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티 컬러 - 파란색 분위기미인
이해수(놀랄 해駴, 빼어날 수秀)
파란색 분위기 미인의 인생관
첫인상에 관하여
이별을 연습합니다
파란색 그녀는 대체로 부드럽고 상냥한 모습이지만, 때때로 까칠한 면을 살짝 내비쳐서, 어려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파란색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랑의 속성을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영어권에서 자주 쓰는 관용 표현 중에 ‵Feeling blue(필링 블루)′가 있는데, 아쉽게도 이때 쓰인 파랑은 우울하고 슬픈 감정을 대변하는 파랑이예요. 파란색 음식을 보면 자연스럽게 독이 연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란색을 지나치게 가까이하면 점차 피폐해진다네요. 듣고 보니, 바다가 아무리 좋다 한들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으라고 하면, 진짜 우울해지겠네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바쁜 와중에 바다를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었던 거지, 영원히 바다만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던 겁니다. 이러한 파랑의 속성 때문에, 파란색 그녀는 본의 아니게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어쩐지 죄스러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자신의 그런 면모를 고려하다 보니, 누군가가 다가오면 반사적으로 슬쩍 뒤로 물러서는 사람, 활발히 어울리는 쪽보다는 무심히 바라보는 쪽의 사람이 되는데요. 그렇게 바라보는 쪽에 오래 머물다 보면, ‘모두가 적당히 폐를 끼치며 사는구나’하고 깨닫게 돼요. 그러면 이제 좀 편하게 경계도 느슨하게 하고 적당히 허물도 드러내고 하면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파란색 그녀는 전혀 다른 결론을 냅니다. 어차피 완전무결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피차 가엾게 여기고 각자의 구린 면은 각자가 감당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거라고, 말이에요.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것도 부담스러워하고, 자신에게 의미 없는 타인에게 관심을 쏟아야 하는 상황도 경계해요. 그저 약속한 시간에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약속한 과제를 수행하는 것으로 만족하자는 입장이에요. 그러다 인연이 다하면 모질게 해코지하지 말고 '잘′ 보내주는 것까지도 약속에 포함돼요.
이러한 파란색 그녀에게 각별한 사람이 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녀와 각별해져 보면 그녀의 진가를 알 수 있을 거예요. 파란색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정화 능력′이 있다는 점이에요. 바다의 소금이 오염물질을 흡착하듯 파란색 그녀의 무심함이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혀줘요. 주인공과 악역이 선명히 대비되는 드라마가 있는 반면, 등장인물 중 누구도 악역이라고 할 수 없는 인간의 이중성만 드러내는 드라마가 있잖아요. 파란색 그녀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후자의 드라마와 같아서, 잠깐씩 ‘나만 쓰레기인가’했던 자책과 후회가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듯해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파란색 그녀는 자기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투명한 조언을 아끼지 않아요. 살다 보면 없다가도 생기는 게 고민인데, 그럴 때 조언을 구하면 자꾸 비난의 뉘앙스까지 섞어서 주니까 받기가 싫은 거잖아요. 근데 파란색 그녀의 조언은, 뭐랄까 평양냉면의 맛 같달까요? 처음엔 뭔 맛(소리)인가 싶지만 이내 인생 맛(조언)으로 등극하고야 마는, 그런 깔끔하고 담백한 조언을 줄 줄 알아요. 이렇듯 만나면 가볍고 산뜻해지는 사람. 가끔씩 감동적일 만큼 깊은 속정을 내보이는 사람. 그러니까 자꾸만 그리워지는 사람 — 파란색 분위기 미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