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왕의 길(Royal walk)을 걷는다. 이름이 매력적이다. 노예의 길이나 머슴의 길이 아닌. 왕의 길이라니. 노예가 걷던 길이나 머슴이 걷던 길이라면 매력이 별로. 누가 걷겠는가? 왕의 길하면 그럴듯한데, 이것이 왕이 걷던 길이라는 건지, 왕이 걷는 길이란 건지. 아리송하지만. 대충 추측하면 이 길을 걸어 언덕에 오르면 그 멋진 아이거(3,967m), 묀히(4,110), 융프라우(4,158m)를 볼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몇 군데 역을 거쳤는지?
세 개의 봉우리. 설산. 눈으로 꽉꽉 덮인. 구름과 눈보라, 혹은 비바람으로 쉽게 볼 수 없는 곳. 왕의 길을 가는 길은 험난했다. 아마, 태어나서 이렇게 많이 기차나 산악열차를 바꿔타본 적이 있던가. 그러니 스위스지만 말이다. 가는 곳과 위치에 따라 열차 색깔과 모양이 가지가지다. 가지가지한다고 하면 별로 좋지 않은 의미지만, 가지가지하는 것처럼 이차도 타보고 저차도 타보고 재미있다.
어디서든 예쁜 야생화/슈타우프바흐 폭포
숙소가 그린델발트(Grindelwald)에 있으니, 그곳에서 걸어서 갔어도 갔을 것 같은데, 산을 하나 너머야 했으니 시간이 조금(?) 걸렸겠지? 녹초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얼마짜리였더라? 패스를 샀으니 패스를 써먹어야 하는데, 처음 도착한 역은 츠바일뤼치넨(Zweilutschinen) 역이다. 도착했으니 내렸다. 내려서 환승을 했다. 가야 할 곳은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이다. 거기서 타서 이번엔 뮈렌(Murren)으로 향했다.
뮈렌 시내
가다 보니 오른편에 엄청난 높이의 폭포가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297m였다. 이름이 슈타우프바흐 폭포인데, 그 앞에 놓인 성당이 예쁘다. 알프스라 성당도 예쁘군! 사람들이 경치에 빠져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러고 나서 뮈렌에 도착했다. 당연히 내려서 여기저기 둘러봤다. 마을 인구가 450명이라는데, 이곳 높이는 1,650m다. 열차 터미널 매표소에서 옆에 보이는 절벽이 아이거냐고 했더니 아니란다. 한참을 더 가란다.
아이거와 묀히
여긴 왜 왔지? 마을이 마치 강원도 산간마을 아님 오지마을 같은데, 이곳에서 숙박 가능한 인원이 2,000명이라고 하니, 이곳은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 등산객들 전초 기지 같은 곳이다. 더 가라고 하니, 다시 열차를 탔다. 그런데, 반대 방향이다. 그럼 원점인데. 맞다. 라우터브루넨. 여기서 뱅거날프 산악열차를 타고 뱅겐(Wengen)에서 내렸다. 그런데, 여기가 종점이 아니다.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맨리헨(Mannlichen)까지 가야 한다. 아후, 복잡해라. 암튼, 뱅겐에서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급경사를 슈슝하고 올라가는데, 케이블카 안에 출입 금지 구역이 있다.
묀히와 융프라우
뭐지? 이곳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케이블카 지붕을 타고 전망을 볼 수 있다. 오호! 그런데 미리 돈을 더 내고 예약을 해야 한다. 몇몇 일행이 잘났다는 듯이 그곳을 오른다. 꼴값 떨긴! 케이블 카 지붕이나 안이나 무슨 차이? 날씨가 비나 바람 불어봐라! 암튼 그래서 도착한 맨리헨. 맨리첸? 암튼, 이곳이 왕이 되는 길이다. 야호! 그렇다고 무슨 비단으로 된 양탄자가 깔렸을까? 역 뒤편은 애들 놀이터라 애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왼쪽 봉우리가 슈렉호른
왕을 위한 길인 건지 뭔지 길은 평탄했다. 약간, 고바위긴 했지만 휠체어를 탄 노인과 강철로 의족을 한 사내까지 걸을 수 있을 정도라니. 그러고 보면 길이 편해서 왕의 길인가? 누구 유래를 알면 알려 주시길! 걸어서 가보니 그곳이 왕관 모양(2,343m)으로 되어있다. 경치가 어떻겠는가? 높이가 4,000m 급 봉우리 세 놈이 나란히 서 있는데 참 가관이다. 건방지기 짝이 없다. 구름으로 살짝 가렸다 말다, 약도 올린다.
융프라우 방향 산군.
알프스! 역시나 알프스다. 이걸 보러 온 것이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잘생기고 멋지고 웅장하고!! 이곳이 스위스 베른 주의 3대 봉우리이다. 당연히, 봉우리 3개만 불쑥 솟아있겠는가. 둘러보니 저기 그린데발트가 내려다보인다. 그 뒤에 그린데발트 경비병 슈렉호른(4,078)이 폼 잡고 서있다. 그냥 앉아 있었다. 좋은 걸 어떻게 하면서. 그럼 숙소에 어떻게 돌아왔을까? 또 신라면은 뭔데?
아이거익스프레스와 아이거글레처에서 본 융프라우
뭰리헨 승강장에 다시 돌아와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케이블카가 있었다. 그린데발트에서 이곳까지 걸어왔으면 시간이 꽤 걸렸겠다 했는데, 아니었다. 그린데발트까지 한 번에 내려가는 리프트가 있었다. 이 말인즉, 한 번에 이곳에 올라오는 리프트도 있다는 것이다. 이건 여기 와서 알았던 것인데,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다니. 그러니 숙소까지 어떻게 내려갔겠는가. 한 번에 뿅~하고 내려갔다. 그게 30분 정도. 30분간 리프트에 앉아 알프스를 사방팔방으로 쳐다봐도 질리지 않는다. 풍경이.
산엔 눈이 바로 아래는 소들이!
그럼 신라면은 뭔데? 읽는 분들께 정말 죄송한데, 사진이라도 즐겨보시라. 일정을 적다 보니 복잡해졌는데 얼빵이 촌놈이 그린데발트라는 곳에서 출발해서 돌고 돌아 산 넘고 물 넘어 스위스 베른 주 미봉 3개 봤다는 얘기인데, 복잡해졌다. 양해해 주시고. 양해해 주시라 믿고 좀 더 촌빨을 살리면. 우리가 보통 사진으로 스위스 하면 아주 높은 산에 산악열차가 칙칙폭폭은 아니고 전기로 스무드하게 올라가는 멋진 목가적인 풍경을 상상할 텐데, 그곳이 바로 클라이네 샤이덱이다. 거기가 종점은 아니지만, 여기서 아이거 익스프레스, 빨간 열차를 타면 아이거글레처에 도착할 수 있다. 그곳에서도 바로 그린데발트 가는 리프트가 있다. 그러고 보니 인터라켄이 아니라 그린데발트가 산악 여행의 최전선 같은데, 맞다. 맞는 말이다. 거기선여기저기 다간다.
알레치 빙하
그럼 신라면은 뭔 얘기? 신라면은 남들도 다 가봤다는 융플라우요흐(Jungfraujoch) 전망대에서 판다. 공짜인 줄 알았는데, 비싸다. 굳이 여기 와서 라면까지 먹겠는가? 융프라우 정상은 알피니스트들은 올라가겠지만 내가 올라갔겠는가. 융프라우요흐까진 가보자 했다. 85유로 주고. 이곳이야 그린데발트에서 올라갈 수도 있고 인터라켄에서 온다면 앞에 아주 복잡하게 써놓은 방식 말고 간단히 클라이네샤이덱까지 산악열차 타고 올라가면 된다. 드넓은 벌판, 지천으로 널린 야생화 보면서. 그런데 그린데발트에선 이곳 아이거글레처에 한 번에 리프트 타고 온다.
저 밑이 스노 펀 파크. 공원으로 보이남?/금방 흐려지는 날씨
그 역(아이거글레처)에서 짱구를 굴렸다. 10유로 더 주고 대기 없이 편안히 융프라우요흐까지 갈 건지, 아니면 대기해서 갈 건지. 이 말이 뭐냐면, 융프라우요흐는 보통 인터라켄 방향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니 만약 열차가 만석이면 아이거글래처 역에서 대기해야 한다. 빈자리 날 때까지. 그런데, 정말 몰랐다. 이곳에서 융프라우요흐 전망대를 어떻게 가는지. 일행하고 나쁜 머리를 맞대고 대기없이 선착순으로 빨리 타면 창가에 앉아서 멋진 경치 보고 가자고 했는데. 가본 분들께 죄송하지만 상상을 못 했었다. 그건 굴이다 터널 말이다. 한 번에 쓔쓩하고. 그러니 경치는 개뿔! 사방이 컴컴했다. 그 높은 곳에서 더 높은 곳으로 굴을 파다니. 열차길!
얼음동굴과 이 산이 묀히인지 융프라우인지??
그래서 도착한 전망대. 돈값했다. 한쪽으로는 융프라우 정상이 다른 쪽으론 묀히 정상이. 날씨가 이렇게 좋을 수가. 그래봤자 30분 정도였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것 하나 더. 빙하를 볼 줄 몰랐다. 그 높은 정상에 빙하가 있을 줄. 이름하여 알레치 빙하. 장대하다. 장대해! 그렇게 폼 잡고 사진 찍다 내려다보니 저 밑에 까만 점들이 꼬무락거린다. 뭐지? 사람들이다. 스노 펀 파크라나 뭐라나. 저 높은 곳에 놀이시설? 가서 보니 집라인도 타고 스키도 타고. 눈 보고 의자에 앉자 망중한도 즐기고. 그전인지 후인지 얼음동굴도 둘러봤다. 여긴 뭐 유지하느라 애를 쓸 필요도 없을 듯. 워낙 고지대에 위치해서 얼음이 녹을 리도 없고.
라면은 라면일뿐!
아, 이제 라면 얘기다.
라면을 어디서 파는지 알아보려 돌아다녔다. 찾긴 찾았는데, 시큰둥 해졌다. 남들 외국인들이야 그곳에서 한국 라면 먹는 맛이야 출출하고 추운데 좋았겠지만. 한국인인 내게는 글쎄다.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