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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빈 Feb 08. 2024

연봉 협상이란 걸 했습니다

이런 거 협상이라고 하지 맙시다

사실 '협상'이 어딨겠나. 슬프지만 주는대로 사인하는 게 관례 아닌가?


그렇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미 지지난 해 연봉 동결을 맞았고, 여기에 물가상승률까지 더해야 한다.

중요한 건, 작년 홍보팀의 활약을 꼭 인정받아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이 있었다.


우선 내가 목표하는 연봉 도달치가 있다. 그걸 이뤄내기 위해 1년간 앞만 보고 달렸다.

pr인에게 '앞만 보고 달렸다'는 의미는 말그대로 죽어라 달렸다는 뜻이다.


특히 작년 우리회사는 폭탄 3개 정도는 맞았다. 업계의 시한폭탄이라 불리던 이슈 3개가 직방으로 우리에게 떨어졌고, 그걸 온전히 맞고 막고 감내해야 하는 건 유일하게 pr팀 몫이었다.


그 이슈는 모두 사법이슈로 사회부, 정치부까지 매일같이 통화하는 사이가 됐을 정도다. 

회사에서도 '이 건은 pr팀이 가장 힘들 수밖에 없으니 잘 부탁한다' 했고, 부정이슈가 나면 전화부터 직접 데스크 방문까지 읍소하기를 몇 개월 보냈다.


매 건 해낼때마다(여기서 해낸다는 건 제목을 바꾸고 톤앤매너를 중립적으로 수정하거나 등) '알아주십사' 위에 일일이 보고했고, 우리가 이만큼 일한다는 티를 냈다.


그렇게 1년, 자 이제 이걸 연봉인상이라는 리워드가 필요하다. 그리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오매. 1차 실패다. 당당하게 1년간 내가 한 업적을 알리고 목표 연봉을 말했다. '나 이만큼했으니 이만큼 올려줘'라고. 회사의 눈은 꽤나 커졌고 뭔 말도 안되는 소리냐는 반응이었다. 피드백은 이거다. '당연히 할 일을 한거잖아?'


그렇다. 협상 실패 요인은 이렇다. 정말 내가 이만치의 연봉으로 올리겠다 란 목표를 세우면 테이블에서 이렇게 얘기해야 한다. 


'올해 목표는 이거고, 내가 이걸 달성하면 내년 연봉에서 이만큼 올려주세요'라고. 즉, 이미 한 일에 대한 성과로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의 목표치를 걸고 딜을 치는 것이다. 지나간 성과는 '그건 당연하거고'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슈가 언제 터질 줄 알고, 이런 이슈를 이렇게 막겠다, 라는 목표치를 세우는 건 쉽지 않다. 대부분 pr value를 이렇게 올리겠다(기사 몇 건, 커버리지 몇 건, 미팅을 통한 기획기사 몇 건 달성 등) 정도가 되겠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부분이 후회가 된다.


이슈가 터졌다 -> 회사에서 'pr팀 잘 부탁한다'라고 했다 -> 그때 쇼부친다(내가 이거 잘 달성하면 연봉에 반영해달라 라고)


어찌됐든 시간은 지났고 후회만 하고 있을 순 없으니 2차 협상에 들어갔다. 결론은 2차도 실패다. 나에 대한 피드백은 '더할 나위 없이 잘해주었지만, 연봉은 타 부서랑 동일한 수준으로 해주겠다'이다. 더할 나위 없이 잘하는데 그에 합당한 보상은 못해주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pr 팀을 그저 스탭부서 수준으로만 취급한다는 의미겠다.


재차 물었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거나 보완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냐, 라고.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이미 프로페셔널함을 보여줬다, 더 이상의 높이는 없는 것 같다.' 이다. 근데 왜 연봉인상률은 쥐꼬리인가요??


pr팀이 돋보이는 순간은 pr팀이 없을 때다. 없어봐야 정말 필요한 곳이구나를 느낀다는 모순적인 곳이다. 이럴거면 뭐하러 여기저기 읍소하며 헌신했나 란 생각이 들었다.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 건 학교고, 합당한 연봉으로 보상해주는 곳이 회사다. 여긴 칭찬만 해주니, 그럼 난 내주는 숙제만 하면 된다. 굳이 손들고 나서서 반장을 할 필요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내 연봉협상은 허무하게 끝났고 '24년을 맞이한다. 아쉽지만 더이상 이 회사를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할 동력을 잃었다. 더 높은 연봉을 꿈꾼다면 이직이 답이고, 내 커리어를 잇는다면 새로운 도전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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