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눈이 부시게

서로 다른 어제를 안고

by 미지의 세계

수영을 하면서 얻게 된 선물 중 하나는 함께 운동하는 언니들이다. 한 명은 40대, 한 명은 50대로 나와는 아예 연령대가 다르지만, 우리는 거의 매일 락스 냄새가 섞인 푸른 물 속에서 만난다.


서로 수영 자세를 봐주고 혹시나 풀장에 나오지 않으면 '얼른 나오라'며 재촉한다. 운동 후에는 함께 식사도 하고 카페에서 수다를 떨면서 생활의 지혜를 얻는다. 지금 사는 지역 생활에 대한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시골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데에는 언니들의 도움이 크다.


오래 마주 보고 앉아 있다 보면 마음에 쌓여있던 자기 인생 이야기도 하기 마련이다. 그날은 40대 초반 언니의 드라마가 인상적이었다. 대학 시절 학점이 좋지 않았다고 하기에 놀린 게 시작이었다. 보통 대학 성적이 안 좋으면 야구 타율에 빗대 놀리는 경우가 많다. 정말 낮은 학점은 타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메리카노가 든 찻잔을 돌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학점 낮았다고요? 거의 야구 타율이었나요, 언니?"

"그렇다고 봐야지? 겨우 졸업은 했지만."


익숙하게 놀리고 이야길 들어보니 씁쓸한 사연이 있었다. 당시 언니는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생활비를 부모님께 지원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20대에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했다. 찹쌀떡도 가져다 팔고, 새벽에 김밥도 몇 백 줄을 말아 봤단다. 야간 편의점 알바를 비롯해 건당 금액이 높은 아르바이트가 뭔지도 훤하게 알고 있었다.


마음 안 맞는 친구와 살던 방, 바퀴벌레가 날아다니던 가게 옆 방, 그리고 마침내 겨우 마련한 혼자만의 고시원 방.... 고단한 일상을 마치고 누웠던 방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니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20대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단호한 고개짓에서 당시 고단함이 전해졌다.


50대인 큰 언니도 지금이 좋다며 말을 이었다. 역시나 순간 행복했지만 자주 고단했던 젊은 시절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서야 긍정할 수 있는 어려움이 펼쳐졌다. 매일 벌어 온 일당으로 생활을 꾸려가던 날들, 슈퍼에서 자녀 생각을 하며 과일을 오랫동안 매만지다 결국 내려놓아야 했던 순간... 내 일이 아니기에 언니들의 말을 전부 상세하게 옮길 순 없다. 그렇지만 그 인생사들을 들으며 나는 상대적으로 평탄했던 과거를 돌아봤다. 언니들이 대단해 보였고, 마구 위로해주고 싶었다.


"너도 힘들었지?"


50대인 언니가 조용해진 막내를 챙겼다. 그냥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저는 평탄하게 잘 지냈어요. 언니들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언니들에 비하면 나는 확실히 평탄했다. 부모님 도움으로 아쉬움 없이 지냈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필요도 없었다. 적당한 인서울 대학을 나와 무난한 생활 궤도를 따라갔다.


그렇다고 고충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나의 20대는 ‘더 낫다고 평가받는’ 대학 간판을 얻는 데 거의 전부 쓰였다. 다양한 경험 대신 책상 앞에 앉아 영어 공부와 편입 준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학점은 높았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그 시간들이 꼭 강점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대학까지는 “공부 잘하는 게 최고”라며 칭찬하는 말을 듣고 자랐는데, 사회에선 “공부만 했냐”는 비아냥으로 되돌아왔다. 경험이 다양하지 않다 보니 방송국이라는 공간에서 나는 유난히 무던했고, 매력 없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튀려고 시도하다 여러 번 꺾였고, 혼나고, 다쳤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돼?"

"네가 그렇게 날고 긴다고 너를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 것 같니?"


프리랜서라서, 매력을 부각하려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의지가 꺾였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까 불안에 떨어야 했다. 자주 울었고 술이나 마시며 스스로를 연민하던 시간들이었다. 이처럼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는, 그 시절을 굳이 꺼내 말하지 않게 되었다. 더 큰 고단함 앞에서 나의 어려움은 왠지 투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만 그럼에도 밝게 이야기하는 언니들이 있어 마음이 마냥 무겁진 않았다. 충만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다음 날, 우리는 어김없이 푸른 물속에서 다시 만났다. 과거를 읽어낼 수 없는 밝은 표정들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줄지어 팔을 저었고, 다리를 움직였다. 과거에 누군가는 수많은 김밥을 말았고, 누군가는 생계를 걱정했으며, 누군가는 높은 학점을 위해 밤을 지새웠지만 지금은 그저 한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꾸준히 움직이지 않으면 가라앉는 현실을 성실히 지낼 뿐이었다. 서로 위로하고, 놀리고, 웃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다 알지도 못하고 감히 다 위로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같은 온도의 물속에 있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언니들과 샤워를 하는데 문득 각자의 방식대로 단단한 어깨들이 눈에 들어왔다. 맛집 정보나 육아 팁 말고도 언니들이 뭔가 깊은 생활의 지혜를 건네는 느낌이 들었다. '고단한 어제도 결국은 지나간다.' 그 산증인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다음 식사 약속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다시 집에 돌아오는 길,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이 또렷했다. 맑은 눈으로 오늘을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날이었다.

이전 20화변명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