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의 도움을 넘어, 스스로 삶을 관리하는 여정
폭식증약, 우울증약, 불면증약, 공황장애약, 그리고 ADHD 약까지. 내가 먹는 약들은 점점 늘어났다.
정신과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새로운 증상에 맞춰 약을 추가했다.
약봉투는 늘어나기만 했고, 그 안에는 크고 작은 알약들이 꽉 차 있었다.
"이건 아침에, 이건 점심 직후에, 이건 자기 전에 꼭 드세요."
하루를 시작하기 전, 약을 손에 쥘 때마다 내가 약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다.
매일 아침, 약을 한 움큼 삼키는 순간은 끔찍했다. 약을 삼키는 일이 마치 나를 억누르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약을 먹고 나면 당연히 나의 증상들은 좋아졌지만, 마음속 허무함은 커져갔다. 약은 나를 살리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약에 의존하며 사는 삶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었다.
“언젠가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임신 중에는 약을 먹을 수 없잖아.”
그날,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약 없이도 내 증상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 질문은 나를 위한 작은 희망이자, 더 나은 나를 향한 강렬한 의지가 되었다. 약에 의존하는 삶이 아닌, 스스로 내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힘을 갖고 싶었다. 그 선택은 두려웠지만, 동시에 내 삶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단약을 결심한 후, 나는 새로운 방법으로 나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 답은 아로마테라피였다.
ADHD 증상이 나타나 머릿속이 산만해질 때, 생리 전 증후군으로 기분이 요동치며 폭식 충동이 밀려올 때,
그리고 밤마다 불면과 공황이 몰려올 때마다, 나는 향기를 통해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ADHD는 내게 주어진 커다란 숙제 같은 존재였다.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 다른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고, 정신은 산만하게 흩어졌다. 깊은 집중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일의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향기는 이런 ADHD 증상을 완화하는 데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로즈마리와 페퍼민트는 마치 머릿속 안개를 걷어내듯 선명한 집중력을 만들어 주었다. 반대로 마음이 불안하고 무겁게 가라앉을 때는 캐모마일 로먼과 네롤리의 따스한 향이 나를 진정시켰다.
밤마다 불면과 공황이 찾아올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깜깜한 방 안에서 느껴지는 고요한 압박감, 숨이 막혀오는 듯한 불안. 그럴 때마다 나는 일랑일랑과 로즈의 향 속으로 몸을 맡겼다. 그것은 포근하고 따뜻한 담요처럼 나를 감싸 안았고, 차분히 숨을 고르며 깊은 잠으로 안내했다.
약물 없이 스스로를 관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로마테라피는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닌, 나의 몸과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을 향을 통해 채우는 경험.
약을 의지하지 않고도 나를 관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커질수록, 내 마음속 허무함도 차츰 사라졌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지탱할 새로운 방식을 찾았다.
단약은 내 삶을 무겁게 채우던 족쇄를 벗어던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향기는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내 삶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향기로 채워진 나날은 더 단단하고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