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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Aug 27. 2024

체르마트 간 날, 마리아가 마중을?

5.

아침부터 뭔가 부산하다. 체르마트를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같다. 신경을 써봤자 스트레스 지수만 높아지고, 다 내려놓고 있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고. 누가 이쪽 지역에 강우가 쏟아지는지 알았겠는가? 다 깨달은 척했었는데, 남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니 나까지 따라 움직일 수밖에.

타쉬에서 체르마트 가는 열차

대강 사정을 유추하니, 낙석으로 인해 막힌 도로와 물이 넘쳐 움직이지 못한 철길이 복구된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체르마트에 갈 수 있는 거다. 다행이다. 예정에 없던 도시 사스 페에 들러 시간을 축내고. 그렇다고 사스 페가 볼 것이 없냐면 그건 아니다.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곳에서도 산행을 하는 것 같다. 지도를 보면 빽빽하게 길이 표시가 된 것으로 봐서. 우리에게 체르마트처럼 알려지지 않을 뿐. 루트를 보니 이곳에서 올라서 이탈리아 산악지역까지 갈 수 있다.

타쉬 기차역 모습과 체르마트 역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체르마트는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공해 때문인데, 그 대신 열차가 체르마트까지 놓인 것이다. 그럼 차를 탄 사람들은? 타쉬 방향에서 오면 도시 끝 부근에서 내려야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숙소까지 대게 걸어온다. 재수 없어서 숙소가 마테호른에 가깝다면, 전기차를 타면 된다. 각 숙소에서 사람과 짐을 나르기 위해 전기차를 운행한다. 체르마트 전체가 바로 이 운송수단에 의해서 유지된다고 보면 된다. 크기가 꼭 다마스만 하다.

체르마트 시내

오늘은 도시 끝 주차장까지도 차가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앞에서 언급한 타쉬(Täsch)에서 열차를 타고 체르마트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배낭 등 짐은 숙소까지 다마스(?)가 배달해 주고. 이 차는 꼭 짐만 운반하지 않고 당연히 사람도 운반한다. 시내에서는 마차가 있지만 이건 관광용 마차라서. 암튼, 흥미진진했다. 낯선 땅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어떻게 대처할지 조금 알게 된 하루였다. 이것도 여행이다. 여행!

마을 뒷산에 야생화가 지천이다.

타쉬에서 체르마트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5km라니 열차라면 몇 분? 스위스야 열차 빼면 시체 아니던가. 날씨가 여전히 구려 몸은 움츠렸지만, 마음은 기대감에 아드레날린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대강 배낭을 챙겨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아주 복잡하게, 비밀번호가 맞지 않아, 숙소 입소를 끝내고, 밥 먹고, 할 일을 했다. 할 일이란 거야 당연히 트레킹. 하루 일정이 계획에서 빠졌으니, 그건 수네가 호수를 걷는 거였다. 시간으로 보면 굳이 못 갈 이유도 없었지만 어쩌겠는가? 단체로 왔으니.

다들 움츠렸던 마음과 몸을 다 잡으려는 듯 걷고자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체르마트 시내를 관통해서 마테호른 방향으로 가다 오른쪽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체르마트 트레킹을 시작하려 했는데. 결론적으로 계획했던 주변 트레킹도 끝내지 못했다. 그건 길이 역시나 폭우로 막힌 것이다. 등산로가 폐쇄되어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런 후 각자 일행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시내 관광을 즐기겠다는 파와 산 쪽으로 더 올라가겠다는 파와 시내와 인접한 트레킹 코스를 왕복으로 둘러보겠다는 파가 나뉘었다. 역시나, 파벌 싸움(?)이 시작되었다.

비가 얼마나 왔으면. 등산로가 폐쇄되었다.

어느 파가 이겼을까? 그건 모른다. 다들 흩어져서 그 후 혼자 왔다 갔다 했다.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오가는데, 어느 스위스 할아버지가 뭐라고 엄청 공을 들여 말씀을 하신다. 걷는 방향 반대로 가면 에델바이스를 볼 수 있다는 말인 것 같았다.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대부분 유럽 사람들이 영어를 쓰지 않던가? 스위스 독일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에델바이스? 이 말 때문에......

흐드러지게 핀 꽃 사이로 마리아가 불쑥 나타나 노래를 부를 것 같다.

갑자기 난 타임슬립을 했다. 이곳이 어디더라? 가서 마리아(줄리 앤드루스)를 만나서 그들 가족과 함께 '도레미 송'도 부르고 폰 트랩 대령과 함께 '에델바이스'를 부르고. 그러더니 다시 숲길이다. 정신이 잠깐 나갔구먼. 착각도 어느 정도 해야지. 이건 희망 사항이 강렬했기에, 에델바이스 꽃이나 발견했으면 했건만 그녀는 역시나 나를 거부했었다. 찾을 수가 있어야지. 오다가 마주친 낡은 건물들이 그냥 오래된 집인가 했더니, 이들 집들은  시에서 관리하는 전통가옥인데, 주변 경치와 조화롭다. 날씨 탓인지 마음 탓인지 온통 주변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어디선가 노래 에델바이스가 다시 들리는 것 같다. 그렇게 믿는다.

보존하는 오래된 가옥들과 체르마트 성당

일행이 시내 성당 옆 박물관 가자고 해서 같이 내려갔는데, 가다가 옆길로 샜다. 그 옆길이란 누군가 성당 정문으로 쑥 들어가길래 나도 그냥 따라갔다. 산에서도 계속 울려대는 성당의 종소리를 들었는데, 그것 때문이리라. 성당에서 마치 초대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들어간 성당에서 난 무엇을 했을까? 암튼, 인구 6,000명도 안 되는 이곳이 세계적인 명소라는 건 전적으로 마터호른이란 상남자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도시가 예뻐 언제 다시 찾아오고 싶다. 우여곡절 끝에 그나마 체르마트에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가. 기대된다. 내일은 상남자 만나는 날. 하남자면 뭐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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