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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작가 Aug 06. 2024

아직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마음

소리 내어 포기하는 겸손은 곧 자기 기만이 된다

0. 일 잘하는 팀원에게 승진과 함께 업무 확장을 제안한 적이 있다. 그때 팀원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자기는 아직 그럴 실력이 안 된다며 손사래 쳤다. 나는 더 똥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봤다. 타인이 꿰뚫어 믿어준 나를, 내가 스스로 믿지 못해 지나쳐온 기회들. 그 기회들이 그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1. 아직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마음은 겸손일까, 자기 확신일까, 자기 기만일까?


2. 나는 요즘 내 몸이 할 수 없는 것이라 단정지었던 요가 자세들. 예컨대 바카사나, 드롭백 컴업, 파드마 같은 자세를 해내고 있다. 겁이 많아서, 워낙 상체 힘이 없어서, 발이 뚱뚱해서, 내 고관절 구조상, 그냥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자세들. 다른 사람들은 다 해도, <나>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자세에 머물러 보고 있다.


3. 잠잠히, 묵묵히 수련하고 있으면 어떤 날 스승은 내게 성큼성큼 온다. 그리고 내가 결코 하지 못할 것이라, 적어도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라 믿는 자세로 이끌어준다. 그 순간 나는 나에 대한 판단을 멈춰야 한다. “저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요!” 소리 내어 포기하는 겸손은 곧 자기 기만이 된다.


4. 내 몸은 어김없이. 평생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자세를 해낸다. 해내고야 만다.


5. 내 스승은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 몸이 준비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렸다가, “이제 얘 되겠다” 확신이 들 때 가이드 한다. 내 몸이 할 수 있다고 외친 지 꽤 되었는데도, 그걸 몰라주고, 안 봐주고, 무시했던 건 나 자신뿐이다.


6. 재밌는 제안들을 받고 있다. 성급히 YES를 외치지 않는 건 내 능력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 나는 내가 기갈나게 해낼 것이라는 데 한치의 의심도 없다. 나를 믿어준 이의 제안을 검토할 때의 기준이 내가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게 뭔 헛소리인가? 그 기준은 필히 내가, 내 몸이 <하고 싶은 것인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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