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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Jun 23. 2024

3화 조금 덜 열심히

왜 태극권?


아침에 일어나니 승모근과 등어깨 주위가 아릿하게 아파왔다. 특히 승모근 쪽은 간밤에 싸움이라도 한 듯 찌르르한 통증이 느껴졌다. 근육이 뭉친 것이다.

고작 느린 스트레칭 좀 한 걸로 근육이 뭉칠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의외였다. 평소 격하게는 아니라도 나름의 운동을 거의 매일 하는데도 그랬으니 의외일만 했다. 지금껏 제한적이고 습관적인 움직임만 반복했다는 말일테다.

생각해 보면 (아주)예전엔 몸이 참 가벼웠더랬다. 달리고 뛰고 구르는 게 어렵지 않았다. 유연성도 좋았다. 앞으로 옆으로 다리도 쭉쭉 늘어났고 제법 아크로바틱 한 기술 몇 가지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가며 서서히 움직임이 줄어들면서 내 몸은 굳어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몸의 자유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구속된 자유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굳은 목과 어깨, 틀어진 골반 등이 '정상'이 된 것이다. 나는 어느새 자발적 죄수가 돼있었다.




스트레칭을 배운 후 다음 수련일까지 꾸준히 복습을 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정도는 하였다. 단순한, 그러나 잘 되지 않는 동작이지만 들었던 내용을 되새기며 몸의 굳어있는 부분과 틀어진 부분을 느끼며 되도록 힘을 쓰지 않으려 집중했다. 수련관에 가서도 몇 안 되는 동작들을 쉬지도 않고 계속해 반복했다. 사부님이 다른 분들을 가르칠 때도 했고 보지 않을 때도 했고 볼 때도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사부님은 이렇게 얘기했다.

"참 열심히 하시네요" 


그랬다. 열심히 했다. 팔을 돌리고 목을 돌리며 몸에 집중하고 동작에 집중하며 느낌을 알려 애썼다.(물론 잘되진 않았다.) 그런데 사부님이 말한 '열심'엔 좋은 뜻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만 담겨있는 건 아니었다. 행함에 과도한 집중을 함으로써 불필요한 힘을 너무 많이 내고 있다는 뜻도 담겨있었고 처음 쉬운 것부터 무리한 힘을 내면 과정이 진행되면서 점점 어려워지는 부분에 가서는 정작 필요한 힘을 내지 못한다는 뜻도 담겨있었다.

사부님의 말을 들으며 나는 문득 나의 '열심'이 잘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살아온 세계는 '잘함의 세계'였고 '열심의 세계'였다.

남보다 착해야 했고, 남보다 성적이 좋아야 했고, 남보다 일을 잘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열심히 해야 했다. 남보다 잘하기 위해, 또 비난받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러니 나의 열심은 결국 좋아서 하는 열심이 아니라 억지로 하는 열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굳은 몸이 정상이라 인식하듯 억지가 곧 열심이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불필요한 힘이 넘쳐날 수밖에.

사부님은 다시 이렇게 얘기했다.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시면 됩니다. 하다 보면 좋아질 겁니다"


열심은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에서 나와야 한다. 자연스러움은 곧 부드러움이다. 하다 보면 좋아지고, 좋아지면 열심히 하고, 그러다 보면 잘해지기도 하리라. 그러니 자연스러움은 열심에 앞서고 부드러움은 힘에 앞선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은 태극권 이치의 바탕 중 하나인  '노자'의 사상이기도 하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했다.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막부지 막능행(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것을 천하가 모두 알건만 그 이치를 능히 행하는 사람은 없다"


'유능제강(柔能制剛)', 혹은 '유지승강(柔之勝剛)'에서 '유(柔)'는 자연에 순응해 부드럽게 흐르고 움직인다는 것이고 '강(剛)'은 자연을 이겨내려 버티고 밀쳐낸다는 것이다.

나의 열심은 '강(剛)'이었다.


나는 좀 덜 열심히 해도 될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건 힘을 내는 게 아니라 힘을 푸는 것일 듯하다.

남보다 잘하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는 타인보다 나아지려는 게 아니라 '나'보다 나아지려는 것이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진 '오늘의 나'.

그렇기에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질 '내일의 나'.

그렇게 오늘과 오늘, 지금과 지금이 쌓이면 어느 순간 많이 달라진 오늘, 많이 달라진 지금이 될 것이다.

나는 그저 그 과정을 즐겁게 보내면 되리라.


북한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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