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이야기
부자란 말만큼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선망케 하는 것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어딜 가나 '부자'란 단어가 넘쳐난다. 개인의 사소한 대화는 물론이고 각종 광고와 미디어, SNS와 뉴스에서도 부자는 빈번히 등장한다. 그만큼 많이 사용되고 흔하다. 어찌 보면 과하리만치 흔한 게 부자라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자는 소수지만 그 단어는 무엇보다 대중적이다.
그렇지만 부자란 말이 예전부터 이렇게 대중적이었던 건 아니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엔 '부자'란 단어가 지금만큼 흔하게 사용되진 않았다. 부자란 말이 지금처럼 널리 쓰이지 않았던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좋은 뜻만 있진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질에 빠져드는 걸 '나쁜 것'이라 여기며 경계했었고, 그렇기에 물질을 대표하는 돈과 부자 역시 경계의 대상이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 한다'
과거 자주 쓰였던 이 속담은 바로 물질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속담은 소나무에서 살아가는 송충이가 날카롭고 볼품없는 솔잎 대신 크고 윤기 나는 떡갈나무의 갈잎에 현혹되 그것을 먹었다간 죽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실제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면 죽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속담에선 그렇다. 말인즉슨 자신의 분수를 알고 분수에 맞게 살라는 뜻이며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대로, 부자인 사람은 부자인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는 모르겠지만 이 속담은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의미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엔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 일상적 대화에서도 자주 쓰이곤 했었다.
사람들은 부자가 아닌 자가 부자가 되려고 하는 걸 매우 위험하게 생각했다. 분수를 망각하고 욕심을 부리는 건 이기적인 행위였고 그렇기에 반드시 불행을 불러온다 믿었다. 나아가 이런 행위는 개인의 이기심에서 시작된 개인의 불행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공동체 전체에까지 피해를 미치는 심각한 해악이라고도 생각했다.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믿었던 건 물질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것이었다. 분수를 지켜나가는 것, 의리와 약속을 중시하는 것, 사랑과 헌신 그리고 인내를 통해 희생하고 살아가는 것. 그런 비물질적인 것들을 사람들은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그런 것들을 지키고 살아가면 언젠가 복(福)을 받는다 믿었다. 여기서 말하는 '복(福)' 역시 물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화목을 중심으로 하는 평화와 안정을 의미한다. 복(福)은 성실하게 신의를 지키고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며 금은보화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고 이는 인간답고 정의로운 삶을 산 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로운 훈장과도 같았다. 그것은 부자가 지닌 물질에 비할 수 없는 값진 것이기도 했고 물질 따위로는 가질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부자와 비(非) 부자 사이에는 물질과 비물질이라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었고 또한 그 선은 서로 넘을 수 없는 불가침의 벽이기도 했다. 비(非) 부자 부자의 '물질적인' 부분을 가질 수 없고 부자는 비(非) 부자의 '인간적인' 부분을 가질 수 없었다. 그렇기에 부자란 물질은 풍요하나 인간미가 떨어지는 사람이었고 비부자는 물질은 적으나 인간미가 풍부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적어도 풍조는 그랬다. 그런 풍조 덕분에 부자와 비부자는 서로 미묘한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았단 말이냐?"
이수일과 심순애란 영화에서 나왔던 이 대사 역시 물질에 대한 욕심을 경계하는 풍조를 말해준다. 김중배는 돈은 많으나 인간성이 떨어지는 인물이었고 그런 김중배를 선택한 심순애는 갈잎을 택했던 송충이처럼 고난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욕심을 경계하고 부자의 인간성을 박하게 본 건 동양 문화권에서만은 아니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이나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스쿠루지를 보면 서양에서도 부자나 욕심에 대한 인식은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매체에서 부자는 대개 좀스럽고 인색한 냉혈한으로 묘사되었고 비(非) 부자 사랑, 우정, 의리, 나눔, 약속 같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묘사되어 왔다.
그렇지만 실제로 물질을 경시한 것은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더 많은 돈을 마다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만 사회적 풍조가 그러했기에 대다수 시민들은 겉으로나마 물질을 멀리하고 인간성을 중시했던 것이다.
비(非) 부자가 부자가 될 수 없는 다른 이유 중 하나엔 부자란 타고난 존재라 생각했던 것도 있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었고 '타고난 사람'이었다. 부자가 된다는 건 소위 말해 '하늘이 선택한 존재'라야만 가능했다.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던가. 부자란 바로 못 올라갈 나무였고 바라서도 안 되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