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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Go Duck Nov 08. 2024

보석

2024년 11월의 가을


출근길을 나서다 보석을 보았다.

인도변 배수구 옆 옹기종기 모여있는 알록달록의 보석.

오늘, 하늘은 더없이 파랬고 공기엔 상쾌가 실려있더랬다. 이처럼 맑은 날 아침, 나는 보석을 보았다.

눈을 들어 주변을 보니 지천이 보석이다. 나무마다 저만의 보석이 주렁주렁 달렸다. 길거린 또 어떤가. 저마다 나무에서 내린 보석들이 함께 모여 뒹굴거리고 있다. 저만치 자리한 산에선 교향곡과도 같은 보석의 향연이 연주되고 있다. 그 연주는 진행형이다.


그렇다. 내가 본 것은 낙엽이고 낙엽이 바로 보석이었다. 낙엽 보석은 아무도 탐내지 않는다. 탐낸다고 해봐야 나처럼 사진 몇 장 찍는 것, 혹은 몇 개 주워다 책갈피나 잠깐의 장식으로 쓰는 정도. 탐냄은 탐냄이되 누구도 괴롭히지 않고 누구도 원망치 않는 탐냄이다.


낙엽은 보석이되 값이 없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다. 흔히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은 귀하디 귀한 것이며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만 실상 그것은 흔하디 흔한 것이며 돈으로 살 필요가 없는, 돈 이란 물질이 끼어들 틈이 없는 그런 것이다. 흔하고 자연스럽기에 가치가 없고 가치가 없기에 무엇보다 가치 있다.

낙엽 보석은 누구의 시선도 바라지 않고 누구의 시선도 거부하지 않는다. 지구상 어떤 값진 보석도 이처럼 완전할 수 없다. 파라오의 다이아몬드도 잉카의 황금도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며 무언가의 위상을 상징하지만 낙엽 보석은 그 어떤 것도 원치 않는다. 그저 자신이 가진 한때의 아름다움만 도도히 홀로 비치다 사라질 뿐이다. 사라지는 것이기에 허망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사라지는 것이기에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도도하고 허망하고 완벽하며 불완전하다. 그러함에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엔 가치가 없다.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필요 없는 것'이다.

낙엽의 보석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돈이 들까 걱정할 필요도, 빼앗길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잠시 여유를 갖고 스윽 한 번 미소 지으면 족하다.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주어진 것들을 때때로 알아차리고 잠시 멈춰 미소 짓는 것. 그 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성공한 삶인 것.

그렇다면 이 가을 낙엽을 보며 잠시라도 기뻐한 모든 이들은 성공한 사람들이다.


잠시의 여유와 기쁨으로 삶의 모든 고민과 부조리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그럼 어떠랴. 눈과 마음에 보석 한 번 담아봤으면, 잠시 웃을 여유를 가져봤으면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만족할만한 것이 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좋은 건 아직 살아 있으니 앞으로 그럴 순간이 더욱 많을 거란 것이다.


모두의 가을이 보석 같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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