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그 이후

"결혼식 그거,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by 미지의 세계

결혼식을 허례허식이라 부르며 거부하던 남자와 버진로드를 걸었다. 그게 세 달 전 일이다. 새삼 감격스럽다. 남편은 '결혼'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는 모든 일을 거의 다 거부해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견례 전부터 틈틈이 '혼인신고만 하자'며 나를 설득했고, 꼭 행사를 치르고 싶다면 동네 국밥집에서 뜨끈~한 국밥 먹으며 결혼하자고 얘기하던 사람이다. (사실 지금도 그걸 못해서 아쉽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예복도 원래는 입고 싶지 않다고 했고, 백번 양보해서 결혼식을 하더라도 가까운 가족들만 모시자고 했었는데... 그런 남자와 어찌어찌 결혼식을 잘 치렀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는 게 뿌듯하다.


물론 이렇게 이야길 하면, 겨우 두세 달 살아놓고 '잘 산다'라고 하느냐고 웃으실 것이다. 특히 3,40년 넘게 부부로 살아온 결혼 선배들은 말한다. "그래, 신혼이라 좋지? 좀 더 살아봐."... 분명, 우리보다 일찍 결혼생활을 경험한 분들 말이니 맞을 것이다. 6개월 뒤에 '결혼을 후회하는 이유' 뭐 이런 글을 쓸지 누가 알겠는가. 다만 그건 미래의 영역이니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혹시 '6개월 뒤의 나'가 이 글을 본다면, 추가 후기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결혼식 관련 글을 최근까지도 썼지만, 사실 결혼식 자체는 이제 기억도 흐릴 정도로 과거 일이다. 대신 이제는 결혼 생활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점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남편과는 5년 간 만난 연인이라 결혼식 전과 후가 다를까- 스스로도 궁금했었는데 확실히 결혼 이후는 대화 주제부터 다르다. 갈수록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 복잡한 주제들을 토론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연인일 때는 '이번 주말에 뭐 할까',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만나는 것이 적당한가' 이런 얘길 했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내 인생관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내 주장을 별로 고집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생활비를 얼마나 모아서, 어떻게 쓸 것인가'부터 해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무엇인가', '각자가 생각하는 워라밸(일-삶의 균형)은 어떤 모습인가', '공동 재산을 어떻게 투자하고 관리해야 하는가' 뭐 이런 이야기를 날마다 하고 있다. 토론의 결말에 따라 앞으로의 생활이 바뀔 수 있으니 예민할 수밖에 없다.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서로가 생각하는 이상향을 말하기 마련인데, 둘 다 이상향이 뚜렷한 편이니 그 사이의 간극을 발견하고, 그걸 좁히려 애쓰게 되고, 결국 안 되면 (약간 화가 난 상태로) 어디까지 개인플레이가 가능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저녁밥을 먹으며 시작한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질 때도 있다. 가끔은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너는 다 좋은데, 토론 지구력이 쓸데없이 좋다!" 어느 날 밤인가는 남편한테 꽥 소리 지르고 잠들어버린 적도 있다.


이런 지난한 과정과 대비되게 화해는 심플하다. 결국은 한참 씩씩대며 말이 없다가, 감정을 정리하고, 서로 안아주며 이해해주는 척 한 다음, 다시 새로운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팀플레이, 파트너십이 싫지 않은 걸 보면 우리가 잘 맞기는 한가보다. 서로 오해하지 않는 것도 큰 장점일 거다. 아래 두 문장을 전제로 한 수많은 대화들 덕분이다.



1) 남편도/아내도 나쁜 의도로 저렇게 얘기한 건 아닐 거야.
2) 사소한 다툼도 결국, 같이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야.



우리는 어떤 부부가 될까.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같이 행복하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믿었으면 좋겠다. 다투더라도 오해하지 않고, 지금처럼 금방 화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서로를 존중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면 좀 더 오랫동안 부부로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선배 부부들한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결혼식, 그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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