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별거 아니라고 해도...
커뮤니케이션이 주 업무다보면, a를 말했을 시 어떤 결과가 도출되는지 여러 시나리오를 그린 후 행동에 옮긴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 라고 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고,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응?) 있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역시 누가 만들어냈나 싶을 정도로 찰떡같다는 걸 매번 깨닫게 된다.
홍보예산이 굉장히 제한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없던 매체도 생기고 없던 이슈도 생기는 날엔 예산을 초과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럴 때마다 재무팀 눈치를 보고 읍소 아닌 읍소를 해야 한다.
우선 우리 회사 재무팀장의 권력은 막강하다. 뭐 안 그런 회사가 없겠지만. 그러면서 굉장히 꼼꼼하기 때문에 약점(?)을 잡히거나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요청엔 바로 거절을 하는... 붉은 기운이 감도는 그런 사람이다.
우선 나는 수차례 예산초과 요청을 했음에도 단 한번도 거절이나 거절의 늬앙스조차 받은 적이 없다. 타 부서에선 재무팀 상대로 반려가 기본이라는데 난 그런 적이 없으니 항상 물어본다. 친분이야? 일을 겁나 잘해? 라고 한다면... 1년간 한 번 정도 대면을 했나? 싶을 정도로 친함과는 멀다.
몇날 며칠의 고민과 무수히 많은 생각 끝에 한 마디를 내뱉는다는 것에 답이 있다고 본다.
요청을 할 때마다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이유가 매번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악성 기사를 죽이기 위해 꼭 돈이 필요하다'거나 '요청이 쇄도해 부득이하게 초과를 하게 됐다' 정도면 단칼에 거절당했을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면, 원래 딱 맞게 예산 편성을 했는데 중간에 '정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협찬' 하나가 갑툭튀했다. 만약 천원 한도인데 천오백원으로 넘어갔다 해보자. 여기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이.
'이번엔 엄청나게 예산을 타이트하게 잡아서 8백원으로 진행하려 했다, 그런데 지면에 나올 정도의 기획시리즈 기사를 매체 타이틀치고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해준다고 하니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기회인 것 같다. 그래서 예산이 조금 초과될 것 같다' 라고 한다. 중요한 건, 앞에 부분이다. 사실은 딱 천원으로 잡아놓은 건데, 어차피 초과되는거니 조금 구라를 보태 '예산을 줄여서 하려고 했다'로 어필하는 것이다.
그럼 상대방 입장에선 '그래도 이번달에 어떻게든 줄이려고 했구나~ 그런데 예상치 못한 (좋은)기회로 초과되는 것이니 안 된다고 할 수 없지'가 될 것이다.
만약 사실 그대로로, '이번달 예산에 딱 맞게 천원으로 하려 했는데 이런저런 걸로 5백원을 초과하게 됐다'라고 하면 상대적으로 앞의 말보다 감흥 아닌 감흥이 조금 떨어진다. 뭔가 노력했구나 란 점이 안 보이기 때문에 초과를 허용할 것인지를 한 번 더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건 일례일 뿐이고, 이런 식으로 매번 여러 경우의 수를 대입해 본 후 커뮤니케이션하는 습관이 몸에 배이게 됐다. 기자와의 컴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다음 시간엔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담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