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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거울 속의 나

1부. 내 방 안의 작은 우주, 고독과 사유의 공간

by 조하나


매일 아침, 우리는 거울 앞에 서는 익숙한 의식을 치릅니다. 그 차갑고 평평한 유리 표면에는 분명 어제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떠오르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고개를 듭니다. 이 이미지는 과연 얼마만큼의 ‘나’를 담고 있을까? 단순한 물리적 반사를 넘어, 거울은 우리 자신과의 내밀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무대이자, 동시에 타인의 시선, 사회의 기대, 그리고 내면의 욕망이 교차하는 복잡한 프리즘은 아닐까요? 그 매끄러운 면 위에는 우리가 보고 싶은 나, 보여주고 싶은 나,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까지도 어른거립니다. 이 일상적인 거울이라는 액자 속에 담긴 자아와 정체성의 깊은 풍경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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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타자의 시선’이 우리를 하나의 대상이나 이미지로 규정짓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고 통찰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그의 의식 속에서 특정 모습으로 정의되고, 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틀처럼 나의 행동과 자기 인식을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타인의 시선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위해 쓰는 가면, 즉 ‘페르소나’를 형성하는 데 깊이 관여합니다. 직장에서의 유능한 모습, 친구들 사이에서의 유쾌한 모습 등은 필요한 사회적 역할이지만, 이 페르소나가 진정한 자기 자신과 너무 멀어질 때, 우리는 마치 연기를 하는 듯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영화 <트루먼 쇼>는 극단적이지만, 한 개인의 삶 전체가 타인의 시선을 위해 만들어지고 통제될 때, 개인의 자아와 진실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트루먼이 자신이 살던 세계가 거대한 세트임을 깨닫는 과정은,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이는 사회적 시선과 기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타인의 시선과 내면의 자아 사이의 긴장은 종종 우리의 관심을 ‘보여지는 모습’으로 쏠리게 하여 ‘외모’에 대한 집착을 낳기도 합니다. 거울은 끊임없이 이상적인 이미지와 자신을 비교하는 심판대가 되고, 미디어가 제시하는 획일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은 그 압박을 가중시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이러한 외면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진실 사이의 괴리를 탐구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하는 도리안의 초상화만이 그의 모든 죄악과 타락의 흔적을 짊어지는 이야기는, 외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어떻게 내면을 파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진정한 자아는 피상적인 모습 너머에 있음을 섬뜩하게 경고합니다.


반면,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는 평생 자신을 괴롭혔던 육체의 고통과 정체성의 고민을 거울을 통해 마주하며 수많은 자화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녀에게 거울은 단순한 반사체가 아니라, 자신의 상처와 불안, 그리고 불굴의 의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치열한 자기 성찰의 도구였습니다. 칼로의 자화상들은 외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넘어, 자신만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예술을 통해 정체성을 구축해 나간 강인한 여정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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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에는 사회가 부여하는 ‘성 역할’이라는 보이지 않는 틀 또한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그의 저서 <제2의 성>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역설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여성성이나 남성성이 실은 생물학적 필연이기보다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 성 역할 고정관념에 대해 비판적으로 질문하게 만듭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1980년대 영국의 가난한 탄광촌을 배경으로,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 빌리가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과 가족의 반대에 맞서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립니다. 빌리가 거울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들은, 사회가 정해놓은 틀을 깨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성별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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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거울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습니다. ‘너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번 찾아지고 영원히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새롭게 써내려 가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타인의 시선, 사회적 기대, 내면의 목소리들이 교차하는 거울 앞에서, 우리는 때로 흔들리고 갈등하지만, 바로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거울에 비친 피상적인 모습에 갇히거나 타인이 만들어 준 프레임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재료 삼아 ‘나다운 나’를 창조해 나가는 용기와 의지입니다. 이는 마치 예술가가 빈 캔버스에 자신만의 세계를 그리듯, 우리 삶이라는 작품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타인의 다양한 모습을 그들의 고유한 작품으로 존중할 때, 비로소 내 거울 속의 나 또한 더 자유롭고 진실하게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일상의 거울 앞에 서는 매 순간이, 우리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철학적 성찰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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