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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Jan 16. 2018

소피 칼의 가장 일상적인, 죽음

Beau doublé, Monsieur le marquis

며칠 전, 꿈을 꾸었다. 아빠가 꿈에 등장한 건 그의 죽음 이후 처음이었나? 아니면 두번째였나? 여튼 생생한 그 꿈의 여운이 아직 가시기 전, 재미있게도 나는 소피칼이 아버지의 죽음을 시작으로 했던 작업들을 마주했다.


'내 모든 전시의 첫번째 관람자였던 밥 칼, 이 전시까지 함께한 그 시선이 그리울거야.'


전시장을 들어서면 한벽을 가득 메운 사진과 글이 있다.  하얀 천이 씌워진 큰 오브제 사진 옆에는 소피칼이 쓴 '문장들'이 있다. 흰 천 안에 있는 대상에 대한 추측들 혹은 사실들. 큰 곰인형일지도, 알레스카 곰의 박제일지도 모르는 혹은 이 박물관을 떠도는 유령일지도 모르는 이 대상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함'이라는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그 죽음을 떠도는 난무하는 추측/감정들과 함께. 이 사진은 사실 Musée de la chasse et de la nature(사냥과 자연 박물관) 를 방문하면 보게되는 곰 모형에 흰 천을 뒤집어 씌운 채 찍은 사진이다.



아버지에 대한 추모로 시작한 여정은 자신이 키우던 동물들의 죽음, 가까운 이들의 죽음 그리고 죽음이 자기에게 주었던 영향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소피칼이 초청한 작가인 세레나 카론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동물의 모형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그녀의 박제작업이 죽음이라는 소재를 잘 이미지화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생선장수에게서 아이디어를 낚아보세요'인데,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이디어가 고갈된 소피칼이 생선가게의 광고문구인 저 제목을 보고 자기 단골 생선가게에 가서 주인과 인터뷰하는 내용을 영상으로 담은 작업이다. 아마도 오늘 저녁 밥상에 올릴 '아이디어' 였을법한 저 광고문구가 이 호기심과 유머가득한 소피칼에게는 작품'아이디어'로 탈바꿈된다. 서로의 목적에 맞게 '진심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데, 예술이라고는 다빈치 모나리자만 안다는 저 아저씨는 저녁 밥상 아이디어로 '연어'를 추천하고, 소피는 자신의 작업의 아이디어로 '연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세레나 카론의 손에서 (마침 그녀도 연어를 소재로 아래의 작업을 진행중이었다는 우연의 일치 상황) 피를 흘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연어떼가 완성된다.   


이 우연스럽지만 또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그러나 멋진! 그녀의 전시는 역시나 단어와 이미지의 흔적으로 마무리 된다. 죽은자들의 무덤. 슬프기보다는 아름답고 고요한 장소.



그리하여 아버지를 잃은 그녀의 사적 경험은 어느새 내가 경험하고/경험할 죽음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은 '죽음의 순간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관람자들은 이 질문이 쓰여진 카탈로그 안에 자신들의 생각을 저렇게 적어두었다.






이번 전시장소는 Musée de la chasse et de la nature, 한국말로 번역하면 사냥과 자연 박물관이라는 뜻인데, 다양한 동물들의 박제와 사냥에 사용하던 도구들과 그 역사들을 아름다운 건물에 옮겨놓은 장소이다. 설명만 들으면 무시무시한데 사실 이곳에 대한 인상은 자신의 사냥물을 과시하는 사냥꾼의 거실이라기보단, 귀족 수집가의 만물상자 같은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마레에서 꼭 가봐야 할 손에 꼽을 만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곳곳에 동물들의 박제와 사냥과 자연에 관련된 회화 조각들 그리고 사냥무기들이 가득한 이 공간 전체를 고스란히 전시공간으로 부여받으며 그녀는 세레나 카론을 초청한다. 세레나 카론은 동물의 이미지를 세라믹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이다.

 

이 특별전 말고도 이미 잘 알려진 과거의 작업들을 새로운 공간에서 또 새롭게 보이도록 배치해 놓은 전시가 이어진다. 역시 세네라 카론의 세라믹 동물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이미 상설전으로 전시된 오브제들과 관련된 소피칼의 짧은 일기들이 보물찾기 처럼 곳곳에 숨겨져있다.


사냥개들을 그린 회화 작품 전시관
독수리 모형과 나란히 놓인 '코'-독수리 부리!  
가상결혼식때 입었던 결혼 드레스
총구들과 함께 놓인 어릴적 사냥경험일화들
세레나 카론의 세파믹 곰 타피스트리. 단단하고 차가운. 진짜 곰의 털과는 다른,
1990년부터 누벨 옵세바퇴르에 실린 배우자나 연애 상대를 찾는 광고들을 모아 키워드를 분석한 작품들 중 하나. 제목: 예쁜 여자 선호, 지적이면 더 좋고. (키득키득)

2018년 2월 4일까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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