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이 중고여도 마음만은 새뜻하게

가전이 중고여도 마음만은 새뜻하게

by 미지의 세계

인테리어 전쟁


"뭐? 가전을 중고로 사자고?"


거주지를 주제로 한 전쟁이 끝나자, 새로운 다툼이 시작됐다. 일명 인테리어 전쟁이었다. 남편은 냉장고, TV, 에어컨 등 필수 가전제품과 가구들을 중고로 들이자고 말했다. 새 출발을 하는 마당에 헌 걸 들이자니! 오랜만에 남편에게 따져 물었다. 결혼에 들이는 돈이 그렇게나 아까우냐고.

그러면 너는 나랑 왜 결혼하냐고!


"다들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인데 우리 예산 내에선 새 제품을 사기 어려워. 게다가 우리는 수년 뒤에 이사를 가야 하잖아. 풀옵션 빌라로 갈 수도 있고, 다른 아파트로 가더라도 집에 가전이 안 맞으면 또 사야 돼. 얼마나 낭비야."


아아, 그는 아직도 가성비 결혼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었다. 당근 마켓 중고나라를 신봉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이마를 짚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다. 렇다고 그냥 물러서자니 중고 투성이인 집안을 둘러볼 때마다 화가 날 것 같았다. 그와 정말 한 집에서 살 거라면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잠깐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각 공간에 들어갈 가전제품과 가구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돈을 가로 지불해서라도 새 제품으로 사야 할 것들과 중고도 상관없는 것들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일단 침대나 소파 같은 것은 다른 사람이 썼던 것을 쓰는 게 마음에 걸렸다. 또 나에게 꼭 필요한 화장대나 책상은 오래 쓸 것을 감안해 새로 사고 싶었다. 마침 여러 브랜드 회사들도 봄맞이 세일 중이었다.


반면 TV나 냉장고, 세탁기 등은 최신 기종이라면 중고를 써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직장인 두 명이 사는 집, 밖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많으니 예쁜 식기도 포기했다. 탁이나 책장 등은 기존에 쓰던 게 있으니 그걸 활용하고... 그렇게 대략 가닥을 잡고 협상안을 내미니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 딜.


리한 협상안이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았고, 적절한 중고 제품이 제때 나오는 것도 아니서 각종 '인테리어 논란'은 결혼식 전까지 이어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커튼을 사서 달고 있는 내 옆에서 남편이 "너는 소꿉놀이를 참 좋아한다"며 구시렁거렸고, 남편이 TV 받침이라며 무슨 철제 선반을 가져왔을 땐 내가 "오빠는 학창 시절에 미술 점수 빵점이었을 거야"라며 타박하는 ... 아, 물론 그래도 서로 옆에서 도와주기는 했으니 헤어지지는 않았지만.



중고가전을 신혼살림으로.. 그 결과는

중고 가전을 들인 건 성공이라고 봐야 할지, 실패라 봐야 할지 애매하다. 중고 세탁기는 문제없이 돌아갔지만 자판이 아주 조금 들떠서 조만간 다시 사야 할 것 같고, 에어컨이나 냉장고는 문제없이 잘 작동돼 뿌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새로 산 침대와 소파, 커튼은 만족도가 높았는데, 심지어 자린고비 남편도 "이건 참 잘 샀어. 얼마야? 나도 늦게나마 보탤게."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가전을 어디서, 어떻게 구매하고 활용할 지야 각 가정의 선택일 것이다. 우리는 예산에 맞는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도 잘 싸우며 지나온 것 같다.


아, 이렇게 가전을 세팅할 때 한 가지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다. 양가 부모님의 바람과 도움을 적절히 조율하는 일이다. 당연히 부모님들께선 중고 가전을 들이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며, 돈이 없다면 보태주겠다고 하시기까지 했다. 부모님 입장에선 자식들이 돈을 아낀답시고 남이 쓰던 제품을 신혼집에 들이는 게 마음 아프셨을 것이다. 하루는 시부모님 트럭을 빌려 냉장고를 집에 들였는데 어머님이 빈 집을 휘 둘러보신 다음 나를 따로 불러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


"이게 정말 협의해서 한 일이 맞니?

아들이 고집부린 거 아니고?"


고작 5년 사귀면서도 파악한 남편의 고집을, 30년 넘게 봐온 어머님이 모를 리 없었다. 나는 수줍게 웃은 다음 미리 준비해둔 대답을 말했다.


"오빠 덕분에 알뜰하게 준비 잘했죠. 하하하."



반면 우리 부모님께는 가 정면에 나서서, 좀 더 주체적인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이건 우리의 의지이며, 다짐이기 때문에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잘 지낼 수 있다.'며 안심시킨 것이다. 실제 그렇기도 하거니와 중고 구매를 주도한 남편이 우리 부모님께 미움받아봤자 나에게도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난 영 못마땅해."


어머니는 딸 가진 부모답게 좀 더 오래 화를 지만, 이내 새 이불 세트를 해주는 것으로 협했다. 끗하고 하얀 이불을 덮으며 남몰래 조금 울컥했다.


너희를 믿는다고.

하지만 힘들 땐 언제라도 옆으로 기대라고.

우리가 그 정도는 된다고.


4명의 부모가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의 룰 : 행복하게 살기


연애 시절부터 우리는 몇 가지 룰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가 원하는 데이트 방식, 만나는 요일, 자동차 이용 방식, 이트 비용 모으는 일지 다양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처음엔 참 답답했다. 규칙을 만들고 지키는 건 특히 남편이 좋아하는 취미였다. 그는 두 인격체가 잘 살아가려면 되도록 많은 규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나는 되는 대로 서로 배려하며 사는 게 맞다고 여겼다. 니, 어떻게 모든 경우의 수를 다 헤아리는 규칙을 만든단 말인가.


그러나 그를 사랑한 건 나의 일이었으므로, 이해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이해하려다 포기하고, 좋다가도 싫고. 계속 변하는 감정을 곱씹다 보니 어느덧 우리는 햇수로만 5년을 운 연인이 돼있고, 규칙은 어느새 적당히 느슨하고 아늑할 정도로 합의가 돼 있었다.


연인을 위한 규칙 이제 부를 위한 규칙으로 바뀌어야했다. 일단 그동안 각자 해오던 집안일 관련 규정을 신설했다. 청소나 요리, 설거지 등을 나누는 건 쉬웠지만 그걸 집행하는 과정에서 다시 시행착오를 겪었다. 예를 들어 초반에 남편은 허구한 날 '청소기를 안 돌렸느냐'라고 물었다.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괜히 분리수거 함을 뒤적거리며 꼬투리를 잡고.....


그러다 지쳐서 우리는 결국 다시 대타협을 했다. 각자 맡긴 부분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기! 혹시 누군가가 아프거나, 일이 바빠서 맡은 집안일을 못하면 대신해주되, 용돈 같은 보상을 받기! 이런 식으로 말이다. 가족 간에 보상 운운하는 게 정 없어 보인다는 건 알지만, 덕분에 우리는 서로에게 큰 불만 없는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가끔 무심한 듯이 서로의 집안일도 챙겨주며 (물론 보상은 기대하지 않는, 그냥 배려다.) 잘 지내고 있다. 규칙은 규칙일 뿐, 결국은 다, 행복하자고 하는 거니까! 론 여기에도 수많은 대화와 침묵이 있었음을, 굳이 부연하지는 않겠다.


우리 부부가 가족의 틀을 잡는 동안에도

식 날짜는 성큼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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