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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Oct 06. 2016

한 해가 저물 때마다

아직 빨간컵 시즌이 아니어서 참 다행이야.

                                               

길을 가다 빨간 컵을 든 사람을 보았다.
'내가 애용하는 별다방의 빨간 컵이 벌써 나왔나? 잠시, 지금이 몇 월이지?

다행히 아직 10월이다. 
빨간 컵 시즌을 좋아하는 나는 그때가 되면 설렌다. 
빨간 컵 = 겨울 =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옴 
크리스마스 = 설렘 = 이유.. 없음?
그래서인 것 같다. 이유 없이 설레는 계절, 겨울이다.

빨간 컵은 나에게 '이제 추운 계절이 왔다'는 것과 '한 해가 저문다'는 신호다. 많은 사람들이 연말이 되면 '이제 내 나이가...' 하며 저무는 해를 아쉬워한다. 하지만 아직 젊은 (ㅎㅎ) 나는 오히려 한 살 한 살 더 드는 게 좋다. 시간이 가는 만큼 나라는 사람의 깊이가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가는 시간 아쉬워 말고 그 시간이 헛되지 않게, 내가 먹는 나이만큼 깊이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어차피 시간은 간다. 세월은 정주행밖에 없다. 한 살 더 먹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면 연말마다 아쉬워해야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다가오는 해마다 설렌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올해를 멋지게 마무리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사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건, 시간이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가기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님의 세월도 흐른다는 것.
몇 년 새 할머니가 많이 쇠약해지셨다. 나는 아직도 20년 전의 할머니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기에 지금의 할머니 모습을 보며 세월의 흔적을 느낀다. 내가 꼬마에서 성인이 되는 동안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할머니를 보면 지나온 시간이 새삼스럽다. 그리고 시간을, 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속 늙어가시는 것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시린다. 그렇게 우리 엄마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겠지. 나도 언젠간 노인이 되겠지. 그것이 순리인 건 알지만 한 해가 갈 때마다, 부모님의 얼굴에서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흔적을 느낄 때마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가는 시간에 대한 서운함, 함께할 날이 줄어든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나에게 가장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사람인 부모님의 나이 듦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섞인 게 아닐까.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엄마.
두 모녀를 보며 생각한다.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엄마처럼 젊고 아름다운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하겠지. 그리고 우리 엄마도 할머니가 되겠지...'

마음은 아프지만 그 사실을 조금 더 어른스럽게,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까?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고 또 먹어도 그런 마음 근육은 안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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