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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스텔라C Nov 25. 2021

어떤 0킬로


연료탱크의 점멸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남은 거리는 0킬로뿐이라고 위협하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지만, 알고 있었다. 0킬로도 0킬로 나름, 몇십킬로쯤은 거뜬히 갈수도 있다는 것을. 반복되는 경험은 이 행운이 계속되리라 배짱을 한없이 늘렸고, 어느날 긴장은 뚝 끊어졌다. 올해 초 아주 추웠던 날 새벽 길거리에 멈춰버렸던 것.


그 겨울 새벽 아침, 동생을 공항에 데려다 주던 길이었다. 긴 휴가에서 돌아온 후라, 내 자동차의 0 킬로가 '어떤 0 킬로'인지 몰랐던 것이다.  마침 집앞  주유소도 문을 달기도 해서,  가까운 거리니까 괜찮겠지 하고,  출발했다.  동생을 공항에 내려 주고 돌아 나오는데,  경고음이 울렸다.  핸들이 뻑뻑해질 때까지도 믿지 못했다. 자동차가 바보같이 서버렸다. 물론 그 안의 나도.  


머리가 깨질듯 추운 새벽, 기름을 가져오는 보험회사 비상서비스를 기다리면서 많은 결심을 했다.  무계획적이고 무모한 인생을 더는 살지 않겠다고, 자동차의 기름 눈금의 삼분의 일 이하로 내려가기전에 기름을 채우는 것만으로 인생이 계획적이 될 것처럼 진지했다. 하지만 그뿐, 어느틈에 0킬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간당간당한 인생을 다시 살고 있었다.  


 휴가를 끝내고 출근하려보니 기름칸이 0킬로.

 다시 '어떤 0 킬로'인가 기억해내려 애썼다. 가다 넣지, 아니면 오는 길까지 괜찮을거야 하면서 시동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일월의  날이 생각났다. 조바심이 났다. 가장 가까운 주유소까지 가는 길이 지독하게 밀렸다.  멈추기전, 주유소를 만났다.


'어떤 0 킬로'라는 것은 없다.  0킬로는 0킬로다.  0 킬로 남았다는 것은  당장 비상대책을 세워야하는 심각한 경고일뿐이다.  0 킬로에도 눈금을 매기고 일상으로 연장시켜 버린다면, 정말 자투리 하나 없는 인생을 살게  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보았지만, 이것도 습관, 왠지 나는 0 킬로를 오고가며   같다.  튼튼한 보험회사가 필요한 인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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