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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Jun 16. 2024

2화 내 몸인 듯 아닌 듯 니 몸 같은 내 몸

왜 태극권?


드디어 수련일이 되었다. 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회사를 조금 일찍 나와 수련관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수련관으로 가던 중 문득 (1) Total Surrender가 떠오른다. 완전한 내려놓음. 무엇을 배우게 될지 모르지만 무엇을 배우던 아집을 내리고 배워보리라 마음먹는다.


수련관이 있는 건물로 들어서니 계단 벽면에 붙어있는 태극권 붓글씨가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서예는 까막눈이라 예기(藝技)를 품하진 못하지만 휘돌아 흐르며 멈췄다 쓰여지는, 그러나 중단되진 않는 서체가 마음에 든다. 아마도 글씨를 쓴이는 온몸으로 저 글을 썼으리라 지레 짐작해 본다.




스트레칭


첫날 내가 배운 것은 스트레칭이다. 순서는 위에서부터 시작해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니깐 목, 어깨, 허리, 무릎, 발목 순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바르게 서서 천천히 목을 돌리고 어깨를 돌리며 허리와 무릎, 발목을 돌린다. 골반과 척추도 돌리고 관절과 힘줄과 근육도 구부리고 펼치며 풀어준다. 동작은 쉽다. 그런데 제대로 하긴 어렵다.

스트레칭은 몸을 쓰는 운동 어디에서든 한다. 어디 운동뿐이랴.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직장도 많다. 학교도 마찬가지고 군대도 그렇다. 그만큼 생활 속에 밀접하게 들어와 있고 가장 기본이 되는 움직임이 스트레칭이다. 그렇기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무엇에서든 기본과 기초는 항상 중요하니깐. 또한 어디서나 흔히 접할 수 있기에 친숙하다. 하지만 친숙한 만큼 간과하기도 쉽다. 몇 번은 진지하게 하다가도 어느 순간 대충대충 넘어가버리는 게 또한 스트레칭이다.

하지만 스트레칭은 중요하다. 부상 예방은 물론 바른 움직임을 할 수 있게 도와줘 몸의 움직임을 보다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 준다. 몸을 쓸 때 스트레칭의 유무가 처음엔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아니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1조 분의 1만큼의 차이라도 차이는 차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움직임이 쌓일수록 1조 분의 1은 1조 분의 10이 되고 100이 된다. 작은 낙숫물이 돌을 뚫어내듯 아무리 작은 간극이라도 시간의 흐름과 횟수가 더해지면 결국엔 큰 격차를 만들어내게 된다. 스트레칭이 없는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비틀어진 자세를 만들고 가동의 범위를 제한한다. 그렇게 서서히, 그래서 눈치채지 못하게 몸이 굳어 가는 것이다. 스트레칭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나 역시 스트레칭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대충 팔 몇 번, 어깨 몇 번 돌리고선 스트레칭을 했다라고 뭉뚱그린다. 왜 그럴까? 연습보단 실전을 중요시하는 스타일이라서?.....란건 변명이고 실은 귀찮아서다. 중요하다 생각만 할 뿐 귀찮아서 하지 않은 것이다. 당장의 변화가 없으니 괜찮다고 여기고 습관대로 움직이려는 것이다. 그 습관이 점점 나빠지는 것도 모른 채.

평소 이렇게 몸을 쓰고 있었으니 스트레칭이 제대로 되겠는가? 몸 따로 마음 따로라 간단한 동작 하나 따라 하기도 어렵다. 목을 돌리려는데 이놈의 목에 풀을 멕였는지 당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깨를 돌리려는데 잔뜩 굳은 어깨는 몸과 등과 하나 되어 덜그럭 거리기만 할 뿐이다. 나는 깨끗한 원을 그리며 몸을 돌린다 생각컨만 실제 내 몸은 그저 기우뚱대고 있었다. 몸의 균형도 맞지 않고 자세도 불균형하다. 씩씩하고 남자다운 나의 자랑스런 팔자걸음은 씩씩해서도 남자다워서도 아니라 그저 골반이 틀어져 있어 그랬던 거였다.


'아 나는 도대체 내 몸뚱아리를 어떻게 관리해 왔단 말인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

평소 되도록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 했고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착각'이었다.

내 몸인 듯 아닌 듯 니 몸 같은 내 몸이 바로 내 몸이었다.

참으로 반성하는 바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사부님이 괜찮다고 한다. 하다 보면 서서히 고쳐질 거라고.

그 말을 믿는다. 살아간다는 건 곧 나아진다는 믿음이니깐.




그런데 태극권의 스트레칭은 뭐가 좀 다를까?

몸을 쓰는 어디에서나 있는 스트레칭과 차별되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그런 것 같다. 몸을 돌리고 구부리고 펴고 늘이는 동작은 매한가지지만 그 의미와 기능엔 태극권만의 모습이 있다 여겨진다. 태극권의 스트레칭은


우선, 천천히 한다.

몸의 부하를 느끼며 불편한 곳은 어딘지, 또 굳은 곳은 어딘지 등을 살펴보고 그 부분에 좀 더 집중한다.

가령 나의 경우 목을 돌릴 때 우측보다는 좌측이 더 돌리기 힘들었다. 우측 방향으로 목을 젖힐 때면 우측 승모근(목 부분)과 좌측 승모근(등 부분), 좌측 광배근 부분이 꽉 당기며 조이는 느낌이 들며 마치 목에 브레이크가 걸린 양 잘 움직이지 않았다. 또한 최근 일 년간 경추와 그 부분의 근육들이 굳어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고 늘 뻐근했다.

스트레칭을 천천히 진행하는 이유는 이처럼 굳어진 부분과 비틀어진 부분을 스스로 잘 느껴보기 위해서다. 그럼으로써 그 부분을 풀어주는데 집중하고 몸의 바른 자세와 균형을 회복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 바른 몸에서 바른 움직임이 나온다. 태극권의 스트레칭은 단지 운동 전 몸을 풀어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몸의 균형을 바로 잡는 역할도 한다.


또한 힘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상 힘을 쓰고 애를 쓰면서 살아간다. 힘을 내서 물건을 들고, 힘을 내서 운동을 하고, 힘을 내서 버티고, 힘을 내서 이겨내려 한다. 그래서 우리의 디폴트 모드는 '힘을 쓴다'이다.

가벼운 움직임인 스트레칭을 무슨 힘으로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해보니 나는 힘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팔도 힘차게 돌리고 허리도 힘차게 돌렸다. 움직임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근육의 굳어진 부분에선 힘으로 그 지점을 통과하려 했다. 마치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놓은 채 액셀을 밟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사부님의 지적을 받기 전까진 힘으로 스트레칭을 하는지 미처 몰랐다.

그럼 스트레칭이든 뭐든 힘으로 몸을 움직이지 뭘로 움직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래 힘이 아닌 뭘로 몸을 움직이란 걸까? 사실 아직까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힘을 쓰며 억지로 몸을 움직이려 한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힘 아닌 무엇으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지는 아직 몸의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부님의 지도 말씀을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 흐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트레칭,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만큼 스트레칭을 쉽고 단순하다 생각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니 몸의 움직임이라는 것 자체가 그리 쉽고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팔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팔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몸은 알지 못한 것이다. 습관대로만 몸을 움직이며 지냈던 것이다. 스트레칭이 뭐 대단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경험해 보니 대단한 것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어떠한 대단한 움직임도 결국 기본과 기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작은 움직임일지라도 결국 대단한 것이고 중요한 것이다.


그래도 역시 몸으로는 아직 모르겠다. 자주자주 스트레칭을 해야겠다.





(1) total surrender

'완전한 내려놓음'이라 번역되지만 그것보다 좀 더 큰 의미의 말이다. full surrender, unconditional surrender라고 하기도 한다. total surrender에 관한 테레사 수녀님의 말이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는데 그는 이것을 It is a total, complete and unconditional surrender라 칭하기도 했다. 절대적 받아들임, 절대적 수용. 즉 자신을 내려놓고 모든 걸, 완전히, 그리고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total surrender와 관련된 설명은 김주환 교수님의 유튜브 강의 영상 중 '수용'편을 참조하길 권한다.


The Mother talks about Total Surrender(테레사 수녀)

https://youtu.be/mYMKmGE1jv4?si=CrnYQMmHfEo9sW8z 


김주환 교수 '수용'

https://www.youtube.com/live/ZCty0wvogDo?si=niF5Doyga4Xywo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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