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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빈 Sep 13. 2023

안알겠지만 알겠습니다

무조건 yes부터 외치자

홍담은 (특히) 대표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기업의 규모를 떠나서 홍담을 믿고 밀어주는 대표냐, 홍보 업무를 경시하는 대표냐에 따라 홍담이 나가서 행사할 수 있는 힘이 달라진다. 물론 직속 상사, 예를 들어 부대표나 상무, 실장 등이 있다면 그들과의 호흡부터 챙겨야겠지만.


경험담을 얘기해 보자면,


현 직장에 첫 입사했을 땐 홍보팀이 부대표 직속이었다. 그래도 중요한 안건들은 종종 대표가 다이렉트로 지시할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기업에 중요한 이슈가 있었고 이걸 미리 기자에 살짝 흘려 좋은 방향으로 쓸 수 있게끔 PR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홍담 입장에서 프로세스에 안 맞는 의견이었다. 미리 흘려도 안되고 한 기자로부터 먼저 나오면 뒷감당이 안 되는 그런 종류였다. 그땐 입사 초기였고 대표와의 호흡은 커녕 탐색전을 시작조차 하지 않을 때라, 난 그저 프로페셔널함을 보여주겠다며 호기롭게 대답했다.


"대표님. 그렇게 진행한다면 블라블라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습니다" 라고.


그러자 대표는 바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왜죠? 왜 안되는 거죠? 


난 당연히 홍보의 세계를 잘 모르는 대표이니 홍보 업무를 잘 아는 내가 '바르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부대표에게 보고하니 대번에 얘기하길,


"너가 아직 정치를 모르는구나. 그럴 땐 알겠습니다 먼저 하고, 시도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잘 안돼서 이런 대안으로 하겠습니다, 라고 해야지" 라고 말이다.


정치란 이제까지 '줄타기'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오래 살아남기 위해 어느 라인을 타야하나를 탐색하는 그런 정치질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표가 무엇을 지시할 때는 no란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액션이든 취하라고 내린 지시다.


내가 이걸 깨달은 건 몇 년이 흘러 홍보 직속이 대표로 바뀌면서부터다. 조금씩 호흡을 맞춰가던 찰나 또 무리한 오더가 내려왔다. 


사법이슈로 기사가 났는데, 현장에서 누군가 발언한 코멘트를 그대로 적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내용 중 일부가 기업 리스크 우려가 있었고 대표는 해당 부분에 대한 반박문을 제시하라고 지시했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그런 골자의 기사에 기업 코멘트가 나가는 건 더 리스키하고, 그렇다고 해당 문구를 삭제해 달라는 건 (당연히) 기자입장에서 들어줄리 없는 요구였다. 억측 기사가 아닌 누가 말한 코멘트를 그대로 실은 거니까.


그러나 이번엔 군말없이 '알겠습니다'로 답했다. 대표의 요구는 '어찌됐든 저거 기분 나쁘니까 안 보이게 해'라는 거고 홍보는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니까.


이 부분을 팀원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대표님 지시가 이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내가 팀원에게 저렇게 물은 건 '그건 무리한 요구인데요? 안될 것 같은데요?'란 대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대표가 어떠한 액션을 원하니까 그게 뭐든 간에 우린 취해야 한다, 그러니 답을 찾아보자 라는 의미로 물은 것이다.


그러나 역시 팀원은, 초창기 내 모습처럼 '그건 무리한 요구인데요? 안될 것 같은데요?'란 대답 먼저 치고 나왔다. 이렇게 입장이 바뀌어보니, 대표의 생각이 그대로 투영됐다. 처음 내 반응이 어이없었겠구나 라고 말이다.


어찌하여 팀원과 의논하여 (아주 운 좋게도) 해당 문구를 삭제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대표는 그것까지 기대한 게 아닌데 엄청나다는 리액션을 해주며 칭찬했다. 


안알겠지만 알겠습니다의 의미는, 


회사에서 어떠한 오더를 받았을 때 이론적으로 말이 안되는 상황이라도, 오더 내린 사람이 원하는 대답을 먼저 하고, 결과적으로 안 좋았을 때 변명이든, 대안이든 내놓는다는 것을 말한다.


상황에 따라 '사실과 변명'은 한끗 차이일 때가 있다. 같은 결과가 나올지라도, 우선 알겠습니다 하고 액션을 취하고 나오는 결과면 사실, 액션을 취하지도 않고 무조건 안됩니다 라고 하면 변명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난 오늘도 '넵 넵 넵'을 외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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