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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Jun 09. 2024

1화 태극권 수련관으로

왜 태극권?


태극권을 배우기로 결정했으니 이제 태극권 가르치는 곳을 찾아야 했다. 한국에선 태극권에 대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기에 혹시나 이 도시에 태극권을 가르치는 곳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검색앱의 도움으로 태극권 수련관을 찾는 건 쉬웠다. '태극권'이라고 치니 이 도시는 물론 전국의 수련관이 주르륵 검색되어 나왔다. 내가 사는 도시엔 태극권 수련관은 총 3군데가 있었다.

시단위의 도시에서 3군데라면 매우 적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국으로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사진에 나왔다시피 전국의 태극권 수련관 숫자는 한눈에 봐도 얼마 되지 않는다. 더구나 서울과 인근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도시는 그야말로 '불모지'다. 검색 화면을 확대하면 몇 군데가 더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모지를 벗어날 수준은 아니다. 아마도 전국의 태극권 수련관은 한 도시의 태권도장보다 더 적을 것이다. 한국에서 태극권 수련 인구가 적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적을 줄은 몰랐다. 태극권이 이처럼 냉대를 받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짐작 가는 바는 있지만 그 얘기는 기회가 되면 차차 해보도록 하겠다.


사진에서와 같이 태극권에도 여러 분파가 있다. 이건 비단 태극권뿐 아니라 여타 무술들도 마찬가지다. 분파가 생기는 이유는 발전과 확장, 그리고 집중이다. 하나의 원류가 시대를 흘러오며 여러 제자를 배출하고 그들이 각지로 흩어져 새로이 도장을 연다. 그중 원류의 가르침을 그대로 계승하는 곳도 있지만 그 가르침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좀 더 집중하고 발전시켜 나가면 분파가 되는 것이다. 비단 무술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도 그렇다. '과학'이란 이름하에 세분화된 학문이 얼마나 많으며 미술이란 이름하에 세분화된 것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종교 역시 그러하다는 건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알 것이다.


나는 이미 태극권의 여러 분파 중 미리 정해놓은 곳이 있었기에 그 부분으로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곳이 이 도시에 있느냐 아니냐만이 문제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딱 한 군데가 있었다. 그렇다면 망설일게 뭐 있겠는가. 나는 당장 앱을 통해 알아본 주소로 향했다.

내가 간 곳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상업지에 위치한 작고 낡은 상가였다. 이곳으로 꽤 자주 지나다녔고 한때 이 근처에서 살기까지 했는데 이곳에 태극권 수련관이 있다는 건 나도 처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엔 병원과 약국, 그리고 식당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에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모르고 지나칠 만도 했다. 그래도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새파란 간판이 1층 입구에 있어 여기가 태극권 수련하는 곳이 맞다는 걸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수련관은 작은 상가의 3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일반 사무실과 태극권 수련관 2개가 함께 층을 쓰고 있었다. 오래된 상가 특유의 낡고 조금은 삭막한 돌계단을 올라 3층으로 올라가니 수련관 문 앞에 작은 신발장 하나가 놓여있었다. 바깥쪽에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인 듯했다. 혹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나 닫힌 문 바깥에서 잠시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수련관답지 않게 안쪽은 조용했다. 무술 하는 곳이 이렇게 조용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태극권이 우렁찬 기합으로 수련하는 곳은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신 같은 층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선 사람들 소리가 크게 새어 나왔다. 목청 좋은 남자 둘이 기분 좋게 떠드는 걸로 미뤄보아 뭔가 일이 잘 풀린 듯했다. 자그마한 간판이 없었다면 그곳이 수련관이라 착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출입문 옆에 놓인 작은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놓고 조심스레 문을 열고 작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실례합니다"


빼꼼연 출입문 안쪽으론 사무실로 보이는 2~3평 정도의 공간이 보였는데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로 보이는 곳엔 6인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었고 벽면으론 책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면으로 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아주 조금 열린 그 문틈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수련하는 곳은 그곳인 듯했다.. 나는 다시 살금살금 걸어가 전보다 더 조심스럽게 천천히 문을 열며 고개를 빼곡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


문 안쪽엔 예상대로 도장이 있었다. 그곳에선 사부님으로 보이는 분이 세 분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내 소리를 들은 그가 잠시 지도를 멈추고 다가왔다. 나는 태극권을 배우고 싶어 왔음을 말씀드렸다. 그는 사람 좋은 얼굴로 편안한 웃음을 띠며 나를 사무실의 탁자로 안내했다. 나무로 만든 탁자는 왠지 운치 있었고 그 위에 놓인 인상적인 다기류가 태극권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왠지 그곳에서 차만 마셔도 태극권이 저절로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태극권을 왜 배우려 하느냐는 그분의 질문에 나는 '움직임 명상'을 하고 싶어서라 답했다. 내 말을 들은 사부님은 움직임 명상과 태극권, 그리고 지금의 수련관 및 본인에 대한 약력을 간략히 설명했다. 사실 설명을 듣기는 했어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고 기억해 내기도 힘들다. 그분의 설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태극권에 대한 나의 무지 때문이다. 태극권도 움직임 명상도 잠시 듣는 정도로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하긴 세상에 잠시 듣고 알 수 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런 것들은 모두 내가 하면서 배워야 할 것들이지 말 몇 마디로 바로 깨우칠 것은 아니다. 내게 중요한 건 태극권에 대한 이해가 아니었다. 어차피 하려고 온 것이니 한다는 건 이미 정해진 거고 태극권과 움직임 명상에 대한 이해도 어차피 수련하면서 배워나면 될 것이다. 내게 중요한 건 수련일과 시간이었다. 당연하게도 직업이 있으니 요일과 시간이 맞지 않으면 자칫 배움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수련일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문제였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오후 7시나 8시 정도에 수련을 할 거라 예상했지만 수련시간은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오후 6시부터였다.(역시 세상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시간을 조정하는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이곳엔 이곳 대로의 룰이 있을 것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조정이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처음부터 조정해 달라는 것도 내 기준에선 무례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오후 6시도 어느 정도 억지론 맞출 순 있을 것 같았다. 하기로 했으니 어떻게든 해야 되지 않겠는가. 업무상 한 달에 한두 번은 어쩔 수 없이 빠지겠지만 말이다. 하다가 정 안되면 또 다른 방법이 있겠지.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다음 주부터 수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드디어 태극권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태극권을 배우기에 앞서 태극권에 대한 몇몇 문건도 읽어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봤지만 태극권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아니 '잘'을 빼고 그냥 모르겠다고 하는 게 맞겠다. 내 몸에 대한 알아차림? 내부와 외부의 흐름과 조화? 기 혹은 에너지의 운용과 깨달음? 더 나은 인간으로의 과정?

모르겠다.

그런데 태극권의 가장 근본이 무엇일까?

아마도 움직이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태극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 잠깐의 설명, 몇 개의 문건, 인터넷의 정보만으론 태극권이 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태극권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마도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태극권이 무엇인지 움직이면서 배우고 알아보고 깨우쳐 나갈 것이다.

앞으로 어떤 수련, 어떤 앎이 펼쳐질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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