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4월 28일 ~ 5월 4일
매일글쓰기는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한순간에 삽질이 되기도 한다. 얕은 부동산 지식 앞에서, 내집마련 앞에서, 호갱노노 앞에서 매일글쓰기는 깨갱깨갱, 잘못했습니다, 봐주세요, 이러기까지 한다.
매일 글을 쓸 때는 내가 작가라도 되는 줄 알았다. 잔고 앞에서는 작가고 나발이고 한없이 작아진다. 와장창. 한 글자, 한 문장, 차곡차곡 쌓여진 글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매일 글 쓸 시간에 부동산 투자를 공부했다면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을까.
부질없지, 부질없어. 글을 빨리 마무리하고 매물이나 더 보다가 자야겠다.
<대차게해봄>
집을 살까말까 고민하면서
글방 합평회를 할까말까 고민해봄
그냥 살기만 해도 돈이 이렇게 많이 든다고?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우리집 관리비와 가스 요금을 확인했다. 3월 기준으로 총 416,640원. 이렇게 많이 드는 줄 상상도 못 했다.
그동안 (간헐적으로)가계부를 쓰기는 썼지만, 남편 통장에서 자동이체 되는 고정비는 ‘내 관할 아님’이라 생각했다. 아예 모르고 살았다. 월세, 관리비, 통신비, 보험료, 주유비와 하이패스 요금, 각종 구독료를 다 더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다 더해보지 못한 상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냥 살기만 해도 돈이 이렇게 많이 든다니.
가볍게, 즐겁게 살기로 했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그냥 살기만 해도 나가는 기본요금이 얼마나 비싼데. 본전을 뽑으면서 살아야겠다. 기본요금이 전혀 아깝지 않도록, 야무지게, 남는 장사가 되도록, 바짝 살아야겠다. 가계부를 완벽하게 써서 지출 금액을 10원 단위까지 관리해야겠다. 결혼 15년차나 되면서 이제야 난방비가 따로 나온다는 걸 알았다니. 부끄러울 뿐이다.
<대차게해봄>
이런 나와 살아주는 남편, 고맙다.
오늘은 아침 6시에 일어났다. 3시 50분 알람을, 1분, 계속 반복으로 맞춰두고 잤는데도 말이다. 일어나자마자 시계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잠이 필요했나 봐. 요즘 피곤했나 봐. 잘잤다. 잘했다. 예전에는 오늘같이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한 날, 내게 욕을 퍼부었다. 어떤 여자는 애를 출산하고 3개월 만에 강의를 뛰고 무인카페까지 차리던데, 난 일찍 일어나는 것도 못 하다니, 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 그래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 그리고 차마 활자로 표현하기 거북한 욕, 숫자와 동물.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비난, 자책, 후회, 반성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저, 잘잤다, 잘했다. 이 생각뿐이었다.
요즘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두 장 분량의 무언가를 손글씨로 쓴다. 글은 아니요, 일기도 아니요, 생각나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손이 쓰는 대로 따라가며 쓰는 무언가. 이때 쓸 만년필을 샀다. 대차게해봄. 만년필에 블로그 닉네임을 각인했다. 만년필을 책상 위에 올려두면 남편도 이제 내블로그를 알게 되겠지. 내블로그에 매일 쉬지 않고 써 내려간 417일 간의 글을 읽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내블로그를 꽁꽁 숨겼었는데, 이제는 숨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떠벌릴 생각은 없지만.
내가 조금 달라졌다. 다행히 좋은 방향으로 달라진 것 같다. 좋은지 안 좋은지는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분명한 건 내 삶이 조금 더 편안해졌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한다는 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말, 아주 살짝은 이해할 수 있다. 이제야, 반 팔십 살이 넘어서야 말이다.
<대차게해봄>
있는 그대로의 나
오늘은 우리 고장에서 제일 큰 체육관에서 유치원 체육대회를 했다. 송이송이 주렁주렁 탐스러운 아이들, 그중 버금가는 우리 포도. 포도 덕분에 박수, 함성, 응원에 달리기, 파도통, 지구를 굴려라, 하늘을 달리다, 에어 사다리, 새참 나르기, 색판 뒤집기, 줄다리기를 했다. 앞으로 포도 덕분에 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이 더 많겠지. 다 누리고 싶다.
“우리가 애를 낳고 키우니깐 유치원 체육대회도 가보고 그러네.”
포도는 체육대회에서 실컷 뛰고 와서도 쌩쌩했다. 나와 남편은 2시간이나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포도는 혼자 거실에서 뭐 하며 놀았을까.
“나는 포도가 저렇게 거실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꼭 그림 같아. 영화 같기도 하고.”
포도보다 사랑스러운 그림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포도를 너무 늦게 낳아서 그래.”
남편이 말했다. 결혼 10년 차일 때 포도를 낳았다. 곧 포도의 다섯 번째 생일이 다가온다. 포도의 열 번째 생일쯤에는 그림 같지 않을까, 영화 같지 않을까, 정말 현실 같을까.
“예를 들어서, 온 국민이 국어, 영어, 수학, 축구를 한다고 쳐. 그걸 해야 대학을 갈 수 있어. 그러면 축구 안 할 거야?”
남편이 내게 물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응. 온 국민이 축구를 해서 대학에 간다고 해도, 난 안 할 거야. 난 다른 방법으로 대학에 갈 거야. 안 가도 좋아. 축구는 나한테 너무 불리한 종목이거든. 난 나만의 게임을 할 거야.
“엄마, 나만의 게임이 뭐야?”
옆에서 듣고 있던 포도가 물었다. 나만의 게임을 하겠다는 말은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삶을 살겠다는 뜻이야. 포도야, 너두 너만의 방식으로 너만의 인생을 살아. 다른 사람이 다 좋다고 해도 너에게는 안 좋을 수도 있어. 다른 사람을 따라 살 필요는 없어. 너가 기꺼이 즐기고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면 돼. 너만의 방식으로 너만의 게임을 하는 거지. 그리고 나는 남편의 눈을 보고 말했다.
자기야, 난 이미 나만의 게임을 하고 있어.
<대차게하고있음>
나만의 글쓰기
다른 일도
<대차게해볼것>
* 초단편주부의 아홉 번째 초단편소설입니다.
내일은 집 못 봐. 경주에 내려가야지. 좋은 매물을 놓치면 그건 그냥 우리깨 아닌 걸로 생각할래.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우리 조급하게 굴지 말자. 아내는 남편에게 이렇게 큰소리쳐놓고는 딸이 유치원에 가자마자 집부터 봤다. 엔페이 부동산 관심단지에서 ○○아파트 클릭, 전체거래방식 매매 클릭, 전체면적 24평만 클릭, 동일매물을 묶고 낮은가격순으로 정렬. 낮은가격순에서 5층 이하는 제외했다. 싼 놈 3개를 골라 부동산 소장님께 전화했다. 집 보고 싶어요.
새벽에 모닝페이지를 쓰는 데 기분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내 기운이 좋으니 아빠 검사 결과도 좋을 거라고 믿었다. 나의 기운이 아빠한테 가서, 아빠도 당연히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주 시댁에만 갔다가 친정에는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올 작정이었다. 집에 와서 집이나 볼 생각이었다. 아빠, 돈은 내가 벌게요, 아빠는 책이나 읽고 춤이나 추고 노래나 부르면서 살아요.
아내는 부동산 소장님의 전화를 기다리며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아빠는 괜찮대? 암이 폐로 전이된 거 같대. 지금 CT 찍고 있어. 다음 주에는 정밀 검사한대. 엄마, 괜찮아. 원래 암은 재발하고 전이되고 계속 치료하면서 사는 거래. 아빠 괜찮을 거야. 시댁 갔다가 바로 아빠 보러 갈게. 소장님, 죄송해요. 집을 못 볼 상황이 생겼어요. 아마 한두 달 정도는 집을 못 볼 것 같기도 해요. 뭐, 한두 달 늦게 산다고 부자 못 되겠어요? 천천히 진행하겠습니다.
띵동. 호갱노노 알림이 왔다. 새로운 실거래가 등록, ○○아파트, 매매 3건. 소장님 이거 전부 갭 들어간 거죠? 네. 갭 4천, 5천. 하나는 실거주일 확률이 높아요. 다들 정말 빠르네요.
아내는 감수하기로 했다. 다른 투자자들은 집도 안 보고 계약한다는데 집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사느라, 남편의 사촌 결혼식에 간다고, 아빠랑 엄마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본다고, 딸에게 간짜장면을 만들어 맥이느라 좋은 매물을 놓치더라도 감수하기로 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걸 챙기느라 돈을 덜 벌더라도 감수한다. 못 버는 일은 없다. 조금 덜 벌 뿐이다. 돈보다 더 중요한 걸 챙기며 살기 위해 아내는 부동산 투자를 한다.
<초단편주부도 대차게해봄>
최신 트렌드에 맞는 똘1채 투자 이야기는 못 쓰지만
다른 투자 이야기는 써보겠음
아침밥은 시가족 12명과 함께 먹었다.
점심밥은 결혼식 뷔페를 먹으면서 시이모님 세 분과 소주 7잔을 마셨다.
저녁밥은 친정가족 8명과 함께 먹었다.
밥을 많이 먹고 말을 많이 한 날.
무슨 글을 써야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밥을 많이 먹고 말을 많이 한 날은 꼭 이랬던 것 같다.
살다보면, 매일 글을 쓰다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다.
무슨 글을 써야할지 도저히 모르겠는 날도 있는 거다.
<대차게생각해봄>
왜 그럴까
기 빨려서
“딱 십 년만 더 살아줘도 좋은데.”
엄마는 하루 동안 이 말을 다섯 번이나 했다. 아빠의 간에 있었던 암이 폐로 전이 되었단다.
“할아버지, 나처럼 그냥 주사 맞고 지나가요. 용기 있게요.”
매일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는 포도가 이렇게 말했다.
“뭐, 우짜겠노. 병원에서 하라카는 대로 하고 하늘에 맽기야지. 우야든동 남은 날을 즐겁게 살아야지.”
아빠가 말했다.
아빠가 즐겁게, 용기 있게 치료를 잘 받아서, 앞으로 딱 십 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잘나가는 딸이 되려면 최소 십 년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아빠가 죽더라도 잘나가는 딸을 꼭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내게 딱 십 년 정도만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대차게해봄>
나만의 계약서
하늘이랑 아빠랑 나랑 쓰는 계약서.
하늘은 이를 허락한다.
아빠는 2035년을 넘긴다.
나는 2035년 안에 잘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