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크라우스 <사랑의 역사>
사랑이라고 부르는 순간, 늘 사랑이 되었다. 그리고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려 보아도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날은 난생 처음 영화관에 간 날이었다. 그때가 초등학생이었던가, 유치원생이었던가. 아직 한국어도 서툴어 더듬거리던 나는 부모의 욕심인지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더빙판이 아닌 자막판을 보게 되었고 자막을 따라가느라 바쁜 그 와중에도 눈길을 뗄 수 없는 장면을 만났다. 붉은 빛을 띤 머리칼이 잔바람에 흔들리고,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근육과는 대조되는 자상하고 한없이 여린 눈빛. 사랑스러운 소꿉친구를 바라보며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은 그 눈빛에 어린 나는 개념도 모르던 시간의 상대성이론을 잠시나마 경험했다. 그 눈빛 뒤로 주인공과 히로인의 하모니가 청량하게 어우러져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쉽사리 잠에 들 수 없었고 그 곡은 내 인생에서 손꼽는 곡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내 첫사랑은 심바가 되었다. <라이온 킹>의 그 심바 맞다. 그래, 어흥 사자. 그것도 2D 사자. 그 뒤로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구입하고 테이프가 늘어져 냉동실에 넣어야 할 때까지 (늘어난 테이프를 냉동실에 넣으면 다시 원상 복구된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습기를 제대로 차단하지 않아 나의 비디오테이프는 처참하게 돌아와야만 했다.) 돌려보았고, 여름밤마다 주제가를 들었으며, 이어 나왔던 <라이온 킹2> <라이온 킹3>는 물론이고 실사영화와 뮤지컬까지 섭렵했다. <라이온 킹> 외에 다른 시리즈에는 큰 감흥이 없었지만 순전히 심바의 눈빛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다.
사랑에 빠졌다기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에 빠진 자의 눈빛이 가진 강력함을 알게 되었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나는 사랑에 빠진 자의 눈빛을 좋아했다. 다만 오히려 그 눈빛이 나를 향할 때면 한밤의 출렁이는 바다를 보는 것처럼 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에 ‘나 외에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 대상은 화면 속에 있다가, 책 속에 있다가, 가끔은 현실 속의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는 사람이 되었다가, 친구가 되었다가, 아주 드물게는 스스로가 되기도 했다.
쌍방 소통이 아닌데 이것을 사랑으로 꼽아도 될지 많이 고민했다. 어느 날은 그게 사랑이었다가도 어느 날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이미 사랑하고 있다고 납득하면서도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고 사랑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모든 것을 사랑하다가도 사랑이란 게 이렇게 가벼운가 싶어 사랑의 기준을 생각해 보다가도 이내 머릿속에서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다.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뜨거웠다가 미지근했다가 내 사랑의 역사는 제멋대로 편집되기 일쑤였다.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는 께름칙한 역사. 내 사랑의 역사를 연표로 그려낸다면 아주 못미더운 그래프가 완성되겠지. 그만큼 내 사랑은 쉬웠고 어려웠다.
하지만 변죽을 울리는 내 사랑 속에서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잠 못 드는 밤, 어두컴컴한 거실에 가만히 앉아 가족들 몰래 헤드폰을 쓰고 영화 OST 속을 헤매듯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던 시간. 낯선 나라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며 나도 모르게 허밍 하던 시간…….
시간이 흐르면 무엇이든 색이 바라고 흐릿해지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시간이 흘러도 또렷하고 생생해지고, 가끔은 그 순간이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들이 있다. 무수한 사랑들이 덧칠해지고 더해지고 기워져 너덜너덜해진 내 사랑의 연표는 아무도 읽을 수 없겠지만 그 불변하는 짙은 색 과거들을 나는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아마도 이 연표는 언제 시작하고 언제 끝났다는 시기로 나눠져 길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에 덧입혀져서 두꺼워지고 짙어지는 것이겠지.
나의 결혼식 축하 연주로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를 부탁했던 것은 비밀 아닌 비밀.
내 사랑의 기원은 언제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