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9장 5절
나는 이스라엘 남쪽 끝, 브엘세바 근처의 거친 광야에 살고 있어요.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는 요즘, 이곳은 해가 쨍쨍 내리쬐고 물기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죠. 낮에는 뜨거운 햇살에 머리가 타들어 갈 것 같고, 해가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찾아오죠. 가끔은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있어서, 그런 날엔 나조차도 “에휴, 다른 데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져요.
여긴 그늘도 거의 없어요. 아카시아나 종려나무 밑이 아니면 숨을 곳이 없죠. 당연히 여기까지 놀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어쩌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거운 슬픔이나 안타까운 사연을 가슴 깊이 품고 있는 외로운 영혼들뿐이에요. 아주 오래 전엔 하갈이라는 여인이 아들과 함께 여기까지 와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내가 어떻게 생겼냐고요? 음… 솔직히 말하면 좀 왜소해요. 얇고 가는 가지들이 삐죽삐죽 뻗어 있고, 잎도 별로 없어요. 봄에는 하얀 꽃이 잠깐 피긴 하는데, 그걸 알아주는 사람도 거의 없어요. 말하자면, 빗자루처럼 생겨서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쓱쓱’ 소리나 내는 게 내 일인 걸요. 그늘이라고 해봤자, 사람 하나 겨우 들어올 정도뿐이죠. 그래서 누가 내 밑에 와서 쉰다는 건 정말,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뿐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정말로 힘들어 보이는 한 남자가 내 밑으로 들어왔어요. 얼굴은 잿빛이고, 눈빛은 텅 비어 있었죠.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어요. 얼마나 지쳐 있었던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숨만 헐떡이더라고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이 사람,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지? 브엘세바에서도 하루는 꼬박 걸어야 오는 거리인데…’ 오랜만에 사람을 보니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말을 걸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하나님, 이제 더는 못 하겠어요. 저를 그냥 데려가 주세요.” 하고 말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지가 쿵 하고 흔들릴 만큼 깜짝 놀랐어요.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절망한 걸까요?
들어보니, 그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수백 명과 싸웠고, 정말 용감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외쳤대요. 그런데도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세벨이라는 무서운 여왕이 그를 죽이려 한다는 거예요. 아, 이세벨! 우리 쪽 마을에도 그녀 이야기는 자주 들리는데, 바알 신을 퍼뜨리려고 했던 악명 높은 여왕이에요.
혹시… 이 남자, 전에 까마귀가 말했던 그 용감한 사람일까요? 그 마을에 무려 3년 6개월 동안이나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었는데, 어떤 사람이 간절하게 기도했더니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고 엄청나게 흥분하며 자랑했었거든요. 심지어 그릿 시냇가에서 그를 먹여 살렸었다며 얼마나 허풍을 떨던지... 아무튼 갈멜산에서 850명을 상대로 싸우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그 예언자? 그가 맞다면… 이토록 지친 이유도 이해가 돼요. 아무리 큰 일을 했어도, 마음이 외롭고 지치면 누구든 쓰러질 수 있으니까요. 어느새 그는 고단함에 스르륵 잠이 들었어요. 바싹 마른 내 그늘 아래에서 깊은 숨을 쉬며 잠든 그 모습이, 어쩐지 안쓰러우면서도 평화로워 보였어요.
그런데 그때였어. 눈이 부실 만큼 환한 빛을 품은 어떤 존재가 조용히 나타났어요. 그리고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죠. “일어나서 먹으렴.”
어라? 이 광야 한가운데서 음식을 먹으라고? 하지만 정말로 그의 머리맡에는 따뜻한 떡과 시원한 물 한 병이 놓여 있었어요! 그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먹고, 다시 조용히 누웠죠. 그렇게 한숨을 더 자고 있을 때, 또다시 그 따뜻한 존재가 다가왔어요. “일어나 먹으렴. 아직 네 갈 길이 멀단다.”
이번에는 그 말이 꼭 내게도 들리는 듯했어요. 얼마나 따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는지, 내 가지까지 스르륵 떨릴 정도였거든요.
그는 조용히 떡을 먹고 물을 마셨어요. 그리고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고 싶다며 울먹이던 사람이, 이제는 다시 걸어갈 힘을 얻은 거예요. 그의 눈빛은 다시 살아났고,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번졌어요. 그리고는 갑자기 주먹을 굳게 쥐더니, 스스로 용기를 불어넣듯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렸어요. “사십 일 밤낮을 걸으면… 호렙산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해.”
나는 그의 발걸음을 오래도록 지켜봤어. 그리고 마음속으로 속삭였죠.
‘힘내, 나그네.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 따뜻한 목소리가 다시 널 이끌어 줄 거야. 광야에서 버티는 나처럼, 너도 분명 다시 살아날 수 있어.’
[열왕기상 19장 5절]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