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드디어 그날

210411 일요일 오후 2시

by 미지의 세계

날씨가 화창했다. 적당히 선선한 바람도 불어왔다. 햇빛은 좀 강했다. 등에 땀이 살짝 맺혔다. 사실 그건 내가 종종거리며 빨리 걷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드디어 결혼을 하는구나!


우리 결혼식은 일요일 오후 2시에 예정돼있었다. 식장에선 12시까지 오라고 했지만 헤어, 메이크업 등을 하려면 좀 더 서둘러야 했다. '점심은 어쩌지...' 생각하면서 집에서 두유를 챙겼다. 틈틈이 얼굴 근육을 풀면서 미리 예약해둔 메이크업 샵에 날아가다시피 도착했다.


결혼 일주일 전

머리카락을 잘라버린 사연

평소에도 직업 특성상 (프리랜서 방송인) 메이크업을 받았으므로, 결혼식 날이라고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몇 년간 얼굴을 다듬어준 선생님과 신나게 웃으며 대화했다.


"오늘 머리는 좀 차분하고 캐주얼한 느낌으로 할까요? 머리 장식은 여기다 올려달라고 하려고요."

"그러면 여기에 이렇게 고정을 해둘게요."


짧은 머리라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지만 머리카락 밑단을 올릴 거냐 ("발랄한 신부 느낌 어때요?"), 내릴 거냐("역시 차분한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로도 한참 이야기했다. 전문가에게 헤어, 메이크업을 받을 때는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긴장이 풀리는 효과도 있고 잘 어울리는 색조 화장, 스타일, 보완하고 싶은 신체 사항 등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자주 쓰는 화장품, 스타일을 사진 찍어가서 보여주는 것도 좋다. 중요한 날일 수록, 그리고 예행연습을 해보지 않은 것일수록 여러 가지를 챙겨 두는 게 실패를 줄이는 길이다.


"근데, 왜 결혼식 1주일 전에 머리를 잘랐어요?"


댕강 잘린 나의 똑 단발을 보며 메이크업 선생님이 한숨을 쉬었다. 방송국 공채 시험을 볼 때나, 결혼식을 할 때처럼 이미지가 중요한 행사가 있다면 적어도 2주 전에는 어떠한 스타일 변신도 하면 안 된다. 스스로도 낯선 모습보다는 익숙한 모습일 때 조금이나마 더 나아 보이는 스타일링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덥수룩한 머리를 견딜 인내심이 없었다.


결혼 1주일 전쯤 어떤 대화를 한 것도 영향이 있었다. 결혼식은 인생 최대의 이벤트기 때문에 가장 예쁜 모습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신부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그런 게 어딨어!' 편견이 조금이라도 섞였다 싶으면 무조건 반작용을 하는 사람이라, 바로 그날 저녁 머리를 똑 단발로 잘라버렸다. 남편은 바뀐 헤어스타일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다가, 내가 이 모든 이야길 하자 웃으며 한마디 했다.


"성격 한번 더럽구먼."


"아, 그래서 예쁘다고 어떻다고!" 고 싶은 말을 섞어 소리쳤다. 남편이 무심한 듯 답했다.

"너는 너지, 뭐. 그냥 너 같아." 흠, 기대한 답변은 아니지만 대충 마음에 들었으니 넘어간다.


.... 무튼 똑 단발엔 런 사정이 숨어 있었지만 그냥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 1주일 정도면 자리 잡을 줄 알았어요. 하하."


할 수 있는 최상의 모습으로 꾸미니 결혼 2시간 전이었다. "잘하고 오세요." 메이크업 선생님의 응원을 뒤로한 채 남편을 태우러 신혼집으로 갔다. 이쯤 되니까 슬슬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결혼 1주일 전 시원하게 잘라버린 똑단발... 큰 행사 전엔 이러시면 안됩니다..


모든 대화와 행

결혼 생활의 예고편었던 거야

메이크업이 너무 진하다며 구시렁대는 남편을 애써 무시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예식장에 가는 길이었다. 정신없는 신부가 반지를 빼먹어서 남편은 한번 더 신혼집에 들러 반지를 가져다줬다. 마음 진정도 할 겸 일주일 전부터 듣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켰다. '비밀의 화원', '청혼', 'Marry me', 'Marry you'..처럼 '결혼' 하면 떠오르는 음악들이었다.


"오늘 결혼식이라서 이런 노래를 골랐어. 어때, 마음에 들어?"


무던한 남편과 의미부여 좋아하는 나. 우리는 평소처럼 내가 사소한 데 의미부여를 하고, 그 의미를 남편에게 알려주고, 남편이 적당히 웃어넘기는 패턴을 반복했다.


"아, 그런 거야? 넌 참 인생을 재미있게 산다."


감탄과 귀여워하는 마음이 같이 섞인 문장. 이 문장을 평생 들을 생각을 하니 설렜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기도 했다. 래, 평생 해도 질릴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 대화 패턴이 이거였지. 새삼 우리의 지난 순간들이 결혼 생활의 예고편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결혼 노래를 둘이 엉망진창으로 따라 불렀다. 그리고 곧 예식장 주차장에 들어섰다.


그 어떤 것도 나의 결혼식을 망칠 순 없다

이후 간은 정신없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일단 예복으로 갈아입고 나니까 식 전까지 사진을 찍어야 했다. 영상 제작을 해주는 두 분과 예식장 측 사진사 한 분, 총 세 분이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주셨다.


우리는 이렇게 오랜 시간 계속 사진을 찍을 줄 몰랐으므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결혼식 순서도 특이한 데다 행사 스텝을 최소화로 해달라고 한 상태여서 정리할 부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전날까지도 자기가 스텝 몫까지 한다며 자신 있어했지만, 나와 함께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 앞 팀 사진 촬영이 늦어지면서, 하객들은 입장도 못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사진을 다 찍자마자 부랴부랴 스텝들을 찾아다니며 하객 입장을 독촉했다. 그리고 스텝들을 찾아다니며 행사 진행순서를 공유했다. 그 모든 게 10분 내로 정리됐고, 이후부터는 부모님과 로비에서 하객들을 맞이했다.


훗날 예식장 실장님이 말해주신 게 생각난다.

- 제가 본 신부 중에 제일 씩씩했어요.


로비에는 화환들이 죽 늘어서 있어 약간 어리둥절해졌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화환을 받지 않겠다고 명시했기 때문이었다. 전에 결혼한 분들 것일까 생각했지만 우리 화환이 맞았다. 내 이름으로 온 화환이 2개 (현 직장에서 무조건 나가야 한다며 온 것, 그리고 가족 중 한 분이 보내주신 것), 남편 이름으로 온 화환은 10여 개 정도 됐다. 전부 시아버님 지인들의 보내주신 거였다. 결혼식에 참석한 손님 수, 화환 수 이런 걸로 싸운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또 역시나 결혼은 우리만의 행사가 아니라는 것도.....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말없이 얼굴만 붉히고 있으니 내 기분을 유일하게 눈치챈 엄마가 다가와 위로해줬다.


하객은 우리가 예상한 수보다 (50명) 훨씬 많은 수인 100여 명이 왔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예식장 측에서 식사를 넉넉히 준비했다는 점이다. 보통 예식장에선 보증 인원에 두 배 정도 되는 식사량을 준비한다고 했다. 이쯤 되니 그냥 성공적인 결혼식은,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가짐으로 완성되는구나 싶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화 내면 어쩔 것인가. 이미 벌어진 일들인데! 그 어떤 것도 내 결혼식을 방해할 순 없다. 긍정적인 마음만 있다면.


그 뒤로는 즐겁게 하객들과 인사도 하고 나름 잘 치러낸 것 같다. 마지막 정산을 마치고 나니 저녁 5시쯤이었다. 가족들과 인사하고도 왜인지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천천히 예식장을 빠져나왔다.


친구들이 결혼식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내게는 결혼식장 사진이 많지 않았다. 동생과 가족들이 보내준 사진들을 SNS에 공유해 소식을 전하곤 남편과 소박한 저녁을 먹으며 쉬었다. 허무하거나 후련함, 그 사이의 감정은 자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나는 남편 옆에 누워 손을 잡았다.


우리 이제 결혼도 했어. 잘 살아보자.

내가 말했다.

그냥 지금처럼 잘 지내면 되지.

남편이 손을 꽈악 잡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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