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고 살던 언니가
레모네이드를 주문하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난 짐작할 수 있었다.
'혹시...!?'
역시나!
다니던 직장에서 친해진 언니는 결혼한 지 몇 달만에 임신을 했다.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주고받는 보통의 대화는 아마
축하해, 태명이 뭐야?, 예정일은 언제야?, 태몽은 뭐야? 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나도 이런 질문을 주로 받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대답했었다.
한참을 수다 떨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다.
'태명도 안 물어봤네..'
왜 그 당연한 질문들이 쉬이 나오지 않았던 걸까?
사실 대화를 나눌 때도
그 뒤로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도
난 마음이 아팠다.
난 그저 언니가 안쓰러웠다.
정작 본인은 행복해하고 있었지만
그냥 내 마음이 그랬다.
여린 존재와 홀로 서기를 시작한 체구 작은 이 여자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한 순간부터
기저귀를 들고 아이를 쫓아다니던 어제의 내 모습까지..
1년이 넘는 긴 시간들이 휘리릭 내 머리를 스쳤다.
내가 걸었던 그 시간 속에서
한 발 한 발 내딛을 언니를 떠올렸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싶다가도
축하보단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바랐던 그런 존재, 가끔은 시시콜콜한 답답함을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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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귀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따뜻해졌다.
우리는 모두 무한한 보살핌 속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을 느끼며
각자가 누군가의 자식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많은 이들을 내 자식같이 느끼곤 한다.
그들을 이해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언니를 안쓰러워했는지 모른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 이런 글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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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겪어본 사람을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찍함을.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남보다 재빨리 알아챈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상처라고 얘기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지랖 일지 모르는 이 마음은,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너무 잘 알아서 일지 모르겠다.
혼자일 때와 뱃속에 아이를 품었을 때의 세상은 너무나 달랐다.
많은 것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내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팠고 바뀌어갔다.
열 달의 시간을 보냈다지만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난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받아
엄청난 책임감을 짊어져야 했다.
내가 둘째를 망설이는 이유..
지금도 무거운 이 책임감을 두 배로 짊어질 자신이 없다..
여전히 아이와 밖을 나서면
이전엔 알지 못했던 문턱과 시선과 불편한 관심을 느낀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내 맘 같지 않아서 진땀을 빼야 하는 것들 투성이다.
언제 능숙해질지는 몰라도
난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자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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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언니가 출산 소식을 전해왔다.
"나 깜짝 놀랐잖아, 딸 맞는 거지? 왜 못난 이지? 했다니까."
언니는 아이를 만나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얼른 우리 아기들 투샷 보고 싶다
다 같이 캠핑도 가자!"
생후 3일 차 아기를 보며
캠핑 떠나는 상상을 하고 있는 언니 ㅋㅋㅋ
그 기쁨에 찬물을 끼얹고 싶진 않았지만
"언니, 캠핑 가려면 앞으로 일 년은 더 있어야 할걸 ㅋㅋㅋ
아직 멀었다~~~~"
병원을 나오면
닥치게 될 많은 어려움이 눈에 선했다.
절개한 상처는 오래도록 아플 것이고
금세 돌아갈 것 같았던 달라진 내 몸에 놀랄 것이고
아이의 울음에 자주 당황할 것이다.
언니의 그 시간들이 조금은 수월하길 바란다.
내가 도움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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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에게도 "육아 동지"가 생겨 기쁘면서도
언니를 보듬어주고 싶어 애쓰는 나를 느끼며
나를 위로한다.
뭐가 그리도 힘들었을까?
난 분명 아이를 보며 웃고 있었는데,
아이와 함께라서 행복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이 아팠나 보다.
그래도 지금
누군가를 위해 애쓰고 있는 걸 보면
상처들이 예쁘게 잘 아물었음을 느낀다.
매일매일
내가 더 단단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