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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만난 세계

작은 마을에 모인 얼굴들

by 미지의 세계

지역으로 오니 이국적인 외모의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다문화 사회라는 말을 교과서 밖에서 처음 체감한 순간이다. 주로 아시안 계열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간혹 유럽 쪽에서 태어났을 것 같은 사람들도 있다. 쉽게 외국인이라고 단정 짓지 않고 자꾸 이국적인 외모의 사람이라고 에둘러 표현하는 이유는 그들이 벌써 한국 국적을 취득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럼 한국인인데, 지칭하기가 더 까다로워지니까. 아무튼.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의 이야길 좀 더 해보자면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이 특히 눈에 띈다. 농촌의 특성상 결혼 이주 여성이 많아서인 것 같다. 남성들은 농사를 짓다 왔거나 공사일을 하다 온 것 같은 차림으로 저녁에 주로 마트에서 본다. 좀 특이한 건 노인은 많이 없다. 종합하면 출생 국가가 한국은 아닐 것 같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공공 육아센터, 마트, 길거리 그리고 지역 축제장 등에서 만난다. 이렇게 따로 의식하는 게 별 의미가 없을 만큼 말이다.


'그들'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을 이웃 주민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이사하고 얼마 안 있어서였다. 우리 동네 가장 큰 마트 입구에는 빵집이 있다. 가게에 들어서면서부터 냄새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곳이다. 그래서 배고픈 상태로 장을 보러 가면 꼭 빵도 사게 된다. 그런데 빵을 고르고 계산대에 선 순간 숨을 흡 들이켰다. 피부가 좀 더 까만, 낯선 외모의 사람이 서 있었다.

국내에 있는 외국인은 많이 봤지만 어떤 가게의 직원으로 본 건 거의 처음이었다. 그분은 친절하게 "어서 오세요. 계산해 드릴게요."라고 했지만 나는 왜인지 그분이 말을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해서 천천히 이야기했다.

"봉투는, 안 주셔도, 돼요. 가방이, 있어요."

하지만 이내 알게 되었다. 그건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분은 한국말을 아주 잘했다. 운동 후에 빵집에 들르는 게 루틴이 되면서 그분과 가벼운 스몰토크도 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런 대화다. 하루는 비닐로 싼 빵을 들고 계산하러 가자 그분이 속삭였다.

"포장된 건 어제 만든 거예요. 포장 안 된 게 오늘 만든 건데... 참고하세요."

"오, 고급 정보 감사해요. 근데 이런 거 말해주시면 사장님이 안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다 같이 웃으며 인사하고 다음 날 비닐 없는 빵을 계산하면서 또 웃는다. 거의 매일 보고 서로 웃는 사이가 된 것이다.


이국적인 외모의 사람들이 단순 업무에만 종사하는 것도 아니다. 지역 공공 육아센터에서는 일정 연회비를 내고 장난감을 빌릴 수 있는 장난감 도서관이 있다. 그런데 여기 담당자는 책상만 봐도 그가 처음부터 한국에서 살지는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아예 한국식이 아닌 이름이 붙어있어서다.

이름은 다소 특이하지만 그분의 한국어는 토종 한국인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창하다. 장난감 추천은 기본, 대여나 관리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콕콕 짚어 설명해 준다. 또 우리 부부가 참여하면 좋은 교육 같은 걸 추천하기도 한다. 나중에 친해져서 몇 마디 더 나눠보니 어린이집 교사 자격증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실습을 간 적이 있다고 해서다. 그는 우리 아이들의 특성을 훤히 알고 있었으며 가끔 신상 장난감을 따로 꺼내 빌릴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다. 친근하면서도 프로페셔널 한 분이다.

사실 이 담당자와는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 기관에 회원가입을 할 때 배우자가 내 이름으로 등록을 하고 연회비도 냈다. 그런데 다음번에 갔을 때에는 연회비를 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시간이 지체되었다. 아마 그 시기가 여름휴가 때라 담당자가 없는 사이에 등록이 진행돼서 확인이 필요한 것 같았다.

문제는 그때 무척 더웠고, 아이 둘이 나가자고 보채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연회비 냈어요. 여기 보세요." 하고 남편이 보내온 입금 내역을 보여주고 계속 실랑이를 하다가 화가 났다.

"뭘 더 확인해야 한다는 건가요? 연회비 냈다고요. 여기선 체크가 안 되나요? 제가 계속 이렇게 기다려야 해요?"

그분은 무척이나 당황해했고 이내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보니 평소엔 정말 유려하게 소통하는 분인데, 그땐 너무 당황하셨던 것 같다. 바로 이성을 되찾고 차분히 기다리기로 마음먹었지만 그분에게는 미안함이 몰려왔다. 솔직한 마음으로 그의 어색한 한국어 발음이 지금 늦어지고 있는 일처리와도 관련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간에 사실은 능력이 안 되는데, 사회 구성원으로 빠르게 합류시키기 위한 배려 차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거라고 멋대로 판단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휴가를 가고, 다른 직원이 일 처리하는 걸 보니 그건 엄청난 오해였다. 빈자리가 너무 컸다. 물론 원래 자신의 업무냐, 아니냐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임시 투입된 직원과는 대여자를 대하는 태도나 일 처리 센스 같은 게 확실히 차이가 났다. 그가 돌아왔을 때 나는 너무나 반기며 다시 돌아와 주셔서 좋다고, 휴가는 즐거우셨냐고 인사를 했다.


이렇게 일상에서 이국적인 사람들을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조만간 이국적인 사람들과 더욱 긴밀하게 지내게 될 텐데 이때 어떤 태도로 준비해야 연결이 자연스러울까 하는 고민이다.

이 고민은 단순히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따위의 교과서 적인 고민과는 결이 다르다. 간접적이긴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시민들이 다문화 사회에 진입할 때 겪는 진통들에 대해 어느 정도 지켜본 바가 있어서다. 예전에 방송국에서 농촌 학교나 고려인 마을을 취재한 적이 있다. 이 지역 학교의 교실은 이미 1/4 이상 가정이 다문화 가정이었는데, 수업이 한국어로만 진행돼 아이들이 적응하는 걸 어려워했었다. 가정에서의 언어와 달랐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니 같은 교실 안에서도 학생들이 나뉘었다. 이들을 어울리게 하기 위해 어떤 학교는 주기적으로 서로의 문화를 소개하고 체험하는 교육을 할 정도였다. 이미 낯선 외모의 청소년들이 "나 한국어밖에 할 줄 몰라! 난 한국인인걸?" 하며 여러 콘텐츠로 소통하는 세상인데, 젊은 층에 속하는 나조차 다문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준비가 잘 안 된 것 같으니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 나을 거라는 점이다. 이미 어린이집 시절부터 다문화 가정의 친구들을 사귀고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누군가의 외모나 이름만 보고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그 생각이 편견은 아닌지 흠칫 놀랄 필요도 없다. 문화가 다르든 어떻든 그냥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 그 부모, 선생님일 뿐이니까. 다만 그런 주변 사람들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좀 더 필요하긴 하겠다. 아이들의 보호자인 내가, 그때까지 여러 준비를 해둬야 될 것 같다.

영어 유치원도 하나 없는 이 시골 지역에서 우리는 다문화 시대의 시민으로 자란다. 작은 마을에 모인 다양한 얼굴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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