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하나 Sep 26. 2024

11. 도망쳐


 그녀는 당당한 태극기 앞에 섰다. 이 작은 국기의 우아하고도 호연한 자태에 압도될 지경이었다. 태국을 찾는 한국인이 그리 많다는데, 이 섬에 들어온 지 2주가 지났는데도 그녀는 단 한 번도 한국인과 마주친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이 섬에 들어왔다 나가는 데에만 왕복 사나흘이 걸리니 휴가가 길어봐야 일주일뿐인 한국인 관광객이 엄두를 낼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래도 분명 한국인이 있긴 할 텐데, 다들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 좋았다. 비로소 한국에서 벗어났다는 게 실감이 됐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제 발로 태극기 앞에 서 있다.      


 “다이빙 배우고 싶어서 왔는데요.” 태극기가 붙어있는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를 맞이한 건 햇빛에 잔뜩 그을린 흑갈색 피부에 유난히 하얀 이가 돋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앳된 얼굴의 한국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잘 오셨어요. 여기 앉아서 잠시 기다리실래요? 우리 선생님이 이제 막 다이빙을 마치고 들어와서요. 마무리하고 곧 오실 거예요.” 그녀는 한구석에 있는 소파에 앉아 이곳저곳 두리번거렸다. 입구의 반대편 벽은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바다를 그대로 한눈에 볼 수 있었고, 이제 막 바다에서 돌아온 다이버들이 분주하게 장비를 씻어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에메랄드빛 잔잔한 바다가 햇빛에 반짝이며 수천 개의 빛으로 흩어져 사람들의 온몸에 달라붙었다. 불과 십여 분 전까지만 해도 바닷속을 유영하고 있었을 그들이 이제 온전히 자신의 폐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고 있다. 또다시 바닷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일렁이던 그녀는 시선을 돌려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로 옮겼다. 그런데 뭐가 이상했다. 생애 첫 바닷속 경험이었던 지난번 다이빙 보트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다른,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때였다. 역시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어깨 정도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뒤로 묶은, 호리호리하고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언가 잔뜩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책상에 앉아 있던 여자를 있는 힘껏 노려보며 “너, 내가 해놓으라는 거 왜 안 해놨어?” 하고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안쓰러울 정도로 경직된 얼굴로 천천히 일어나 으레 있었던 일이라는 듯 시선을 내리깔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저기서 말을 보태면 저 남자의 화를 돋우는 거라는 걸 저 어린 여자애는 너무 잘 아는구나….’ 그녀는 본능적으로, 아니 자신의 경험으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당장 일어나 이곳을 박차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여자가 그녀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여기… 다이빙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셔서 기다리고 계셨어요.” 젠장, 늦었다.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럼 그렇지. 남자는 자신의 소개도, 왜 자신이 다짜고짜 들어와 신경질을 냈는지, 그걸 영문도 모르고 지켜봐야 했던 그녀에게 미안하긴 한 건지 아닌지 등의 설명은 모두 건너뛰고 그녀에게 나이부터 물었다. “서른넷이요.” 그녀 역시 그런 상황에 익숙하다는 듯 건조하게 답했다. “아… 다이빙하기에 여자치곤 좀 늦은 나이네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엔 벤이 반복해 말했던 ‘하나 너, X.나.게.어.려’라는 문장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고, ‘여자치곤’이라는 부분에서 잠시 한국인지 태국인지 시공간이 어그러지는 인지부조화의 상태에 빠져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래 봬도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장기간 트레이닝을 받은 여자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와 온건한 말투를 장착하고 호흡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그러게요. 제가 그동안 열심히 일만 하고 살다가 며칠 전 체험 다이빙을 하게 됐는데 너무 좋아서요. 이왕이면 한국어로 제대로 잘 배우고 싶어서 실력 좋다는 선생님을 찾아왔죠. 그런데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제 이름은 조하나라고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서 손을 내미는 그녀에게 그제야 남자는 날카로운 눈빛을 풀어헤치고 안도하는 얼굴을 내보였다. “김형식입니다.” 그는 그녀가 내민 손을 잡으며 말했다.   

   

 형식과 그녀는 작은 책상 앞에 앉아 다이빙 자격증 코스에 관해 이야기했다. 일단 유자격 다이버 코스의 기본인 오픈워터 코스를 마쳐야 독립적으로 다이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후 다이버의 수중 제한 수심을 더 늘리고 다양한 테마 다이빙을 할 수 있는 어드밴스드 코스와 수중 구조에 중점을 둔 레스큐 코스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까지 마치고 나면 그다음으로 프로페셔널 다이버 자격인 다이브마스터와 강사 코스로 갈 수 있다고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한꺼번에 지불하면 가격을 훨씬 싸게 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일단 그녀는 오픈워터와 어드밴스드, 레스큐 코스까지만 진행해 보기로 했다. 그래봐야 2주 정도이니 그녀가 형식을 얼마나 인내할 수 있는지 시험 삼아 볼 수 있는 기간이었다. 이 섬에서 다른 한국인 강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이 섬에서 지난 몇 주간 만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수많은 외국인과 소통하는데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했으면서도 팝송과 미드로 배운 게 전부인 자신의 영어 실력을 과소평가했다. 그녀는 기껏 다이빙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결심해 놓고도 여전히, 그리고 또다시 의기소침해졌다. 한국어로 다이빙을 배워야 한다고 고집하기 시작하자 벌써 이만큼이나 그녀의 세계는 다시 좁고 살벌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목표는 하나였다. 다이빙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사는 것. 그녀가 이제라도 알아본 자신의 꿈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데 형식으로부터 받은 남성우월주의로 물든 강압적인 첫인상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한 건 잔뜩 겁에 질린 동시에 모든 걸 체념한 듯한 여자의 표정이었다.      


 “내일 아침에 봬요.” 형식이 서둘러 그녀의 서류에 사인하고 강습비 결제를 마치고 스케줄을 정한 후 오후 다이빙을 위해 다시 보트에 오르자 작은 태극기가 붙은 바닷가 아담한 사무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이 그림 같은 풍경을 매일 같이 바라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슬픈 표정을 품을 수 있는지, 차오른 호기심으로 그녀는 조심히 말을 걸었다. “저… 이름이 뭐예요?” 그러자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바다로 나가는 다이버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앳된 얼굴의 여자가 말했다. “은혜예요. 김은혜. 좀 전엔 많이 놀라셨죠? 우리 선생님이 항상 그러는 건 아닌데… 제가 뭘 좀 까먹고 안 해놔서. 죄송해요.”      


 “죄송하다는 말, 그렇게 아무에게나, 자주 하지 말아요.” 


 그 순간, 은혜는 푹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고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은혜 씨가 뭘 잘못했는진 모르겠지만… 나한테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나한테 저 사람은 ‘선생’이 아니고 ‘강사’일 뿐이에요.” 그러면서 그녀는 유리 벽 너머 저 멀리, 잔뜩 찌푸린 얼굴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손가락질하며 소리 지르고 있는 형식에 눈을 돌렸다. 부드럽게 넘실거리는 바다 위 롱테일 보트 위에 서서 세상을 호령하는 듯 기세등등한 모습이 기괴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오랫동안 업으로 삼아왔던 그녀에겐 언어의 의미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선생’은 오랜 시간을 두고 함께 하며 다양한 의미에서 두루 배울만한 점을 갖춘 사람을 의미했다. ‘선생’과 ‘강사’의 미세한 뉘앙스의 차이는 적어도 그녀에겐 큰 의미였고, 적어도 형식은 ‘선생’이라 불릴 만한 사람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때 은혜가 애처로운 어깨를 흐느끼며 말했다. “그러네요… 휴학하고 여기 와서 다이빙하다 너무 재밌어서 얼마 전에 강사까지 됐거든요.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선생님이 기회를 안 주네요. 뭘 할 때마다 혼나기만 하고… 여기 온 지 석 달이 다 되어가는데 저는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에요.” 그녀처럼 은혜도 바다가 좋아서, 간절히 바닷속에 있고 싶어서 다이빙을 시작했지만 매일 같이 이른 새벽부터 사무실 문을 열고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며 ‘선생님’ 아이들을 돌본다. 자정이 되어야 집에 가는 ‘선생님’이 사무실을 떠나고 나서야 문을 잠그고 자신 역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은혜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잠시 멍해졌다. 물론 보수는 없었다. “이런 얘기, 우리 선생님께 절대로 하시면 안 돼요. 전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래도 선생님이 언니한텐 함부로 못 할 거예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좀 어려워하더라고요.” 마지막까지 단속하는 은혜를 뒤로 하고 그녀는 숙소로 돌아와 오랜만에 ‘열정페이’라는 단어를 상기했다.      


 그녀가 기자라곤 달랑 둘 뿐인 작은 독립 잡지에서 기자도 많고 돈도 잘 버는 대형 상업 패션지로 자리를 옮겼을 때 패션팀과 피처팀, 각 팀에는 모두 ‘어시(스턴트)’라 부르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했거나 휴학한, 잡지사 에디터가 되고 싶다는 꿈으로 가득한 아름답고 빛나는 청춘이었다. 그들이 ‘선배’라고 부르는 정기자들이 취재를 기획할 때부터 기사를 마무리할 때까지 말 그대로 그들의 수족이 되어 가장 하기 싫고, 귀찮고, 또는 티가 안 나는 일들을 도맡아 했다. 하루 24시간, 365일을 대기 중인 ‘해피콜’처럼 살며 한 달에 차비나 하라고 주는 40만 원에 그들은 허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 ‘어시’ 생활이라는 건 한 달이 될지 일 년이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공개 채용을 좀처럼 하지 않는 잡지계의 특성상 정기자들 중 누군가 그만둬 자리를 비우면 – 그런 일은 웬만하면 일어나지 않았지만 – 일 순위 채용 후보가 가장 오래된 ‘어시’였다. 그녀는 잡지사에 있는 동안 ‘어시’ 생활만 3년을 넘게 한 친구가 정기자가 되는 걸 보며 그것이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일로 느껴지긴커녕 온 사회가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새로운 노예제도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녀가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고 정의로워서가 아니었다. ‘어시’는 꿈도 못 꾸는 영세 잡지사에서 인력이 없어 곧장 정기자 타이틀을 달고 맨땅에 헤딩하듯 스스로 일을 배우고는, 끝내 명성을 얻어 대형 잡지사로 스카우트된 그녀에겐 그들의 젊음과 열정이 너무 아까웠다. 한국 사회는 유난히 젊은이들을 만만하게 대했다. 당장 손만 뻗으면 닿을 듯 그들 앞에서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꿈을 흔들어 댔지만, 막상 뛰어가 붙들면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일 뿐이었다.     

 

 “선배, 뭐든지 시킬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 새로 온 어시가 눈빛을 반짝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그녀에게 어시가 다시 말했다. “선배, 인터뷰 다녀오신 거, 녹취 풀어드릴까요?” 그녀는 어시를 회의실로 불러 앉혔다. “이름이 뭐예요? 그냥 ‘어시’라고 부르기 싫어서.” 그녀는 세상 누구든, 자신의 이름으로 의미 있게 불려야 한다는 믿음을 그때부터 가지기 시작했다. “제 이름은 예진입니다. 이예진. 선배 인터뷰 읽으면서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말 편하게 하세요.” 예진의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에 긴장과 설렘, 그녀에 대한 맹목적인 경외감이 묻어났다. 그녀는 늘 이 모든 게 어색하고 불편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우스꽝스럽게 누군가를 흉내 내고 있는 자신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시게 되어’라니? 왜 그렇게 스스로 낮춰? 나이 좀 더 먹고 일 좀 더 일찍 시작한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 나는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 너에게도 무언가를 시킬 일은 없을 거야. 내가 인터뷰하고 와도 녹음 파일을 다시 들으면서 글로 옮기는 건 내가 할 일이야. 그 인터뷰 자리에서 오고 간 대화의 맥락과 녹음엔 담기지 않은 표정, 분위기까지 모두 아는 건 나뿐이니까. 그리고 그건 네가 할 일이 되어선 안 돼. 이놈의 시스템이 얼마나 미쳐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정말 기자가 되고 싶다면 이렇게 사무실에서 잡일이나 하며 ‘네 꿈에 도움이 될 거’라는 사람들의 주문에 세뇌당하면서 그 아까운 청춘에 곰팡이 피우지 말고, 네가 직접 밖에 나가 취재를 해. 진짜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거, 나쁜 거, 미친 거, 우스꽝스러운 거, 모두 직접 경험해 봐. 말도 안 되는 글도 써보고, 욕도 먹어보고, 실수도 해보고, 넘어져도 보고, 일어서도 보고. 네가 직접 쓴 기사를 보여주고 조언을 구한다면 나는 기꺼이 도와줄 수 있어. 하지만 네가 내 허드렛일을 돕는다고 해서 나아질 건 아무것도 없어. 나만 버릇없고 게을러질 뿐.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따라 하지 말란 말이야.” 예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럼, 저… 선배,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도망쳐.” 


 어디에도 박히거나 자리 잡지 않고 아주 작게 일렁이는 바람에도 여기저기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가볍고 건조한 말투로 그녀는 말했다. 예진은 다음 날 출근하지 않았고, 그 자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또 다른 어시로 채워졌다. 아무도 예진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가 잡지계의 어시를 이용하고 착취하는 고질적인 관행에 대해 인터넷에 글을 올렸고 수많은 피해자가 나섰다. ‘열정페이’라는 타이틀로 온 사회가 들끓었다. 알고 보니 잡지 판만 그런 게 아니었다. 패션계, 사진계, 방송계 등 모든 분야에서 앞다퉈 내부고발과 폭로가 터져 나왔다. 그때 ‘어시’라는 시스템의 관행을 암행어사 마패처럼 휘두르며 권력을 즐기던 잡지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어시들을 모두 잘라버렸다. 그거라도 부여잡으며 희망을 품었던 어시들은 내부고발자를 색출하려는 마녀사냥을 떠났고, 대형 잡지사 대표와 편집장은 그런 저급한 일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며 커튼 뒤에서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그들끼리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 걸 구경했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일제히 침묵했다. 시간이 지나 세상에서 이 일이 잊히자 새로운 세대의 ‘어시’가 또다시 등장해 ‘네 꿈을 이뤄줄게’라는 환상에 조련당하며 자신의 젊음을 기꺼이 희생했다. 결국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도망쳐.” 


 그녀는 예진에게 했던 말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라는 걸 내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여기, 이 섬에 있다. 그녀는 이제 은혜에게 같은 말을 해줄 작정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