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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us fugit

아픔은 가고, 그리움은 사랑으로 남아서

by 손주영

평소와 다를 것 없었던 금요일 아침. 새벽 찬 공기를 크게 한 숨 들이키며 집을 나섰다. 회사에 도착해서 여느 날 같이 사무실에 들어서니 내 책상 위에 가득 풍선 장식과 가렌다가 걸려있었다.

‘Happy Birthday’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니지만, 2일 뒤인 주말에 생일이 있다보니 직원들이 미리 축하해준다고 걸어 놓은 모양이다. 업무 시작시간이 가까워오고, 분주하게 출근하며 생일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는 동료들에게 가벼운 미소로 화답했다.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생일날에는 어딜가든 늘 내가 주인공이 되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축하 인사도 많이 받고, 기분 좋은 축하 선물도 받을 수 있다. 나는 예전부터 선물이 정말 좋았다. 내용물을 바로 알 수 없도록 가려놓은 포장지 덕분에 설렘은 두 배가 되고, 기대감도 두 배가 된다. 과연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쉬운 게 있다면, 어릴 때는 생일 뿐만 아니라, 어린이 날이며 크리스마스 같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이제는 대부분 선물을 준비해서 기쁨을 줘야하는 날이 되었고, 내가 선물을 받는 날은 유일하게 내 생일만 남았다.

전에는, 선물이라 하면 옷이나 신발처럼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보통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아내도 내 생일이 다가오면 늘 필요한게 무엇인지? 갖고 싶은게 무엇인지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내가 살아오면서 선물이라는 것에 대해 좀 다르게 이야기를 해주셨던 분이 계셨다.

내가 대학생 때, 지금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에 그때는 내가 교회에 등록한지 얼마되지 않은 새신자였던 때가 있었다. 교회 청년부에 등록하고 신앙생활을 막 시작했으나, 캠퍼스 생활을 하며 여전히 세상 속에 살아가던 나에게 늘 아침마다 문자로 말씀 한 구절과 묵상을 보내주셨던 분은 그 당시 내 여자친구의 어머니, 그러니까 지금 나의 장모님이시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무수한 말씀구절과 묵상은 지금 모두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마다 내가 하루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감사한 버팀목이 되었다. 얼마 전, 사랑하는 어머님을 천국으로 떠나보내면서 이때의 일들이 기억나 그 메세지들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당시엔 스마트폰이 아니었고 폰을 교체하면서 주고받았던 메시지들을 따로 남겨두지 못해서 아쉽게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특별하지 않았던 하루에 받았던 메시지 하나가 아직 마음에 남아있다.

그날은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와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화창한 날이었다. 아직 정류장까진 거리가 먼데, 내가 타야할 버스는 이미 저 멀리 정류장에 멈춰섰다. 결국, 버스를 놓치고선 ‘최악의 하루 시작이군’하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그때 바지 주머니 속 핸드폰에 문자를 알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어머님이 보내신 묵상 메세지였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오늘을 그저 선물로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날 결국 내가 학교를 잘 갔는지,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런 것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이날 어머님이 주신 이 묵상과 짧은 기도는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매일 감사할 수 있는 이유와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살아갈 버팀목과 같은 힘이 되어준다. 때로 힘든 일이 있고, 그로 인해 ‘오늘 최악’ 이라고 스스로 고갤 떨구다가도 이 메세지를 기억하며 하루를 나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어머님 없이 맞이하는 내 첫 번째 생일날.
축하받고 싶은 마음보다 그리움이 먼저 앞선다.

하루 종일 그렇게 많이 들었던 “생일 축하해.” 라는 한마디가 더 그립다.
그럼에도 어머님이 보내주셨던 그 메세지에 담긴 마음처럼 선물로 받은 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야지. 아팠던 마음은 시간이 흐르듯 흘러가겠지만, 그리움은 사랑으로 곁에 남아 항상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리라 믿는다.


Tempus fugit, amor m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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