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5월 5일 ~ 11일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차가 터널 속으로, 산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나는 삶 속으로 깊이, 더 깊숙이 들어갔다.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우리 집, 내 삶의 터전. 문득, ‘정말 이것이 내 삶인가.’ 하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내 삶이라고 규정지어 말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이건 내 삶이 아니야, 난 이런 사람이 아니야, 수없이 되뇌었다. 내 눈앞에 놓인 현실을 부정했다. 나는 늘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존재라 믿었다. 나는 늘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사는 사람인 줄 착각했다. 아빠 덕분에 포시랍게 자랐고, 남편 덕분에 내가 얼마나 포시랍게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삶은 언제나 내 계획대로,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 삶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시댁 식구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고, 주택담보대출에 마이너스 통장 없이는 못 살 수도 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안다. 사실 나는 특별할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언젠가는 고아가 된다. 사람마다 시점만 다를 뿐, 누구나 언젠가는 아빠와 엄마의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나도 곧 그렇게 되겠지. 오늘은 그저, 아빠랑 엄마랑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였다.
<대차게해봄>
오늘 저희 가족에게 하루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밤 11시 21분. 숨을 길게 내쉰다. 텅 빈 문서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매일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쓰려면 책을 읽어야 하고 무엇을 쓸까,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스케쥴을 효율적으로 짜야 하며 무슨 일을 해낼지, 무슨 일을 버릴지 선택해서 시간을 비워야 한다. 이사를 결심했다. 살던 집보다 훨씬 더 작은 집이기에 짐을 줄여야 한다. 내일 오후에는 영상 편집 강의를 들어야 하며 강의 전에는 포도의 간식과 저녁밥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독서모임 선정 도서도 읽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요가를 빠질 순 없다. 으, 내일은 아쉬탕가 요가. 끝까지 평화롭게 할 수 있을까. 그냥 확 째버릴까. 내일부터는 다시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나야 하...
하기 싫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내 손으로 만든 내 삶을 확 집어치우고 삐뚤어지고 싶다. 삐뚤어질 테다. 어떻게 하면 삐뚤어질 수 있을까. 포도가 체육대회에서 받은 신라면을 확 끓여 먹을까? 땡초가루를 확 뿌릴까?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니 집에 없다. 사러가기가 너무 귀찮다. 술을 한 잔 하려니, 집에 술도 없다. 이놈의 집구석에는 라면 밖에 없는 건가. 드라마를 보려니 뻔히 예상되는 감정의 격렬함 자체가 피곤하다. 게임은? 평생 해본 적이 없어서 시작하려니 골치가 아프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삐뚤어질 수 있을까. 삐뚤어지는 방법을 모르겠다.
30분만 더 삐뚤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 뾰족한 방법을 찾게되면 거침없이 삐뚤어져야지. 방법을 못 찾으면 잠이나 자야겠다. 삐뚤어진 꿈이라도 꾸고 싶다.
<대차게해봄>
삐뚤어지는 생각만
대체 어쩌다 벽 모서리에 이마를 찧었을가. 별거 아니겠지 했는데 상처가 깊었다. 아빠는 늘 내 이마를 볼 때마다 말했다.
“니 이마는 백만 불짜리 이마다. 톡 튀어나와가. 얼마나 이뿌노.”
그 이마에 오늘 처음으로 세로로 푹 패인 상처 생겼다.
“너거 아빠는 요새 돌아서면 배고프다 카면서 자꾸 먹거든. 근데 자꾸 살이 빠지. 암세포가 다 먹어가 그카는가... 하.”
엄마는 옆으로 누워서 웅크리고 내 전화를 받는 모양이었다. 내게 한숨을 내셨다. 나는 한숨을 받아냈다.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나도 옆으로 누워 웅크렸다. 아빠의 간에만 있었던 암이 폐로 건너갔단다. 진짜 그런 거란다. 오늘 정밀 검사를 했고 다음 주 월요일이면 치료 방법을 알 수 있단다.
“보는 사람마다 다 카대. 너거 아빠는 맹이 긴 관상이라고.”
엄마는 아빠가 자기보다 훨씬 더 오래 살 거라고 자주 말했었는데. 아빠가 진짜 맹이 긴 관상이라면 지금 건강해야 할 것 같은데. 믿고 싶었는데 믿을 수 없는 관상쟁이들. 내게는 이마가 잘생겨서 팔자가 참 좋다고 했다. 내 팔자가 진짜 좋은 팔자라면 지금쯤 뭔가 좋은 기미가 보여야 하지 않을까. 아무 것도 안 보인단 말이지.
“아빠, 내가 곧 책이 나올 것 같아. 그러니깐 그 때까지만 살아줘요.”
이런 말을 해드리고 싶다. 아빠가 들으면 힘이 날 것 같은데. 이런 구라도 못 치는 내가 한심하다.
이마에 세로로 푹 패인 상처가 불길하게 여겨지는 밤이다.
<간절히기도해봄>
아빠, 책이 나올 때까지만은 건강하게 살아주세요.
영상편집 강의 개강식. 수강생이 총 23명인데, 공무원이 23명이나 왔다(시적 허용). 공무원들, 진짜 디기도 할 일이 없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어머나, 꼴랑 영상편집 강의 개강식에 시장님, 국회 의장님, 문화원장님까지 줄줄이 축사하시는 거였다. 님들 왜 이러셔. 꼴랑 영상편집 강의라고요.
“여러분도 제2의 봉준호 감독이 될 수 있습니다.”
어머나, 강사님, 내 스타일. 일단 지르는 스타일이었다. 강사님은 경찰학을 전공했고 로펌에 근무하면서 소장 쓰는 게 지겨워져 소장 내용을 시나리오로 바꿔 쓰다가 영화감독이 되셨단다.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영화제인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하셨고 여러 영화 아카데미에서도 강의하신단다. 와우.
“제일 좋은 카메라는 뭘까요?”
강사님께서 질문하셨다. 나는 손에 든 휴대폰을 흔들며 자신 있게 외쳤다.
“이거요. 지금 제 손에 들고 있는 이거요.”
순간 강사님 눈이 땡그래졌다.
“오. 제가 이 질문을 백 번 넘게 해봤는데요. 이렇게 바로 정확한 대답이 나온 적은 처음입니다. 박수 한 번 주세요.”
어머나, 몇 년 만에 박수를 받았다.
“영상을 잘 찍으려면 뭘 잘 해야 할까요?”
“사진을 잘 찍어야 해요.”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뇌가 움직이기도 전에.
“정답입니다. 영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미장센(시각적 연출)이에요. 그럼, 영상과 사진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요?”
“소리요. 영상에는 소리가 있지만 사진에는 소리가 없어요.”
“아니, 어쩜 이렇게 다 아세요? 실례지만, 혹시 무슨 일 하세요?”
강사님의 질문에 나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전업주부요.”
‘전업주부’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발음한 적은 처음이었다.
“지금은 전업주부지만, 어쩌면 제2의 봉준호 감독이 되실 수도 있어요.”
어머나, 강사님, 내 스타일. 일단 지르는 스타일.
사실, 나는 정확하게 안다. 제2의 봉준호 감독은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봉다리 감독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일상을 글로 쓰는 게 지겨워져 이 일상을 시나리오로 바꿔 쓰다가 영화까지 찍게 된 봉다리 감독. 영화의 주인공은 명품백 대신 봉다리를 들고 댕기는 전업주부. 누군가가 전업주부에게 묻는다.
“가방 대신 왜 봉다리를 들고 댕겨요?”
전업주부가 답한다.
“봉다리처럼 유연하고 가볍게 살고 싶어서요.”
현실은 명품백을 살 돈이 없어서 봉다리를 택한 그녀. 명품백이 아닌 그냥백은 아예 쳐다보지 않는 고집스러운 그녀다. 봉다리에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물건을 통해 절대 가볍게 살 수 없는 전업주부의 일상을 관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영화 제목을 ‘봉다리 속에 담긴 인생’으로 할까.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구나.
영상편집 강의를 핑계로 마음 푹 놓고 퍼질러 앉아 시원하게 드라마 정주행을 해야겠다. 좋은 영상을 많이 봐야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댔다. 출산 이후로는 먹고사는 게 바빠서 드라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로 나에게 드라마 정주행을 허락해주고 싶다.
<대차게해봄>
봉다리 감독의
봉다리 속에 담긴 인생
또 우울하다. 에너지가 하나도 없다. 매콤한 떡볶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탄수화물을 먹고 기분 좋았던 적이 없어서), 요가원에 가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가원에 결석하고 만족스러운 적이 없어서), 낮잠을 자서 그런 걸까(나태한 인간이 된 것 같아서). 먹고 싶어서 해 먹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서 요가원에 안 갔고(그런데 떡볶이를 요리한 손은 재빨랐지), 자고 싶어서 잤지만, 기운이 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는데도 우울했다. 책은 많이 읽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내 안에 남은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나를 매일 지켜주던 책신은 오늘 부재중이었다. 새로 국을 끓이거나 반찬을 만들지 않았다. 냉장고에 있던 것들을 그대로 꺼내 밥상을 간신히 차렸다.
저녁을 먹고 남편이 밀린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포도에게 책을 읽어줬다. 책 읽는 순간만큼은 평소처럼 에너지가 있었다. 포도의 이를 닦이고 세수를 시키고 샤워를 해주는 동안 나는 세상 다정한 엄마였다. 신기하게도 포도 곁에만 있으면 우울함이 사라졌다. 정말 사라졌던 걸까, 아니면 포도 앞에서는 반드시 행복한 얼굴을 보여주겠다는 내 무의식이 잠시 우울을 감춘 걸까.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다행이었다. 포도에게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 하지만 포도는 직감적으로 알았을지도 모른다. 오늘따라 내게 유난히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래도 괜찮다. 우울했지만 우울함에 빠지지는 않았다. 우울했지만 우울함에 완전히 잠겨서 허우적대는 모습은 없었다. 이건 확실하다.
포도도 살다 보면 이유 없이 우울한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럴 때는 지금의 나처럼 그저 ‘오늘은 우울하구나.’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 이런 날에는 이렇구나, 저런 날에는 저렇구나, 하면서 그냥 살면 된다.
<대차게해봄>
우울해도 괜찮다
“자기야, 우리 그냥 확, 눈 딱 감고, 캠핑카 사버릴까?”
우리 고장에는 대장 아파트 근처에 캠핑카 전용 주차장이 따로 있다. 다들 캠핑카 한 대 정도는 있어서 주차난 해소를 위해 시에서 마련해준 거다. 캠핑카 주차장을 지나면서 내가 캠핑카를 사자고 했더니 남편은 작은 눈을 놀랍도록 크게 뜨며 선언했다.
“캠핑카는 진짜 비싸. 캠핑카는 완전 사치야. 정말 낭비라고, 낭비.”
이 남편은 천날만날 우리도 캠핑 한 번 가자고 한다. 이 남편은 천날만날 우리도 바닷가에 텐트 치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라면을 끓여먹자고 한다. 그런데 막상 캠핑 용품을 사자고 하면, 아무 대답이 없다. 텐트라도 멀쩡한 놈으로 하나 사자고 하면, 모른 척 한다. 남편은 늘 희망사항을 말하면서 캠핑을 위한 소비는 전혀 하지 않는다.
부자가 되면 식당에 가서 가격은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걸 주문한다고 들었다. 우리도 부자가 되면 가격은 안중에도 없이, 텐트를 그냥 마, 확 마, 살 수 있을까? 부자가 되면 캠핑카를 살...수...있...을...까? 텐트 정도는 지금이라도 눈 딱 감고 질러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술을 마셔야 질러버릴 수 있다. 맨정신으로는 못 산다.) 캠핑카는 정말이지 점점점, 덜덜덜,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도무지 안 나온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캠핑카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남편이 세 명이나 등장하는 그 소설에, 쓰다 만 단편 소설에 네 번째 남편을 추가해 볼까. 캠핑카를 몰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연을 즐기는 로맨틱한 남편으로 말이다. 햇살이 스며드는 벌건 대낮에 파도 소리와 소나무 향기와 함께 서로의 몸을 오르내리는 거다. 오, 야해. 이 때 여주인공이 말한다.
“이 사회를 살아가려면 남편이 네 명은 필요해.”
오, 현실 고발적이야.
캠핑카는 내게 소설 속 이야기다. 그러니깐 꿈 깨.
<대차게상상>
단편 소설 쓰기
가제 : 아내가 결혼했다, 네 번이나.
이번에 찾아온 우울함은 오래 눌러앉았다. 생리 전 증후군일까, 아니면 내일 예정된 아빠의 병원 진료 때문일까. 딱히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우울하다. 생기가 없다. 만사가 오만상 귀찮다. 살림은 거의 손을 놓았다. 며칠째 국도 찌개도 찜도 볶음도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 계속 냉장고나 냉동실에 있는 걸 꺼내 먹었다. 무기력한 하루였다.
기운을 내기 위해서 나뚜루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세 통이나 먹었는데도, 내가 사랑하는 매운 라면이나 매운 떡볶이를 매일 먹었는데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하긴, 늘 그랬다. 먹는다고 우울함이 사라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알면서도 우울하기만 하면 꼭 아이스크림과 매운 걸 그렇게 들이붓는 나.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뭐라도 하면 좀 나아질까. 친구 딸에게 물려줄 옷을 싹 다 정리해 보내버리면 괜찮을까. 베란다에서 시들어가는 대파를 다듬어 냉동실에 넣으면 괜찮을까. 며칠 전 꽃집에서 데려온 오데코롱민트를 분갈이하면 괜찮을까.
그래도 이번 우울함을 마주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우울하다고 축 처져있으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울하다고 해야 할 일을 미루면 나만 손해다. 그 대가를 내가 치러야만 한다. 우울함이 물러나고 생기가 돌 때, 하지 못했던 일을 생각하면 후회가 거세게 밀려와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읽어도 감흥이 전혀 없는 책은 덮자. 팔다리를 바쁘게 움직여야겠다. 옷을 정리하고 대파를 다듬고 분갈이를 해야겠다. 오늘은 영양부추전을 부쳐 내야겠다. 팔다리가 움직여지면서 생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한숨은 이미 충분했다. 한숨 대신 영차. 일어나 설치자. 우울함이 더 이상 설치지 않도록.
<대차게써봄>
우울함이 지나감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