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화를 지닌 작은 마을 커뮤니티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해온 JR의 로컬 프로젝트의 연장으로 2019년에는 테하차피라는 ‘공간’이 선택되었다. 테하차피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장기복역수들이 주로 수감되어 있는 보안이 매우 철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열린 공간, 헐겁지만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로컬 공간이 닫힌 공간,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으나 한 공간에 모인 이들로 옮겨졌다.
작업의 시작은 JR의 친구가 던진 가벼운 농담조의 말이었다고 한다. 로컬 프로젝트를 감옥에서 못할 건 뭔가.
구글어스에서 테하차피 감옥의 조감도를 찾아본 작가는 콘크리트로 뒤덮인 철옹성, 바깥세상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공간 안에 살고 있는 장기수들의 커뮤니티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JR이 전속작가로 소속되어 있는 파리 페로탕 갤러리에서는 2020년 8월 29일부터 10월 10일까지 2019년 진행되었던 테하차피 감옥 프로젝트에 관한 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프로젝트 과정을 남긴 다큐멘터리 영상과 사진 작업, 인터뷰는 물론 JR의 최근 전시들에서 빠지지 않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소개하는 뒷 이야기와 완성된 영상작업까지가 테하차피 프로젝트에 해당된다.
가장 중심에 있는 사진 작업은 장기 복역수들의 프로필 사진들을 찍어 공간을 채우는 작업, 감옥의 외벽에 산의 풍경과 연장된 사진을 붙이는 작업이다.
전시장의 마지막 섹션은 지난 2019년 3월에 루브르의 피라미드에서 진행되었던 <피라미드 지우기> 프로젝트에 할애되었다. 루브르의 새로운 상징이 된 피라미드에 건물과 연결되는 눈속임 사진을 붙여 피라미드를 없애고 바닥은 마지 암석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는 듯한 거대한 사진을 붙여 새로운 공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단 11시간 16분 동안 진행되었던 이 임시적이고 장소 특정적인 작업은 이렇게 사진 아카이브로 남아있다.
감옥이라는 공간이 가진 내러티브 (혹은 사연)와 JR의 거대한 시각적 스펙터클이 만나 관람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동시대 스타 작가가 된 JR의 작업은 소소한 동네와 도시에서 점점 거시적이고 전 지구적인 문제 (예컨대, 총기 이슈나 산업화 시대의 소외된 제3세계 커뮤니티 등)으로 거대해져가고 있다.
동시에 그의 작업은 철저하게 윤리적인 포지션을 배제하고 단지 질문을 던지는 혹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들을 발굴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보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고 볼거리를 제공한다. 커뮤니티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참여의 형태를 이용하지만 여전히 대상으로부터 벗어난 관조적인 태도를 띄고 있다는 양면성은 어쩌면 그를 인기 작가로 만든 동력이자 한계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