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문 Aug 29. 2024

예감은 틀리지 않아서, 사스 페?

4.

길문5분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이런 소설을 쓰는 소설가는 정말 멋질 것 같다는. 사진으로 본 줄리언 반스는 예상대로 소설가처럼 생겼다. 소설가처럼? 잘생겼다는 말이다. 소설가는 다 잘생긴 것 같은. 근거는 없다. 이건 주관적이지만...... 소설 제목 때문인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란 말을 종종 써먹고 싶었다. 그런데 제목으로 써먹을 일이 생겼다. 예감은 틀리지 않긴 했다. 이 말을 하기 전에 적지 않은 징후들이 있어야 하는데, 계속 징조들이 드러나긴 했다. 

몽블랑이 떠나는 걸 싫어하나? 얼굴을 영 드러내지 않으니. 샤모니에 둥둥 뜬 페러글라이더들.

그냥 남들 하는데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니 크게, 소소한 일들을 무시한 것이다. 프랑스나 스위스 산악지역을 트레킹을 한다면 가장 경계 대상이 이 비가 될 것 같다. 눈도 그렇긴 하겠지만 한 겨울에 등산가들 빼면 평범한 이들이 트레킹을 즐기기 쉽지 않다. 대부분 산악코스가 폐쇄되기 때문이다. 그럼 그 많은 산장들은 뭘 먹고살까? 일부는 스키다. 알프스 봉우리들이 등산로와 산장을 폐쇄해도 스키장들은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이건 리프트가 왜 그렇게 많이 산마다 설치되어 있는지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샤모니 성당과 샤모니 트레킹 회사 전경.

알프스 지역이 봄여름가을엔 트레킹, 겨울엔 스키로 최대한 자연을 활용한다. 부러울 뿐인데, 이것도 날씨가 받쳐줘요 한다. 날씨? 그렇다. 예감이란 안테나를 켜두지 않았을 뿐, 계속 일기예보를 본 것 맞다. 걷다가 비 맞는 것만큼 아름다운 알프스의  풍경을 방해하는 것이 있을까? 그러니 계속 신경을 쓴 건 맞지만 그건 가이드들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용을 지불했으니, 그들이 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어도 대안은 그들이 마련해야 할 일이 맞지 않던가.

가는 날이 장날인데, 가는 곳은 샤모니가 아니었다나!

어제도 날씨가 비 반 흐림 반. 오늘은? 오든지 말든지. 왜냐고? 체르마트로 이동하는 날이니까. 체르마트에 도착해서 도시 주변 트레킹을 하는 날이니까. 막간에 쉬는 날이니. 그렇게 가볍게 출발하려는데, 우리를 체르마트로 나를 버스 운전사가 뭔가 표정이 좋지 않다. 들리는 말로는 체르마트에 일이 생겨 오늘 체르마트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어쩌나? 방법은 최대한 늦게 이동을 하는 거라서, 샤모니로 들어가 차를 마시거나 쇼핑을 하거나 하는 방법 외에 없었다.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나앉는 수 외에 달리 뾰쪽한 수가 있을 리가.

길가에서 쉬다 만난 바이크족. 머리에 핼맷이 아니라 인형을.

정작 우중충한 예감이었던 비로 인한 피해가 샤모니에 머무는 동안 발생하지 않았으니, 행운이 비껴간 건 아니지만 그것이 다음 행선지인 체르마트가 될 줄은 몰랐다. 체르마트로 가는 찻길과 철길이 모두 막혔다는 정도만 알고 그냥 어떻게 되겠지 했다. 뭔가 조금씩 어긋난 것 같은 징조들이 이렇게 전개될 줄 몰랐다. 예감을 제대로 못 느낀 건 그냥 회사에서 알아서 해주겠거니 했으니 말이다. 이걸 혼자 준비해서 진행했다면 난 좀 더 동물적인 감각과 직감을 발휘했을 것이다.  

숙소 인근 경치

어쩜 이래서 돈이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트레킹의 경우 발생할 일부 걱정거리 등을 보험 들듯 비용으로 해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비싼 것이다. 트레킹을 단체로 하는 비용이 보통 패키지로 떠나는 여행 비용보다 더 비싼 것 말이다. 암튼, 그럼 어떻게 되었을까? 버스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도로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현지 회사에서는 인터라켄으로 먼저 가라고 했다는데, 그건 이쪽 회사에서 볼 때 선택지가 아니다. 예약을 취소하고 다시 비용을 지불한다? 세상에 그런 여행사는 없다. 

이곳도 주변 풍경이 참. 관광안내소 옆 화단.

답은 간단. 계획을 변경하면 된다. 이런 천재지변을 누가 탓할까? 그래서 선택한 곳이 사스 페(Saas Fee)였다. 우리가 이곳을 잘 몰라서 그렇지 스위스 사람들에겐 더 유명한 마을 같기도 했다. 가보니 그랬다는 말이다. 차로 가다 보면 체르마트 가기 전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빠지면 사스 페에 갈 수 있다. 그날은 정말 오후에 도착해서 그곳이 얼마나 트레킹과 스키를 즐 길 수 있는 지역인지 몰랐다. 빨리 도로가 뚫려 체르마트에 갈 수 있기를 빌었을 뿐. 

지붕이 돌이다. 사스 페 성당 모습

사스 페는 1,800m에 있는 마을로 주면에 4,000m 이상의 봉우리가 총 13개 된다고 해서 '알프스의 진'주라고 불린다니. 이곳에서 몽블랑 다음으로 높은 몬테로사(4,634m) 산에 오르기도 하고, 겨울에는 스키 성지라고 한다.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러 가보니 밑 정류장에서 만류를 한다. 늦어서 안된다고. 그걸 타면 펠스킨(Felskin)에 도착하고, 다시 그곳에서 지하 갱도 철도를 타고 오르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인 미텔 알라임(Mittel Allalim)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말짱 도루묵이다!

꽃은 여기에도 있군? 성당 내 십자가상이 독특하다.
여기가 어디라구? 체르마트는 아니고.

이렇게 오늘 하루 연극의 막간처럼 막간의 여행을 했다. 나빴냐고? 선택하고 말고 가 어디 있을까? 내가 살던 동네 뒷산을 가는 것도 아니고 초행길인데 그것도 남의 나라, 스위스. 트레킹 중에 비가 간간이 오더라도 더 나쁘지만 말아라, 더 나쁘지만 말라고 빌어서 인지. 예감이고 나발이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 사실이다. 설령, 예감했다고 어쩌란 말인가. 다 때려치우고 돌아갈 수도 없고. 라인홀드 니버가 그랬잖은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달라고 말이다. 그럼 이 경우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냥!

매거진의 이전글 체르마트 간 날, 마리아가 마중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