상상을 하다가 몸이 근질거리면 싸이리 비치 첫 번째 과일주스 노점에서 설탕 시럽이 그득한 땡모반을 사 들고 해변가에 늘어선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구경하며 길이 끝날 때까지 남쪽으로 걷는다. 그녀는 사실 형식의 다이빙 센터를 박차고 나온 이후 며칠째 이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녀가 이제야 겨우 찾은, 그리고 잠깐 맛본 바닷속의 평온이 지옥으로 바뀐 채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방법 또한 마땅치 않았다. 한국인 강사에 한국어로 받는 다이빙 수업이 아니고는 다른 방법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내리 10년 동안 쉬지 않고 영어를 배웠으나 정작 이 섬에서 외국인들과 소통할 때 그녀가 한 영어는 미드에서 더 많이 배웠다. 쓸데없이 신중하고 실패를 경멸하는 그녀는 애초에 시도조차 꿈꾸지 않은 일이다. 영어로 다이빙을 배운다는 건.
다이빙 센터마다 걸음을 멈추고 애써 무심한 듯 땡모반을 한 모금 삼킬 때마다 카운터에 있는 외국인들이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좋은 아침이야. 다이빙하고 싶니?” 그럴 때마다 그녀는 거울을 보고 수십 번 연습한 말들을 까맣게 잊고는 어색한 미소로 다시 입술을 빨대에 갖다 대고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남쪽으로 난 길이 끝날 무렵 어제는 안 보였던 해변가 다이빙 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낮고 둥그런 커피 테이블에 60대는 돼 보이는 백인 할아버지가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그의 뒤엔 다이빙이라는 팻말이 바람에 천천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 걸음을 멈췄고 할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마치 그녀를 오랫동안 알고 있던 사람처럼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아가씨! 좋은 아침이야. 별일 없지?” 그녀는 이번엔 잘근잘근 씹던 빨대에서 입술을 떼고 답했다. “안녕! 나… 다이빙을 하고 싶은데, 뭐 좀 물어봐도 될까?” 그러자 그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일어나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럼, 물론이지. 내 이름은 케빈이야. 여기 앉을래?” 그녀는 ‘케빈…’이라고 그의 이름을 되뇌며 그녀가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와 미드, 영드에서 만났던 케빈을 떠올렸다. “내 이름은 하나야, 하나 초.” 그녀는 이제 외국인을 만나면 어차피 안 될 발음에 더는 힘을 빼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케빈을 마주 보고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영어로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한국어 문장을 영어로 번역해 입으로 출력하는 과정 자체가 더디고 느려졌다. 그녀가 다이빙 센터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그녀가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치 면접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다이빙이 너무 좋아서… 이 섬에서 오픈워터와 어드밴스드 과정까지 했는데… 사실 다이빙 강사가 되고 싶거든….” 쫀득해진 마음에 그녀가 머릿속에 떠다니는 영어 단어의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더듬거릴 때마다 케빈은 그녀의 문장을 맺는 걸 도왔다. “그런데 내가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고….” 그녀는 어차피 불가능할 거란 걸 인정하고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고민을 이실직고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며칠째 같은 거리를 서성이며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또 다이빙은 너무 하고 싶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케빈 앞에선 마음이 좀 편했다. 그러자 케빈은 눈에 띄게 훨씬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그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네 영어가 어때서? 나는 너랑 대화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네 영어 실력은 완벽해.” 그녀는 케빈이 최대한 예의를 지키려는 영국 사람이라는 걸 한눈에 눈치챘다. 그리고 그의 앞에 놓인 검은 티백과 우유를 섞어 뽀얀 빛깔과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머그잔이 틀림없는 증거였다.
“그리고… 내가… 다이빙 강사 과정을 시작하기엔… 나이가 좀 많은 것… 같아.” 그리고 그녀는 시선을 깔고 머그잔을 바라봤다. 그러자 케빈이 “허허허” 웃으며 아주 부드럽고 천천히 말했다. “나는 여기서 다이브마스터로 일하고 있어. 다이빙 시작한 지 한 3년쯤 됐나? 하나, 너 내가 몇 살인지 아니? 쉰넷이야, 쉰넷.”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괜히 케빈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는 가만히 숨을 고르고 말했다. “이 작은 섬에 70개가 넘는 다이빙 센터가 있어. 하나 넌 어딜 가든 환영받을 거라고 확신해. 음… 이러면 어떨까?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좋아. 일단 우리와 함께 다이빙을 한 번 해보고 시간을 충분히 갖고 생각해 보는 거야.”
갑자기 센터가 아침 다이빙에서 돌아온 다이버들로 왁자지껄해졌다. 하나같이 햇빛에 벌겋게 그을린 마스크 탠에 상기된 얼굴로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원초적인 미소를 품은 사람들이었다. 며칠 전까지 그녀가 함께했던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바닷속에서마저 자신의 자아와 소유권을 주장하던 사람들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였다. 갑자기 그녀는 같은 바닷속에 다녀온 그들과 이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녀는 케빈을 따라 오후 다이빙 보트에 올랐다. 케빈은 가장 먼저 보트를 운전하는 태국인 캡틴 피 리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리는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반기며 “까올리! 까올리!”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까올리’는 태국어로 한국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녀는 또다시 바닷속에 들어간다는 설렘 반, 또다시 바닷속이 지옥 같은 경험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긴장감 반으로 속이 울렁거렸다.
케빈은 그녀에게 말했다. “다이브 사이트까지 우리는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까 아주 천~천히 준비하자.” 보트에 오르자마자 전투 준비하듯 다이빙 장비를 빠르게 장착하고 강사인 형식의 다이빙 사전 브리핑을 듣기 위해 대기해야 했던 이전의 경험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케빈은 2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로 그녀를 안내하며 천천히 올라갈 것을 당부했다. 2층 갑판으로 올라가자, 햇빛에 반짝이는 사파이어 빛 바다가 그녀를 반겼다. 은반 위를 미끄러지듯 보트가 움직이면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다이빙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자꾸 아래층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보트 2층의 가장자리에 둘린 의자에 앉은 케빈은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녀가 다가가 앉자, 그는 멀찍이 보이는 하얗고 작은 등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우리는 섬 북쪽을 부드럽게 돌아가고 있어. 저 등대가 보이면 기억해. 너무 아름답지 않니?” 그랬다. 아름다웠다. 포실한 작은 구름 몇 점이 떠다니는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봉긋한 언덕이 솟아있고 사람 하나가 들어갈까 말까 한 아주 작고 하얀 등대가 서 있었다. 그 등대로 올라가는 길이 있기나 할지 생각마저 드는, 이 외딴섬에서도 외진 곳이었다.
섬의 서쪽 해변에서 출발한 복숭앗빛 다이빙 보트는 그렇게 천천히 섬 북쪽의 등대를 돌아 동쪽 해안의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잦은 아오륵에 도착했다. 다이브 사이트에 도착하고서야 케빈은 그녀와 함께 천천히 내려가 다이빙 장비를 탱크에 연결했다. 아직 초보 다이버인 그녀가 실수하지 않도록 케빈은 한 스텝씩 먼저 보여주며 그녀가 따라오는 걸 티 내지 않고 지켜봤다. 그리고 케빈은 다이빙 전 브리핑에서 “우리의 이번 다이빙 목표는 최대한 편안하고 평화로운 다이빙을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케빈은 입수한 뒤 하강 지점으로 수면에서 이동할 때도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그녀의 긴장을 풀어줬다. 그리고 둘은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케빈이 살짝 앞장서고 그녀가 뒤따랐지만 자연스럽게 둘은 나란히 바닷속을 유영했다. 케빈은 가끔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오케이 수신호를 보내고 그녀 역시 같은 수신호를 그에게 보냈다. 바닷속에서 그 둘의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형식과 코스를 하는 동안 하도 긴장해 어깨와 목에 있는 힘껏 힘을 주며 긴장한 채로 다이빙했다. 코스를 보조하는 강사 은혜의 역할이 바로 그녀가 수면으로 뜨지 않게 단속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탱크의 공기와 연결해 수중에서 다이버의 부력을 조절하는 BCD(부력 조절 장치)를 제대로 써 볼 기회도 얻지 못했다. 그녀는 케빈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세하게 부력을 조절하고 호흡을 깊고 천천히 하며 다이빙 코스 교재에서 머리로만 배웠던 것들을 이것저것 시도해 봤다. 그러자 케빈은 이를 알아차리고 그녀가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이빙 스킬들을 연습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모래로 이뤄진 지형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그녀는 가끔 실수했고 당황해 허둥지둥거렸다. 그럴 때마다 케빈은 그녀를 멈추고, 천천히 깊게 호흡하라는 수신호를 준 뒤 충분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녀가 하려던 걸 다시 천천히 재현했고 그녀는 그를 따라 연습했다.
그녀는 사람이 바닷속에서 웃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케빈의 눈은 마스크 안에서도 선명한 반달처럼 웃고 있었다. 그녀의 미숙함을 탓하지 않고, 천천히 기다려 주는 따뜻한 눈빛과 케빈이라는 사람의 마음이 바닷속에서도 느껴졌다. 태어나 처음 바닷속에 들어간 순간, 그녀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바닷속에서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매료되고 있었다. 이런 다이빙이라면 평생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면으로의 상승마저도 천천히, 느릿느릿, 편안했다. 케빈은 수면으로 올라온 후에도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손가락을 뻗어 하늘을 가리키고는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에 완전히 드러누웠다. 그녀도 그를 따라 물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공기를 채운 BCD가 수면에서 그녀의 몸을 안전하게 떠받치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지금까지 다이빙하면서 단 한 순간도 몸에 힘을 빼본 적이 없었다. 그녀도 알게 모르게 몸 구석구석엔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타인과 세상에 대한 불신의 긴장감이 언제나 스며들어 있었다. 그래서 다이빙만 끝나면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녀는 크게 한번 숨을 천천히 깊게 들이쉬고는 더 깊고 천천히 숨을 내쉬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힘을 뺐다. ‘나는 절대 가라앉지 않아.’ 그러자 살랑거리는 바닷물결에 그녀의 몸이 연꽃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아득하고 거대하고 자애로운 우주가 그녀를 떠받치고 있었다. 얼른 보트로 올라가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술이나 마시자며 닦달하는 사람도, 누가 누구보다 잘하고 누가 누구보다 못하다며 줄 세우는 사람도 없었다. 바다는 여전히 죄가 없다. 거기에 뛰어드는 인간들의 죄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