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탱크의 점멸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남은 거리는 0킬로뿐이라고 위협하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지만, 알고 있었다. 0킬로도 0킬로 나름, 몇십킬로쯤은 거뜬히 갈수도 있다는 것을. 반복되는 경험은 이 행운이 계속되리라 배짱을 한없이 늘렸고, 어느날 긴장은 뚝 끊어졌다. 올해 초 아주 추웠던 날 새벽 길거리에 멈춰버렸던 것.
그 겨울 새벽 아침, 동생을 공항에 데려다 주던 길이었다. 긴 휴가에서 돌아온 후라, 내 자동차의 0 킬로가 '어떤 0 킬로'인지 몰랐던 것이다. 마침 집앞 주유소도 문을 달기도 해서, 가까운 거리니까 괜찮겠지 하고, 출발했다. 동생을 공항에 내려 주고 돌아 나오는데, 경고음이 울렸다. 핸들이 뻑뻑해질 때까지도 믿지 못했다. 자동차가 바보같이 서버렸다. 물론 그 안의 나도.
머리가 깨질듯 추운 새벽, 기름을 가져오는 보험회사 비상서비스를 기다리면서 많은 결심을 했다. 무계획적이고 무모한 인생을 더는 살지 않겠다고, 자동차의 기름 눈금의 삼분의 일 이하로 내려가기전에 기름을 채우는 것만으로 인생이 계획적이 될 것처럼 진지했다. 하지만 그뿐, 어느틈에 0킬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간당간당한 인생을 다시 살고 있었다.
긴 휴가를 끝내고 출근하려보니 기름칸이 0킬로.
또 다시 '어떤 0 킬로'인가 기억해내려 애썼다. 가다 넣지, 아니면 오는 길까지 괜찮을거야 하면서 시동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일월의 그 날이 생각났다. 조바심이 났다. 가장 가까운 주유소까지 가는 길이 지독하게 밀렸다. 멈추기전, 주유소를 만났다.
'어떤 0 킬로'라는 것은 없다. 0킬로는 0킬로다. 0 킬로 남았다는 것은 당장 비상대책을 세워야하는 심각한 경고일뿐이다. 0 킬로에도 눈금을 매기고 일상으로 연장시켜 버린다면, 정말 자투리 하나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보았지만, 이것도 습관, 왠지 나는 0 킬로를 오고가며 살 것 같다. 튼튼한 보험회사가 필요한 인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