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이야기
KB 경영 연구소에선 매 연말이 되면 '한국 부자 보고서'란 리포트를 발간한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의 부자 현황과 그들의 투자 형태, 투자 전략 등 부와 관계된 것들이 간추려 실려있는데 이 중엔 '부자의 기준'도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한국 부자 보고서의 조사 방법은 정성조사와 정량조사로 이뤄지는데, 정성조사는 전국에 거주하는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400명을 표본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이며, 정량조사는 이 중 16명을 따로 표본 하여 실시하는 심층 인터뷰 조사이다.
2023년에 발간된 KB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부자의 기준 금액에 대한 설문 조사 중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건 100억으로 조사 대상의 26.7%가 선택했다. 그다음으론 50억(14%)이 2위, 200억(10.7%)이 3위를 차지했다. 나처럼 시원하게 1,000억이라 답한 사람도 1.2%가 있었다. 이 보고서를 기준으로 한다면 부자의 기준 금액은 100억 내외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0억도 상당히 높은 금액이다. 앞서 내 맘대로 제시한 1,000억에 비하면 10분의 1밖에 안되지만 말이 쉬워 100억이지 실상 100억도 평범한 사람들에겐 꿈만 같은 금액이다. 목표로 삼을순 있겠지만 너무 높은 목표는 사람을 더욱 쉽게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기본적인 자산이 어느 정도 있고 직업 역시 상당한 고소득 직종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부자를 꿈꾸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100억은 그야말로 아득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부자의 기준 금액을 좀 더 낮춰서 볼 순 없을까? 부자에 진입하는 최소 금액 정도로 말이다.
그래프에 나온 2위와 3위를 살펴보자. 2위는 50억으로 1위를 차지한 100억의 절반이다. 절반이 줄었으니 좀 더 수월한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높은 금액이다. 그다음은 3위를 차지한 200억. 100억의 2배다. 100억, 50억도 꿈만 같은데 200억이라니.... 3위는 넘어가고 대신 4위와 5위를 보자.
4위는 30억으로 전체 응답자의 7.2%를 차지했고 5위는 20억으로 전체 응답자의 5.2%를 차지했다.
20억~30억이 총 12.4%를 차지한 것이다. 이 정도면 14%로 2위를 차지한 50억과 비교했을 때 수치상으론 좀 비슷해진다. 2~30억도 결코 만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100억이나 50억보단 훨씬 낫다. 재산 기준을 좀 더 낮춰보기 위해 20억 이하로 내려가려니 한국의 주택가격과 생활비등을 고려하면 그 정도 재산으론 부자라 부르기엔 좀 애매하다.
얼마 전 주변 사람들에게 부자의 의미에 관해 물어보던 중 경제적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들은 아무 채무도 없는 조건에서 30억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다고 얘기했다. 그들이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금액을 30억이라고 얘기한 이유는 30억에 대한 은행 예치 이자만으로도 기본 생활이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한 금액, 즉 부자의 진입 금액이 30억부터라고 얘기했다.
그들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현재(2024년 상반기 기준) 시중 은행의 예금 금리들을 살펴보았다. 은행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대략적으로 연 2.5% ~ 3.5% 정도를 지급하고 있었다. 각 은행별 이자율의 중간값인 3%를 평균 이자율이라 보고 30억의 연 이자를 계산해 보면 9,000만원 정도가 된다. 이를 월 단위로 환산하면 매월 750만원 정도가 된다(세금은 잠시 잊자).
(금리비교출처: 예금금리 > 예금상품금리비교 > 금리/수수료 비교공시 > 전국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kfb.or.kr))
그런데 매월 750만원이면 정말 경제적 자유가 보장될까?
통계청(KOSIS)의 자료엔 우리나라의 가구당 월평균 가계 지출이 평균 332만원이라 나와있다. 좀 낮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1인 가구를 포함한 1인 이상의 전체 가구 평균치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부부와 자녀 1명 이상이 있는 3인 이상의 가구를 기준으로 한다면 평균 지출이 얼마 정도가 될까?
우리나라 전체 가구 구성 중 지출이 가장 높은 가구는 미혼 자녀가 있는 가구, 즉 아이가 있는 가구이고 이들의 월평균 가계 지출은 대략 480만원이다. 그러니 3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지출은 480만원 내외라 보면 될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지출하는 가정도 있을 것이고 덜 지출하는 가정도 있겠지만 월 480만원, 끝 단위를 반올림해 500만원 내외기 3인 이상 가구의 평균 지출이라 한다면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30억의 이자로 생기는 월 750만원이면 500만원을 제하고도 250만원의 여유가 생기는 셈이니 충분히 경제적 자유를 보장한다고 할 수 있다.
각 가정별 지출에 따른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 지출을 감안한다면 30억은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금액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강제적 경제 활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또 다른 부를 창출할 기회도 증가할 것이고 자산을 늘려가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이다. 그러니 30억을 부자의 기준, 즉 부자 스펙트럼의 시작점이라 정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된다.
(가구 구성당 월평균 지출 자료출처 :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L9R012&conn_path=I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