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하면 떠오르는 장면 몇 장...... 그중에 알프스 소녀 하이디도? 이건 일본 만화영화이다. 스위스에 하이디라 불릴 소녀는 있겠지만 영화 속 주인공 하이디는 진짜 없다. 영화 때문에 나중에 스위스에서 하이디 마을을 만들었다지만. 옆길로 샜다. 그중에 융프라우요흐에서 파는 신라면 사진, 아이거와 융프라우 그 잘난 봉우리들 사진도 있지만 당연히 이 사진이었다. 가장 눈에 확 들어오는 사진. 저 꼭대기 아득한 곳 전망대에서 걷는 사람들. 피르스트 클리프 워크(First Cliff Walk). 그리고 그 근처를 붕붕 떠다니는 패러글라이딩.
피르스트 클리프 워크가 좁쌀 처럼 보인다.
모르고 온 것이다. 제대로 알고 하는 것이 거의 없는지라 놀라울 일도 아니건만. 여기 경치는 놀라웠다. 굳이, 이곳을 보고 하이디를 떠올린 것도, 이곳을 걷는 내내 환상 속 알프스 이미지가 그런대로 구현된 곳 같았다. 알고 보니 여긴 액티비티 천국까지는 아니고, 알프스 지역에서 가장 액티비티 하기 좋은 장소이기에, 그만큼 유명한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바글바글 몰려들고. 배낭에 등산 스틱을 든 사람이 오히려 적게 보였다.
오늘 목적지는 파울호른(Faulhorn : 2,681m) 정상이다. 명색이 올라야 하건만. 트래킹이 꼭 정상을 찍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결과를 먼저 말하면 오르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날씨가 비바람 혹은 눈바람이 몰아쳐서도 아니다. 막아놨다. 오르지 못하도록. 이유를 정확히 모르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다. 등산로를 막았다는 건 누군가 산에 오르는 것이 배가 아파 막아놓은 것이 아니다. 폐쇄란 의미는 오가는 산객들 안전을 위해 막아놓은 것이라서 달리 도리가 없었다. 몸 한구석에선 쾌재의 소리가 들렸다. 몸이 좀 힘들었다.
하이디가 살았을 것 같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르지 못하니 밑에서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이건 알프스니까 가능한 거다. 이런 걸 보러 왔으니 세월아 네월아 했다. 잔디밭에서 뒹굴면서 사진도 찍고. 그러다 보니 하이디까지 간 것이다. 지금 나이로 치면 하이디는 몇 살? 소녀 하이디가 아니라 아줌마 하이디? 혹은 할머니 하이디? 분위기 팍 샜다! 늙어서가 아니고, 하이디는 영원히 소녀여야 할 것 같은데, 다행히 알프스는 앞으로도 소녀 같을 것이다. 아님, 소년.
저 아래 그린델발트가 보일랑 말랑.
저 아래 피르스트 정거장(Firstbahn)에서 피르스트 정상까지 한 번에 오르지는 않았다. 대게, 스위스의 리프트나 곤돌라가 그렇듯이 지형지물에 적합하게 이리저리 돌리고 우회도 하고, 중간중간 쉴 곳도 마련하고. 개중엔 누군가는 그중 아무 곳에서 내려서 산을 오르거나 내리거나 할 수 있고. 그 중간중간에서 보면 누군가 자전거도 타고 카트도 타는 것이 보인다. 액티비티는 대략 4개가 있는 것 같다. 그중 하나는 이미 언급한 자전거인데, 생긴 것이 킥보드 비슷하다. 이름이 트로티 바이크. 카트는 산에서 타니 마운틴 카트고. 특이한 것이 플라이어인데, 이건 4명인가가 엎드려 타고 위에서 아래로 슝하고 내려오는 건데, 마치 집라인처럼. 그런데, 밑에서 사람들이 준비해서 거꾸로 타고 올라가 다시 내려온다.
바흐알프제 호수에서 수영을. 추웠을 거다.
아무래도 이곳 최고 액티비티는 패러글라이딩 같다. 하늘 점점이 멋진 설산과 어울리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 밑바닥에서 내려오는 패러글라이딩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의 비슷한 높이에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패러글라이딩이라니. 그냥 눈으로 만족한다. 충분하다. 남들이 뭐라든 부럽지도 않았다. 그건 아마 나도 높은 곳에 올라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트래킹은?
바흐알프제 호수
피르스트 정거장에서 내려 걷는데, 계속 고갯길이다. 갈 때는 몰랐는데, 올 때 이 근처가 얼마나 환상적인 뷰포인트인지를 알게 된다. 그저 심취해 걷고 걸어 도착한 곳이 바흐알프제(Bachalpsee) 호수이다. 이곳 높이가 해발 2,265m이니 낮은 곳인가? 이곳에 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 지형상 물이 고일 수밖에 없는 곳에 물이 많으니 만들어진 호수 같다. 이곳에 와서야 파울호른을 올라갈 수 없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막아놨다. 뭐라고 써놨던 것 같은데, 남들도 못 가니 나도 패스! 그런데, 이 호수를 빛나게 만든 두 명의 상남자가 있다. 그들이 그곳에서 수영을 했다. 하하! 젊다. 젊어. 그래도 추웠을 텐데.
멍~ 때리기.
그러다 돌아가는 길. 올 때보다 더 많이 보인다. 이미 목표를 이뤄서일까? 아님, 더 갈 때가 없어서일까? 마음이 풍요로워진 탓인가? 더 아름답고 더 멋지게 보이다니. 올라왔으니 내려가야 해서 그냥 마구마구 내려가지는 않았다. 리프트를 타고 가다 보니 중간에 호텔이 있어 잠시 내려 남들처럼 의자에 앉아 멍 때렸다. 그랬더니 머리가 계속 멍~~ 했다. 올 때 마음 다르고 갈 때 마음 다르듯이 그린데발트가 좀 더 자세히 보인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그린델발트 터미널이란 곳으로 열차로 한 정거장이지만, 그린델발트 역에서 내려 버스로 한 정거장 타고 왔었는데, 갈 때는 그냥 걸었다. 거리가 멀지도 않고, 버스 간격도 모르겠고. 이곳이 오히려 안락해 보이고 좋았다. 다음에 온다면 여기서 머무르리라.
그린델발트 쪽에서 클라이네 샤이덱을 오르는 알록달록 열차.
산 위에서 본 풍경이지만 그린델발트 전체를 감싸 안은 듯한 슈렉 호른과 아이거가 없었다면 그린델발트는 어땠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산악도시라는 느낌이 단박에 드는 곳이다. 이렇게 오늘 걷는 것이 끝났을까? 언젠가 알프스 달력 사진을 보았는데, 그때 기억으로는 오직 산악열차만 봤던 것 같다. 푸른 초원 위에 아득히 철길 따라 오르는 열차. 그곳 언덕마루에 빨간 기차가 서있고. 아득히 옛날! 그곳이 바로 클라이네 샤이덱이다. 이곳은 그냥 양쪽으로 펼쳐진 뻥 뚫린 초원을 보는 맛이다. 그린델발트를 기준으로 보면 아이거 끝나는 지점과 맞닿아 있는 곳. 그래서 그곳 마지막 정거장이 아이거 글래처이고. 그곳에서 융프라우요흐 떠나는 열차가 출발 혹은 도착하는 곳.
클라이네 샤이덱 정거장(위 우측)과 아이거 글래처에 오르는 아이거 익스프레스(빨간 열차)
어딘들 좋지 않았을까. 알프스 관광을 와서 아름다운 봉우리들 리프트 타고 오른다 해도 시간 내서 한 번 걸어보시길. 사진 달랑 찍지 말고 이곳저곳 알프스 계곡 속살들 한 번 들여다보시길. 오늘에서야 꽃밭 트레킹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계절 6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