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장 식순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건, 구체적인 사항을 전부 직접 챙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큰 틀을정리해보니
1)식순을 정하고,
2) 사회자, 주례자, 가족, 스텝 등의 동선을 정리한 다음,
3) 관계자 전부에게 공유하는 게 필요했다.
교회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서 4)순서지도 제작하기로 했다.
결혼이 1주 하고도 조금 남았을 때 부터 영상 업체와 웨딩홀에서 연락이 왔다. 행사가 어떻게 진행될 건지 확인하는 전화였다. 그제야 우리가 얼마나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영상업체에 보낸 우리 결혼식 내용. 처음엔 남편과 연락했는데 '크게 특이사항은 없어요'라고 했단다. 내가 보내준 내용 보더니 "신부님이랑 통화 안했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라고.
웨딩홀 측에서는 내가 원한다면, 사진 작가와 식 전에 미팅을 할 수 있도록 약속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결혼도 처음이면서(!) 스텝도 최소화하겠다고 했으니, 예식장 측에서도 걱정이 됐던 모양이었다. 특히 헬퍼는, 단순히 신부 드레스를 잡아주는 것 외에도 사진 작가와 협의하며 식을 돕는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없으니 더더욱 직접 소통하는 게 나을거라는 얘기였다.
고마운 호의였지만 결혼 준비를 일과 병행해야 했기에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당시 나는 해가 뜬 시간은 직장인으로, 해가 진 후에는 신혼집을 채우는 예비 신부로 살고 있었다. (말이 예비 신부지 택배로 온 짐들을 풀고, 노후한 환경 정리하고, 바닥 청소하고 그랬다.)그래서 그냥 예식장 측이 주변 스텝에 한번 더 확인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식순을 정리하는 거였다.
우리 결혼식은 어떤 모습일까
결혼식, 이라고 하면 필수적인 순서가 있다. 예를 들면 어머니들의 화촉 점화나 신부 입장, 신랑 입장 등등... 그런데 거기에 우리가 하고 싶은 이벤트까지 하려면, 적당히 포기하면서 조율을 해야 했다. 우리는 신랑, 신부가 같이 입장해 사회를 볼 것이었으므로 보통 신랑, 신부 입장 전에 하는 모든 행사들을 먼저 뺐다. 즉 어머니들의 화촉 점화와, 아버지 손을 잡고 걷는 신부 입장 모습은 연출하지 않기로 했다.
말은 쉽게 했지만 이 모든 건 부모님의 양해를 구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딸을 가진 아버지들에게 '신부 입장'이 어떤 의미인지는 익히 들은 바 있다. 딸 아이가 어리거나 미혼이라면 '곧 결혼한다고 아빠 손 잡고 갈 것 아니냐'며 벌써부터 아쉬워하고, 결혼을 하고 나면 '그 애 손을 잡고 걸을 때 얼마나 마음이 이상하던지' 이야기 하며 늙어가는 남자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우리 아빠도 그런 남자이고 싶지 않을까. 다행히 부모님 모두 괜찮다고 해주셨다. 설령 로망이 있었어도 딸이 원하는 대로 해줬을 아빠였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에 신랑 손을 잡고 함께 입장했다.
'이벤트 준비'는 대상자를 고려해서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순서, '이벤트'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겠다. 첫 번째 이벤트였던 퀴즈쇼는 양가 가족들이 우리에 대해 좀 더 재미있게, 실질적으로 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한 이벤트였다. 처음엔 마냥 솔직하게만 접근했는데,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가족임을 생각하면서 수정을 거듭했다.
예를 들어, 남편에 대한 퀴즈를 준비하면서 '신랑이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은?' 이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그러자 그는 '백수' 또는 '자연인 되기' 같은 답을 내놓았다. 왜냐하면 그는 정말 오래 전부터 그렇게 꿈꿔왔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한 일은 최소화하거나 안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는 자유로운 삶!
백수가 되고 싶다는 게 꼭 '가족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 란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걱정이 됐다. 나도 이런 내용을 오해없이 받아들이는 데 5년이 걸렸는데, 우리 가족들에게는 곡해없이 받아들여질까 싶었던 거다.
결국 정리된 언어("아, 경제적 자유를 이뤄서 얼른 은퇴하고 돈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은 거구나?")로 그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그걸 우리 부모님이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게 풀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준비한 질문은 신랑 관련 문제 3개, 신부 관련 문제 3개였다. 상품으로는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준비도 많이 하고, 마음도 정말 많이 졸였던 순서가 그 퀴즈쇼 였는데 나중에 본식 사진을 보니 다들 웃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두 번째 이벤트는 참여한 사람들과 다같이 노래를 합창하는 거였다. 지인 등을 초대하지 않아 축가를 따로 마련하지 못했는데,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마무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가족이 다같이 부르려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노래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고른 노래가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였다. "근데, 혹시 다들 입을 꾹 다물고 노래를 안 불러주시면 어떻게 하지?" 걱정 많은 내가 물었다. 남편이 답했다. "우리 둘이 마이크에 대고 부르지, 뭐." ... 매사 잔걱정이 별로 없는, 태평한 남자와 결혼하는 건 이렇게나 많은 재능이 필요한 일이었다.
스몰웨딩, 이벤트 웨딩은 동선 정리와 내용 공유를 확실히 하자
식순이 어느정도 정해지자, 당일 행사가 어떻게 진행될 지 동선도 정리해야 했다. 우리의 경우는 애초에 등장할 때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회자라면 식 전에 자리에 앉아달라고 안내 멘트도 하고, 행사 시작도 해야 했다. 그러니 사회자이자 당사자인 둘은 시작 전부터 관객들에게 오픈돼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자니 뭔가 심심했다. 자고로 행사는 시작과 끝이 제일 중요한 법인데... 고민하던 끝에 남편이 먼저 문 앞에서 간단히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신부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등장하기로 했다. 양가 가족들에게는 미리 자리를 말해주어서, 식 전에 앉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결혼식 당일날 진행 스텝들에게 다시 한 번 이야기 하기로 했다.
말이 쉽지, 이 모든 합의는 수많은 대화와 침묵으로 완성됐음을 거듭 밝힌다.
내 결혼식을 직접 기획해 본 소감
직접 결혼식을 기획하니 좋았던 점이 2가지 있다. 우선 우리 부부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가족들께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함께 손 잡고 씩씩하게 입장한 것처럼 앞으로 어떤 일을 맞닥뜨려도 둘이 손 꼭 잡고 잘 해낼 거라는 걸 은연중에 전하고 싶었다. 또 함께 사회를 보는 것처럼 서로 대화하며 쿵짝 잘 맞게 살겠다는 뜻도 전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추억이 많다는 점이다.결혼식 시작부터 끝까지를 남편과 둘이 고민하고 계획하다보니 대화를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몰랐던 모습을 새로 알게 됐고, 큰 미션 앞에서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알 수 있었다. 팀플이니까, 당연히 건전한 싸움도 몇 번 했다. 그러나 서로 차이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좁히는 과정 덕분에 우리는 결혼 후 좀 더 돈독해졌다.
결혼식이 끝난 날 저녁이 생각난다. 신혼여행은 내일부터 떠날 거였고, 오랜 연인 답게 로맨틱함은 없었다. 그저 오랫동안 신경써온 행사가 끝나서 홀가분했다. 같이 맛있게 저녁을 먹고, 이 믿음직한 파트너와 나란히 누웠을 때 큰 안온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