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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Aug 20. 2024

꽃 보다 트레 치메!

10.

돌덩어리가 뭐라고? 그러게. 돌덩어리가 하나가 아니라 세 개지만. 자세히 보면 옆에 몇 개 더 있기는 한데. 이곳이 뭐라고 그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일까? 이때, 많은 사람들이 다 산악인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들부터, 남녀노소 모두 와서 보고 걷는 곳. 누군 완전 장비를 갖춘 등산가처럼, 누군 그냥 가볍게 산책 나온 사람들처럼, 걷고 또 걸었다. 짧게 걷는지, 길게 걷는지, 오른쪽으로 걷는지 왼쪽으로 걷는지 차이가 있을 뿐. 말이 될까 모르겠지만, 여긴 그냥 국민 관광지이다. 해외에서 먼 길 온 사람들이야 마음 단단히 먹고 날 잡아서 노고 속에 오는 곳.

사람들이 돌로미티 돌로미티 하는 이유!

이탈리아 사람들도 수고를 들이긴 할 것 같다. 이곳이 피렌체나 로마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베네치아에서 무려 몇 시간에 걸쳐 오는 곳은 아니지만, 몇 분 걸렸더라? 코르티나 담배초까지 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온다면. 그렇군. 쉬운 길은 아니지만 이곳에 와서 덜렁 트레 치매만 보고 갈까? 며칠 묵다 가겠지. 그 많은 산장과 호텔이 괜히 있겠는가. 경치는 둘째치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마냥 걷는다. 물론 다 계획이 있지 않던가. 가족단위로 온 트레커들이 눈에 가장 많이 띈 것 같다는.

저 멀리 아우렌조 산장. 들머리 날머리 다 그곳이다. 
라바레도 산장이 아득히 보인다.

아침 일찍 온 덕인지 주차장에서 주차료를 지불하려는 차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 차장 밖으로 미주리나 호수인지 뭔지 멋있어 이곳에서 사진이나 찍었으면 했는데, 나중에 하산하면서 찍긴 찍었지만. 이곳 주인공은 역시나 트리 치메 삼 형제 봉우리이다.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가 원래 이름이라고 하는데, 그냥 트레 치메하면 된다. 라바레도의 세 봉우리가 원래 이름이라고 하지만. 세 돌덩어리 하면 가장 쉽고. 굳이 이름을 말하라면 치마 피콜라(작은 봉우리), 치마 그란데(큰 봉우리), 치마 오베스트(서쪽 봉우리)라는데 내겐 그냥 돌덩어리이다.

라바레도 고개마루에 사람이 바글 바글!

그런데, 돌덩어리가 크다. 어디선가 수직으로 재면 높이만 500m가 넘는 돌덩어리로 1869년 치메 그란데가 폴 그로맨(Paul Grohmann)에 의해 초등 되었다나 뭐라나. 그냥 봐도 좋은데, 저길 굳이 올라가려고 노력을 하다니. 욕심을 버리면 만사형통이다. 룰루랄라! 가방에 도시락 하나 준비하고 물통 하나 있으면 끝. 그런데, 걸어보니 시간이 꽤 걸린다. 다섯 시간 정도 걸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이걸 종주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하지? 들머리와 날머리는 아우론조 산장이다. 주차장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큰 곳. 그곳에서 물 한 번 빼주고 걷기 시작했다.

라바레도 고개 우측에 동굴이 있다.

필요하면 중간에 산장에서 해우를 하면 되고. 1유로였나 적선이라 생각하고. 시작된 걷는 길. 남들이 다들 오른쪽으로 걷길래 나도 그랬다. 대세가 중요하다. 낯선 곳에서 길 잃어버릴 것 같지 않지만. 그냥 남들도 가니 가보니 그곳이 가장 많이 도는 방향 같다. 그렇게 걷다 보면 왼편에 삼 형제가 싸우지 않고 서 있는 모습도 좋지만,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참 돌로미티스럽다. 남들이 왜 그렇게 돌로미티 돌로미티 하는지 끄덕여진다. 알타 비아를 걷지 않아도 바쁘거나 가족끼리 오거나 그냥 오거나 해도 되는 사람들은 이 정도 충분할 것 같다. 

로카델리 산장

걷는 길이 하도 평탄해서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곳 높이도 해발이 2,000m가 넘는 곳이다. 그러니 내려다보이는 거다. 저 멀리 라바레도 산장이 보인다. 산장 이름이 라바레도인 걸 보니 이곳 지명이 라바레도 인가 보다. 그럼 제법 걸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곳부터는 언덕길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라바레도 산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라바레도 고개까지 내리막과 오르막이 이어진다. 여기서 약간의 방황? 바로 언덕길로 오를지 우회해서 걸을지, 그게 그거지만 선택해서 바로 오른다. 그러니 고개까지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오르지만. 오르니 역시나 예상하지 못한 경치가 펼쳐진다. 저 멀리 보이는 오늘 숙제, 걸어야 할 트랙이 보인다. 

배고픈데 무슨 트레킹?

잠시 오른쪽으로 빠져 고바위에 오른다. 이곳에 사진 포인트가 있다 해서 올랐는데, 동굴이다. 동굴에서 내려다보는 맛도 좋지만, 동굴에서 바라다보는 삼 형제 봉우리가 삼삼하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곳에 오른 곳이다. 쇠줄을 잡고 약간 고소공포를 잠시 느끼면 얻게 되는 해방감이라니. 한국에서 온 두 모녀는 동굴에서 평생 사진을 찍나 보다. 내려갈 생각을 안 하다니. 사족인데, 나중에 이 두 모녀를 부라노 섬에서 만난다. 하하. 세상은 참 좁다. 그날 동굴에서 평생 찍을 사진 다 찍으신 분하고 놀렸더니, 딸 엄마가 깔깔대고 웃었는데......저 돌덩어리 오르는데 2일 정도 걸린다던데, 맞나? 그렇게 다시 라바레도 고갯마루까지 내려가서 본격적으로 걸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그런데, 트레 치메는 주차장에서 도착해서 보는 것이 정석이 아니다. 이곳에 봐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삼 형제가 싸우는지 싸우지 않는지, 우애가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야지.

자랑스럽다. 내 자식이 저렇다면 얼마나 내세우고 싶을까? 게다가 잘 생겼다. 틀림없이 성격도 좋으리라. 고개에서 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산장이 로카 델리인데, 그곳은 패스이다. 굳이 안 가도, 이 멋진 상남자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저 카메라만 들이대면 된다. 개인정보 어쩌고 저쩌고 머라고 할 사람 없고. 그 옆으로 사람들 걷는 모습이 올망졸망 보이는데, 당연히 이곳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이곳부터 길은 울퉁불퉁이다. 고개란 말을 썼듯이 고개는 오르고 내려가는 곳 아니던가. 평탄하던 길이 제법 트레킹을 걷는 것 같게 해 주는데, 이길 어린아이들도 걷고 있었다. 무난한, 아주 무난한. 

곳곳에 꽃들이. 이꽃보다 치메 트리!

약간의 굴곡진 길을 걷다 보면 랑에 아름(Lange Alm)인지 뭔지, 발음이 맞나? 레스토랑이 나오는데, 패스! 근처에서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세족을 하건만, 유혹을 꾹 참고 오르막을 내디뎠다. 이곳은 오르막이다. 가다가 생각이 나서 야생화도 찍어보고. 잘생긴 상남자들 뒷모습도 살펴보고. 어찌 보면 이곳에서 진짜 형제들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걷는 내내 모습이 조금씩 방향에 따라 달라지더라도 잘생긴 건 맞다. 그러다 만나는 이정표. 다 왔다는. 이곳도 고개인데, 이곳에 이르면 처음 올라올 때 봤던 풍경이 다시 펼쳐진다.

저 멀리 미주리나 호수도 보이고.

한 바퀴 돈 것이다. 그럼 내려가야 한다. 모든 것이 그렇지 않던가. 왔으니 가야 하고. 이곳은 아니라도 다시 돌로미티 속살을 걸을 테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 그냥 갈 수는 없고. 오다 멋져 보이는 미주리나 호수에 들렀다. 워낙 잘생긴 삼 형제가 내뿜는 기에 취해 호수에 오니, 참 시시해 보였다. 호수가. 사진 명소야 당연히 명소지만. 압승이다. 트레 치메 압승. 그렇게 트레킹이 끝났으면 좋으련만!

미주리나 호수

그곳까지 왔으니 유명한 휴양 도시 코르티나 담베초를 거를까? 그냥 가봤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곳이길래. 갔더니, 대박! 이걸 대박이라고 하는 거다. 도시 한복판에서 축제가 벌어졌다.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경주가 아니다. 순위는 이미 결정된 듯하고 누가 얼마나 늦게 들어올지는 모르지만 끝까지 맞이하고 환영할 것 같다. 몇 km를 밤새 걷거나 뛰었을까? 울트라 트레일이니까. 그곳에서 만난 한국 젊은 남녀가 자기 아버지를 기다린다던데, 이미 하루가 지난 시각이었다니. 늦게 들어와도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경주. 그게 누구든 마을 입구에만 들어서만 사람들이 손뼉 치고 환호와 함성을 지른다. 이걸 축제라고 하는 거다. 박수 박수. 힘내라고!

수녀님도 오늘 축제 주인공!
이곳엔 성당이 많다.

그건 그렇고. 마을 이곳저곳을 조금 돌아보니 곳곳에 성당이 보인다. 아기자기 예쁜 성당들. 역시나 이탈리아라는 생각! 이것도 주인공이다. 주연이 아니라도 주인공이 되는 돌로미티. 이렇게 돌로미티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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