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산균 Dec 18. 2019

가장 보통의 존재를 위한 오마주

얀 페이밍과 쿠르베

쿠르베 <오르낭의 매장> 



19세기 중반, 프랑스 회화의 이단아 같은 인물이었던 구스타브 쿠르베. 오르세를 찾는 사람들에게 일 순위 화가는 아니겠지만, 미술사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쿠르베는 절대 지나칠 수 없는 마성의 이름이다. 화가로서의 자의식과 사회적인 책임 의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그는 생전에 파리코뮌에 참여한 전력도 있다. 물론 그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을 만한 기회가 있었지만, 시대가 원했던 '점잖고 부르주아적'인 그림을 그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얀 페이밍은 모든 것이 쿠르베로부터 시작했다고 말할 정도로 그를 좋아하고 존경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쿠르베가 가지고 있던 정치적, 예술적 신념이 작품에서 명료하게 완성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혹은 대상을 미화하지 않고, 그래서 오히려 내면을 파고들고 각인되는 그림을 그려서는 아닐까? 



큰 사이즈의 초상화 시리즈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 동안 쿠르베를 오마쥬 해 오던 얀 페이밍을 오르세에서 초청했다.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에 대한 재해석을 요청한 것이다. 최근에 열린 트레이시 에민 전시나 흑인모델 등의 전시에서 보인 기획의 특징은 현대미술의 눈으로 보는 오르세 작품들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일환으로 마련된 얀 페이밍의 전시실은 1층에서 볼 수 있는 쿠르베의 대작 회화 바로 위층에 위치하고 있다. 쿠르베의 대작 두 점이 걸린 공간이 오르세에서 가장 큰 벽들 중 하나인데, 역시 페이밍도 쿠르베 작품의 사이즈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미 지난여름에 오르낭의 쿠르베 미술관에서 페이밍의 개인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선보이지 않았던 한 작품에 집중된 전시이다. 


오르낭의 매장에서 페이밍이 주목한 것은 '아주 평범한 누군가에 대한 오마쥬'였고, 어머니를 여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는 당연히 죽음과 장례식의 주인공은 어머니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면화의 형태로 세 벽을 사용해 중앙에는 작가의 어머니의 초상, 왼쪽에는 어머니가 살던 고향의 지형 풍경화, 오른쪽으로는 쿠르베 버전의 <오르낭의 매장>에서 차용한 구도로 그려진 <상하이의 매장>이 있다. 인물들은 마치 쿠르베가 그러했듯, 장례식에 참석한 지인들과 실존인물들이고, 배경은 쿠르베가 그렇게 했듯 작가의 고향인 상하이이다. 상하이의 고층빌딩으로 이루어진 후경과 전경에 입관을 하고 있는 모습, 중경에 전통적인 장례식의 상여 운반하는 풍경들이 혼재되어 있다.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와의 콜라보라니. 실제 페이밍의 인터뷰에서 그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특유의 무심한 듯 힘 있는 터치와 무채색 안에서 살아있는 듯한 인물들의 눈빛을 발견할 수 있다. 


얀 페이밍 <상하이의 매장> 


이전 13화 JR, 테하차피 감옥 프로젝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